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종종 손가락을 빨았다. 자주는 아니고 책에 집중하거나 할 때 두어 번. 그런데 그것이 그토록 거슬렸던 것은 사실 나 때문이었다. 나는 늘 엄지를 빠는 아이 었고, 그것은 학창 시절까지 이어졌다. 머리가 커지며 점점 남의눈이 신경 씌어 줄이기는 했으나, 초초한 날이면 영락없이 손가락을 물어뜯었다. 쓴 약과 네일아트. 그 두 가지의 콜라보로 지금은 거의 손가락을 입에 넣지는 않으나, 사실 여전히 초조할 때면 손톱을 잘근거리고 싶어 진다. 그런데 맙소사. 아이가 손가락을 빠는 것이다. 그것이 얼마나 고치기 힘든 것인지를 더 잘 알기에, 나는 두 번째 그것을 발견한 날 아이에게 손가락을 빨아 변형된 손톱 사진들을 보여주었다. 초록창이 보여주는 그 손톱들은 병원에서의 효과적 치료를 자랑하기 위한 가장 극단의 사례들이었으나 나는 아이가 겁에 질려 그만둘 것을 노렸던 것이었다. 그러나 나의 계획은 처참한 실패로 돌아갔다. 아이는 더 자주, 심지어 내가 없는 곳에서 손가락을 빨았다. 이제는 빨기를 넘어, 손톱을 찢어내기까지 하고 만다.
간곡한 부탁과, 그림책 두어 권으로 며칠간 잠잠하더니 결국 아이는 유치원 문을 나오며 나에게 고백을 한다. 또 손톱을 찢었노라고. "엄마 미안해 사과할 것이 있어."로 시작된 너의 말은 "동화 듣기 시간에 다음 이야기가 어떻게 되는지 궁금해서"찢었다는 변명으로 이어졌다. 그러더니 자기는 이제 버릇을 못 고치고, 결국 손톱이 없어진 그 사진처럼 되면 어쩌냐며 울음을 터트린다. 미안해, 미안해를 반복하는 데 미칠 것 같다. 그 순간 나는 아득해진 거다. "아 나의 계획 없는 훈육이 초가집을 태우는구나" 하고 말이다.
처음 아이가 손가락을 빨았을 때, 내가 손을 가만히 잡아주었더라면 이 사태까지 왔을까. 아마 지금보다는 상황이 나쁘지 않았을 듯하다. 그러나 나는 극단적 사진을 아이에게 제시했고, 결과적으로 아이에게 그것은 "내 손톱이 그 사진처럼 되면 어쩌나"하는 공포를 만들어준 셈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짧은 시간, 내 머릿속은 내가 섣불렀다는 생각으로 가득 찼다. 톱니처럼 우둘투둘해진 아이의 손톱을 갈아주다가 갑자기 울음이 터졌다. 난 언제쯤 제대로 된 엄마가 되는 걸까. 그런 날이 오기는 할까. 수없이 읽는 육아서에서 그렇게 속단하지 말라고 했는데 나는 무슨 짓을 한 걸까. 그런 생각들이 물밀듯 흘러나와 추제가 되지 않았다.
아이는 우는 내 등을 쓸어준다. "기분이 안 좋으면 내가 등을 좀 쓸어줄까? 엄마는 늘 그렇게 해주잖아" 하며 나를 토닥인다. 살짝 진정이 되었을 때 아이에게 사과를 했다. 사실은 무서운 사진들만 더 골라서 보여준 거라고, 심한 경우가 그렇게 되는 거고 많이 심하지 않으면 엄마 손톱처럼 울퉁불퉁 정도가 될 거라고 고쳐 말해주었다. 그러자 아이가 말한다. "엄마 닮아서 손가락 빠는 거 같아서 무서웠구나" 하고.
아, 너는 어째서 나를 이렇게 투명히 들여다보는 것일까. 거짓말도 하지 못할 만큼, 투명히.
아이와 부둥켜안고 좀 운 다음 나란히 앉아 풍선을 불었다. 그리고 한 곳에 테이프를 붙여 바늘을 쥐어주었다. 무서웠던 마음, 나쁜 버릇, 걱정 같은 것을 담아 터트리자고. 아이는 꽤나 진지하게 풍선을 불고 종알거렸다. 보호대를 껴 잘 쓰지도 못하는 엄지손가락을 제외하고, 2번 3번 손가락으로 겨우 잡은 바늘로 사뭇 진지하게 구멍을 낸다. 그러면서도 일말의 공포를 남겨 자신이 버릇을 고치지 못하면 어떡하냐는 걱정을 또 한다. 그러나 이번에는 협박이나 섣부른 판단 대신 "엄마가 같이 노력할 테니, 다시 도전하면 되지" 하고 말해주었다. 아이는 나를 꼭 끌언으며 "이번에는 정말 뜯지 않을게" 말해준다.
선무당이 사람을 잡듯, 섣부른 훈육은 뒷맛이 쓰다. 나처럼 훈육 스킬이 낮은 엄마에게는 더욱 쓰다. 쓴 맛을 해결할 방법을 몰라서 아이에게 솔직해지는 것을 택했다. 아이에게 같이 노력하자는 악수를 청했다. 그렇게 우리는 또 한 번의 평화협정을 맺었다. 아이의 손가락 버릇은 언제쯤 사라질지 알 수 없지만, 우리 아이는 어느새 우는 엄마의 등을 토닥일 만큼 자라 있었다. 나도 그런 아이를 닮아 아이의 실수를 안아주는 엄마가 되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