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런 취급을 당해서는 안 되었다
괜찮아졌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시작되었다. 끝도 없는 우울감, 공허한 어둠으로 내던져버린 것 같은 나. 단지 한 사람의 미움을 받았을 뿐인데, 그가 나를 오해하고 미워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나는 죽을 것 같고, 사라져야 할 것 같고, 내 존재를 소멸시켜 사죄해야 할 것 같다.
예전에 상담을 받을 때 상담사가 내게 물었었다. 가장 어릴 때 기억이 뭐예요? 가장 어릴 때 기억은 다섯 살 때인가 엄마 다리에 머리를 베고 누워서 동화책을 읽어달라고 했을 때인 것 같다. 그런데 그후, 여섯 살 때 나는 생애 가장 끔찍한 경험을 하게 된다. 아직도 생생하게 그 장면과 말, 느낌이 생각이 난다.
여섯 살이 된 나. 그리고 그 앞에서 회초리를 들고 바닥을 치고 있는 엄마. 엄마의 올라간 목소리. 엄마는 내게 말했다. 다 발가벗겨서 내쫓을 거라고. 나는 엄마 앞에서 울었다. 엄마는 계속해서 말했다. 엄마가 다 보고 있어. 그러니까 사실대로 말해! 사실대로 말하라고!
여섯 살. 아직 발음도 온전치 않을 어린 아이가 크게 혼이 난 이유는, 바로 내가 유치원에서 또래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집에서는 그렇지 않은데 기관에만 가면 나는 혼자 놀고 남과 어울리지 못했다. 그런 내가 이상하다고 유치원 선생님이 엄마에게 하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때 나는 최선을 다해 유치원 책상과 책상 사이를 뛰어다녔다. 평소에는 그러지 않는데, 조금이라도 활발하게 보이고 싶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나는 다른 아이들의 놀림이나 괴롭힘에 대응을 잘 하지 못했다. '아니' '싫어'라는 말을 못 해서 그대로 괴롭힘을 당하고 돌아오곤 했다. 그런 나에게 엄마는 결국 매를 들고 내쫓겠다는 위협까지 하게 되었다. 유치원에서 어떤 일을 겪고 있는지, 왜 제대로 대응을 못 하는지, 사실대로 말하라고 있는 힘껏 소리를 질렀다.
나는 유치원을 졸업하고 국민학교에 입학했다. 학교에 가서도 나는 제대로 적응을 하지 못했다. 공부는 열심히 했지만 도통 친구를 만들 줄도 몰랐고 함께 어울려 노는 것도 몰랐다. 국민학교 1학년 때에는 짝이 매일 지우개를 가져갔으나 나는 대응하지 못하고 계속 새로 사기만 했다. 그래도 겨우 지우개 정도면 괜찮았다. 2학년 때는 최악의 담임을 만났다. 담임은 담임으로 이름만 올려두었을 뿐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아이들이 서로 싸워도, 괴롭혀도, 소리를 지르고 떠들어도 아무런 제지를 하지 않았다. 하필 반에 떼로 몰려다니며 남을 괴롭히는 남자 아이들이 있었고, 그 아이들은 나와 몇몇을 타겟으로 두고 지속적으로 괴롭히기 시작했다.
때리기 물건 빼앗기, 물건 망가뜨리기를 넘어서서, 이제는 바지를 벗기고 내 몸을 관찰하고 만지기까지 했다. 지금이라면 당장에 뉴스에 나와도 될 만한 일들이 매일 벌어졌고, 나는 내가 인생을 빨리 끝내거나 이 지옥 같은 2학년이 끝나기만을 빌었다. 가족에게 이야기를 하자 엄마가 학교로 오고, 같은 학교 다니는 오빠가 혼내주러 오기도 했으나 그때 뿐, 괴롭힘은 계속되었다.
괴로워하는 내게 가족들은 그런 이야기를 했다. 왜 대응을 하지 못하냐고. 네가 제대로 대응을 하지 못해서 자꾸 그러는 거라고. 그 이야기는 내게, '그들의 잘못은 그들 탓이 아니라 네 탓이야.'라고 하는 소리로 들렸다. 그래서 더 나는 대응을 할 수가 없었다. 내 탓이니까 그들의 괴롭힘이 잘못된 것이라고 할 수도 없었다. 최악의 상황은 어느 시험 보는 날에 일어났다.
나는 공부를 잘 하는 편이었고, 시험에서도 대부분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그러나 그날은 그럴 수가 없었다. 시험을 보려고 시험지를 받는 순간, 나를 괴롭히는 그 남자 아이들이 모여와서 내 시험지를 보고 베끼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사방에서 나를 건드리고, 시험지를 보고, 그 난리를 치는데 시험에 제대로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결국 나는 시험에서 열 개나 틀렸다. 그리고 그 시험지를 가지고 집으로 갔다.
엄마는 밖에 나가 있었고, 나는 집에 있던 오빠에게 열 개나 틀렸다고 이야기를 했다. 오빠는 엄마가 전화를 하자 "얘 열 개나 틀렸대."라고 일러바쳤고 엄마는 씩씩대며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다짜고짜 빗자루를 들고 나를 때리기 시작했다. 나는 바닥에 누워서 울면서 두 손을 싹싹 빌었다. 실제로 맞은 댓수와 강도는 많거나 세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또다시 어둠 속으로 소멸되는 기분을 느꼈다. 학교에서 내내 느꼈던 공포감, 나를 괴롭히는 그 남자 아이들이 내 시험지를 보면서 킬킬댔을 때, 그리고 괴로워하는 나를 아무도 돕는 이가 없었을 때 느꼈던 절망감, 그 모든 감정을 뒤로 하고 집으로 왔을 때 다짜고짜 매를 드는 엄마에게 느꼈던, 내가 안식할 곳은 어느 곳도 없구나 하는 아득한 감정. 그런 순간들이 아직도 생각이 난다.
우리집은 화목하지 않았고, 엄마와 아빠는 자주 다투고, 엄마는 자주 아빠 욕을 내 앞에서 했다. 나는 내가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거절 당했던 그 순간순간들을 저장해 놓고, 내가 다시는 어느 순간에도 거절당해서는 안 된다고 마음 속으로 말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를 지워야 한다고. 나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아무도 반기지 않을 테니까. 가족도 받아주지 못한 나를 받아줄 이는 없다고.
어느 밤, 나를 미워하는 이에 대해서 자연스럽게 생각하는데 그 미움의 감정을 들여다보는 순간 내 몸이 깊이 물에 잠긴 것처럼 과거로 들어갔다. 나는 내가 아홉 살 때의 그 끔찍했던 교실 한가운데에 있었다. 나를 아무도 도와줄 것 같지 않은 그곳. 그때의 감정이 내게 물밀듯이 밀려 들어왔다. 내게 미움을 받는 것은 그런 것이었다. 나를 거부하는 것, 나를 이 세상에서 밀어내는 것, 나를 존재 가치가 없다고 하는 것. 그래서 그렇게 아팠다. 죽을 것 같았다. 아무도 구원하는 이가 없는 것 같았다.
당시의 엄마는 내게 잘못했다. 잘못한 것은 내가 아니었다. 나를 그렇게 대해서는 안 되었다. 때리고 윽박지르고 쫓아내겠다고 해서는 안 되었다. 오히려 유치원에서 스트레스 받은 나를 먼저 안아주고 위로해주었어야 했다. 그녀의 태도는 내게 씻기지 않는 상처를 남겼고, 내가 자라서도 여전히 가끔은 그 어린 날에 머물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것이 옳지 않음을 안다.
미움을 받는 것이란, 내 존재를 지워야 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단지 미워하는 이의 스트레스의 표현일 뿐이다. 미워하는 이가 제 감정을 해결하지 못해서 내게 풀어내는 것이다. 나는 지워질 까닭도, 없어질 이유도 없다. 나는 살아낼 것이고, 미움에 지배당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그런 취급을 당해서는 안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