실은 되게 착한 사람일 때
드라마에서는 보통 인간을 선인과 악인으로 구분해 놓는다. 선인은 모든 부분에서 착하다. 쓰레기 하나도 아무데나 버리지 않는다. 악인은 모든 부분에서 악하다. 착하게 구는 것도 실은 다 계산된 행동에서 나온다. 이런 드라마에 익숙해지면 세상 사람들도 이런 이분법적으로 나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전혀 아니다. 누구에게는 무척이나 착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는 악마일 수도 있다.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할 것이다.
내가 미움을 받으면서 가장 힘든 것은, 그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는 너무나 친절하고 착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와 내가 틀어지기 전에 그는 나에게도 그렇게 대했었다. 상냥하고 따뜻하게 위로해 주고 자신의 마음도 언제든 나누어 주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래서 나는 더 이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고 당황스러웠었다. 나에게 냉랭해진 지금도 그는 다른 사람들에게는 더없이 따뜻한 사람이다.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나는 혼란스럽고, 나아가 '내가 진짜 잘못해서 그러는 것인가'라고 나의 행동까지 되짚어 보게 된다.
하지만 이것으로 그의 미움을 정당화시킬 수는 없다. 사람들은 누구나 약한 부분이 있다. 그 약한 것은 때로 악하게 드러나기도 한다. 굉장히 많은 업적을 달성한 사람이 알고 보니 가정폭력범이었고, 법도 없이 살 것 같은 사람이 알고 보니 아니었다는 이야기 또한 굉장히 유명하다. 사람은 선인과 악인으로 구분할 수 없고, 그것은 우리 주변의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그러니 여기서 기준은 '나'가 되어야 한다. 나에게 잘하는 사람이 내게 좋은 사람이고 나에게 잘 못하는 사람이 내게는 좋은 사람이 아니다. 물론 나에게만 잘하고 다른 사람은 다 때리고 다니는 사람을 그렇게 파악하라는 뜻은 아니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이것이다. 나는 이제까지 자아가 약했다. 남이 하는 대로 따라갔고, 남이 시키는 대로 흘러가야 그것이 맞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것은 아마 내 어릴 적에 자랐던 것이 그런 모양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엄마는 내 목소리를 들어주지 않았고, 나 자신을 인정해 주지 않았다. 나를 사랑해 주셨지만, 자신의 울타리 안에서 내가 안전하기를 바랐기에 내 개성과 자아는 계속 누르면서 나를 키우셨다. 그 결과로, 나는 내 목소리보다 다른 사람의 목소리를 더 잘 들어야 그게 맞는 거라는, 잘못된 신념 속에서 자라왔다.
그러므로 나와 같은 사람은 미움을 받게 되면 큰 혼란이 생긴다. 대부분 미워하는 사람들은 모든 인류를 미워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미워하는 사람들은 특정 몇몇만을 미워하고 그것이 나 혼자일 수도 있다. 그러고 다른 사람들은 사랑해 준다. 예전에 13년 전, 나를 미워했던 동료 선생님도 나만 미워했지 다른 사람들은 더 많이 챙기고 잘 챙겼다. 늘 간식을 넉넉히 가져와서 배부해 주었고 눈이 오는 날에는 교사들이 차를 잘 타고 오는지 내내 창밖에서 지켜서서 있기도 했다. 그것을 보고 나는 그런 생각을 했다. '저런 착한 사람이 나를 미워하는 것을 보면, 잘못된 것은 내가 아닐까.' 하지만 그것은 진실이 아니다.
미움에 큰 영향을 받는 이유는 이렇듯이 자아가 약하기 때문이다. 나를 미워하는 저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는 잘 대하기에, 다른 사람들은 그를 좋은 사람으로 인식하기에 나도 그를 좋은 사람이라고 인식해야 할 것 같고, 그렇게 되면 나쁜 사람은 내가 되어 버린다. 그러면 끝없는 자기 비하의 함정에 빠져 버린다. 많은 아동 학대 피해자가 괴로워하는 것이 그점이다. 부모님은 좋은 사람이고, 좋은 사람으로 인식하고 싶은데 그 사람이 나를 때리고 학대하면 잘못한 사람은 바로 내가 아닌가 싶어서 오래도록 그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나를 미워하는 그 사람이 과연 좋은 사람일까. 다른 사람들이 다 좋아하고 인정해 준다고 해서 좋은 사람일까. 여기에는 두 가지 함정이 있다.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나는 모른다는 것이다. 그들 역시, 겉으로 인정하고 칭송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다른 사람들 역시 그 사람이 진짜 좋은 사람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을 수 있다. 내가 13년 전에 만났던 그 교사도, 그렇게 사람들에게 잘하고 친절하게 대하지만 내가 결국 힘들어서 그 학교를 그만둘 때 많은 교사들이 내게 다가와 그 교사를 욕했었다. 이미 다 알고 있는 것이었다. 알면서도, 그저 트러블을 피하려고, 큰 소리 안 나게 하고 싶어서 겉으로 잘해주었던 것이다.
두번째 함정은, 그 다른 사람들은 내게 큰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사람은 웃는 얼굴에 침을 뱉을 수 없다. 나 역시 13년 전의 그 교사가 초반에 나에게 친절할 때, 내가 아닌 다른 교사를 힘들게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것에 대해 크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 교사는 내가 아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 역시, 내가 당하는 것을 크게 생각하지 않을 수 있다. 물론 내가 너무나 힘들다고 세세하게 호소를 하면 태도가 달라질 수는 있겠지만 그것 역시 일시적일 것이다. 사람은 자신이 편한 것이 우선이기에, 자신에게 잘 대해주는 그를 거부할 수는 없다.
내 마음은 내가 잘 알고, 내 마음은 또한 내가 지켜야 한다. 내 마음을 타인에게 맡기고, 내 판단을 타인에게 맡겼을 때는 필히 자신에게서 경고음이 울린다. 나를 미워하는 사람이 있다면, 나 역시 그의 태도가 올바르지 않음을 인식하고, 남들이 그를 어떻게 생각하든 적어도 나에게는 좋은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확신해야 한다. 그래야 내가 지켜질 수 있다. 그리고 어느 환경에서도 내가 흔들리지 않도록 주도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