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자아상
벌써 미움 받은 지도 두 달이 되어 간다. 나는 이렇게 이 일이 오래갈 지는 몰랐다. 처음에는 서로 말을 해서 풀었다고 생각했고, 그가 나를 미워하는 줄도 모르다가 그의 태도 변화를 보고 서서히 이상함을 느꼈고 그러다가 그가 나를 미워한다고 확신하고 나서도 꽤 시간이 흘렀다. 그는 이제 자연스럽게 나를 모른체하고 나 역시 인사 외에 더는 그에게 말을 걸지 않는다. 마음에 불편함은 있으나 이것도 굳어져 가니 익숙한 것이 되어 가고 있다. 그러던 중에 일이 터졌다.
구체적으로 말하기는 어렵지만, 지인이 그와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가 나에 대한 서운함과 불평을 토로한 모양이었다. 황당한 일은, 내 입장에서는 분명 오해라고 해명하고 또 거듭 사과한 일에 대하여 그가 아직도 그 오해를 품고 있으며 내가 의도하지 않은 것을 진실로 믿은 채로 나를 외면하기로 선택했다는 것이었다. 그의 생각대로라면 나는 상당히 이기적인 사람이고 미워해야 마땅한 사람이다.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내 머릿속이 텅 비고 눈앞이 노래졌다.
내가 마음이 힘들었던 까닭은, 그리고 지금도 힘든 까닭은 그가 생각한 나의 모습이 너무나도 악해서였다. 어떻게 사람이 그럴 수 있나 뒷담화하기 딱 좋은 그런 사람이 되어 있었다. 마치 어느 동영상 쇼츠나 짧은 썰에 나오는 '진상'처럼, 딱 그런 모습이었다. 그런데 그 다음 순간, 어떻게 나를 그런 사람으로 생각할 수 있나 하는 생각 보다는 내가 누군가에게는 그런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 때문에 내 마음이 무너졌다.
나는 누군가에게 비춰지는 이미지나 모습이 되게 중요한 사람이었다. 내가 진짜 어떤 사람인가보다는, 내 겉으로 보이는 이미지, 내가 보여지는 모습이 중요한 것이다. 생각해 보면 그 까닭은 내가 내 진짜 모습에 자신이 없어서인 것 같다. 진짜 모습이 내가 생각하기에 너무 별로이니까 실제와는 다르게 가면을 쓰고 그 가면대로 나를 봐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내 진짜 모습은 나만 알 테니, 부디 가면만을 봐주고 나를 이뻐해 주기를, 그렇게 나는 꿈꾸는 것이다.
우리집은 나를 용납해주기에는 너무 바쁘고, 너무 싸움이 잦은 곳이었다. 일단 어머니와 아버지가 서로를 용납하지 못하셨다. 어머니는 늘 아버지 욕을 내앞에서 하셨다. 어릴 적에 내가 마음으로 안주할 곳은 없었고, 내 있는 그대로의 나는 내 안에서 고여 갔다. '내가 못나서 가족들은 나를 받아주지 않는구나.' 실은 그들이 바쁘고, 그들이 정신이 없고, 그들이 마음의 여유가 없는 것인데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내 진짜 모습을 감추고 거짓된 자아를 만들었다. 그 자아의 목적은 예쁨 받는 것이기에, 나는 사람들에게 비춰지는 내 이미지를 내 진짜 모습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래야 내가 받아들여질 수 있으니까.
실은 좋은 가족은 어떤 모습이라도 서로를 용납하고 받아주고, 인내하고 기다려주고, 싸워도 존재를 밀어내지 않으며, 언제나 편안하게 품어주는 곳이다. 하지만 나는 그런 가족을 경험하지 못했고, 그래서 내 존재 자체도 용납하고 받아주고, 인내하고 기다려주고, 힘들어도 존재 자체를 밀어내지는 않으며, 품어주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니 남이 보는 내가 더 중요하고, 남이 보는 내가 이기적이고 용납 못 할 모습인 것을 알게 되니 너무도 힘들었던 것이다. 그것이 진실이고 아니고 그것은 중요하지 않고.
사람들은 나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할 수 있고 오해도 할 수 있다. 특히 나를 미워하는 사람들은 그 미움의 정당성을 위해서 나를 더 왜곡해서 오해한 채로 그것을 굳게 믿는다. 사람을 괴롭히고 왕따를 시키는 경우도, 재미로 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보다도 '제대로 혼내주기 위해서' '그가 먼저 잘못했으니까'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내 경우만 보더라도, 분명 서로 사과를 했고, 나에게는 그것에 대한 서운함과 아쉬움을 내비치지 않은 채 혼자 그런 감정을 가지고 나를 멀리하고 딱딱한 태도로 대하는 것은 분명 그의 문제다. 나에게 서운한 것이 있고 그것이 풀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면 사과를 하는 대신 서운함을 내비쳤어야 했고 나와 대화를 했어야 했다. 하지만 그는 그런 그의 잘못을, 오해한 내 말에게서 원인을 찾고 자신의 행위를 합리화했던 것이다.
잘못된 행동을 한 사람은 그인데, 그가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하기 위해서 왜곡한 나의 말을 내가 진실로 믿고 스스로 나를 밀어낸다면 그것은 그와 내가 동시에 덫에 걸리는 행위다. 그가 그 말을 입으로 뱉으면 가스라이팅이 되는 것이요, 그것을 내가 믿어버리면 나는 그에게 휘둘리는 셈이 된다. 누가 뭐래도, 내가 스스로에게 부끄러움이 없다면 나는 스스로 당당해질 필요가 있다.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지 못했던 나의 부모님이 잘못한 거고, 겉으로는 미안하다 해놓고 나중에 와서 나를 투명인간 취급하고 내 말을 오해한 채로 믿어버린 그가 잘못한 것이다. 그리고 세상에는 이렇게도 약한 사람이 많이 있다. 그속에 휩쓸려가지 않도록, 나는 나 자신부터 단단히 붙들어 맬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