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디 그렇다고 해줘요, 그래야 매일 또 하루 치 욕심을 버릴 수 있어요.
엄마, 걸레로 닦았더니 바닥에 투명한 글씨가 생겼어.
신문이 젖었나 보다.
이걸 보니 또 새로운 생각이 났는데, 하나만 더 만들고 치우면 안 될까?
(...잠시 침묵) 응, 그 대신 직접 정리해야 해.
당연하지, 나는 정리 대장님이잖아요.
우리 집에는 아이만을 위한 공간이 두 곳 있다. 본인 방과 거실 한편에 자리 잡은 “본부”. 사실 한 편이라고 표현하기는 살짝 넘치는 크기로, 거실의 한 면을 뚝 잘라낸 2평가량의 공간이 아이의 본부이다. 이곳은 구석진 자리를 좋아하는 대부분의 아이 특성과, 살짝 막힌 듯한 공간에서 책을 보면 더 집중이 잘 되던 나의 어린 시절을 합친 책 읽는 공간으로 조성되었다.
이름하여 “찹쌀도서관” (실제 간판도 있음)
책을 빌리기보다 소장하다 보니, 우리 집은 벽이란 벽, 책을 꽂을만한 벽들은 모조리 책이 자리를 잡았다. 방 하나를 서재로 만들어 4면을 책장으로 두르고도 부족해 거실의 아트월부터 맞은편 벽, 현관 등 책을 꽂을만한 모든 벽과 회전책장, 트롤리 등까지 동원된 서고를 꾸렸다. 그나마 시골에 사는 터라 비교적 쾌적한 주거공간을 가졌고, 평수에 비해 큰 거실 덕에 나의 컬렉션들은 거의 명맥을 유지 해왔으나 (분기에 한 번가량 새 책을 꽂을 자리를 갖기 위해 나눔을 한다) 점점 아이의 책이 많아지며 정리가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깔끔떠는 나는 성격을 발휘하여 아이의 책들을 분리했고, 아이만의 작은 도서관을 꾸리기까지 한 것이다.
시작은 멋졌다. 대형 책꽂이 3개와 작은 책상, 독서대, 빈백 소파가 들어가니 소파 뒤 공간은 꽤 안락해졌다. 마주 보는 아트월에 텔레비전을 가리는 구조의 책장까지 짜 넣으니, 정말 그럴듯한 공간이 되었다. 독후활동 용품들 이사를 하며 “본부”로 모습을 바꾸기 전까지는 말이다.
물론 아이는 이곳에서 책도 읽는다. 음악도 듣고, 그림도 그린다. 그러나 주된 작업은 우리 집 재활용품 정리 담당자답게(?) 재활용품을 이용한 만들기다. 본인의 말로는 버려지는 쓰레기를 아름다운 작품으로 만드는 '지구사랑본부'라는데, 아이를 넘치게 사랑하는 엄마의 눈으로 봐도 아이와 보고 온 정크아트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정말 저 활동이 지구를 살리는 건지 지구를 들들 볶는 것인지 모를 경계선상의 작품활동을 한다. 신문지들이 풀과 만나 바닥에서 브레이크 댄스라도 출 때면 마음 깊은 곳에서 종종 뜨거운 것이 솟아오르지만, 나는 육아서를 100권 읽은 교양있는(?) 엄마 아닌가. “자유로운 작업 속에서 아이의 창의력이 자라고 있잖아?”라며 자신을 달래줄 정도의 내공은 쌓아두었다. (심호흡, 후-후-)
아직 미숙한 엄마인 내가 때때로 잊어버리기는 하나, 분명 '이곳은 아이를 위해 만들어진 곳이니, 아이가 무엇을 하든 터치하지 말아야 한다'라는 생각을 자주 한다. 또 아이가 무엇인가 만들고, 고민하고 하는 그 시간은 아이에게 분명 어느 방향으로든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도. 아이 옷에 물든 물감만큼 아이의 옷에는 추억이 물들고, 아이가 그어댄 선만큼 아이의 두뇌는 움직일 것을 알기에 “깔끔한 집”에 대한 욕구보다는 기다려주는 편을 택한 것이다.
내가 나의 공간을 사랑하듯, 아이도 분명 자신의 본부를 사랑하고 그 안에서 즐거울 테니 저 공간을 침범하지 않을 것을 매일 다짐한다. 이용방법뿐 아니라 정돈까지 아이의 몫임을 가르치기 위해 아이의 정리법이 마음에 들지 않아도 두 눈을 질끈 감자고 말이다. 아이가 몇 살까지 본부에서 연구 활동을 이어갈지 알 수 없지만, 나의 인내가 부디 아이의 창작 욕구보다 길었으면 좋겠다.
아이는 20분간의 사투 끝에 바닥에서 겨우 신문지를 분리해냈다. 물론 본부 바닥은 여전히 끈적하지만, 그것을 닦는 것은 아이가 유치원에 간 이후로 미뤄두어야지. 땀까지 흘리며 닦은 아이의 공을 스팀청소기로 덮어버리고 싶지는 않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