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책읽는엄마곰 Apr 08. 2022

단호한 "싫어"는 왜 이렇게 어려운 거죠.

거절은 배우는 것도 가르치는 것도 어렵다.

엄마. 나 오늘 내가 먼저 가지고 놀던 거니까, 기다리라고 말했어.

진짜? 그 말이 나왔어?

어. 솔직히 □□가 화낼까 봐 걱정은 했는데, 그래도 내가 먼저 가지고 놀던 거니까 말했어.

그러니까 □□이가 뭐래?

기다린다고, 다하면 자기 불러달라고 했어.

거봐, 거절도 해보니까 쉽지? 

음.... 아니 아직은 안 쉬워





작년 겨울 아이를 잡아당기듯 집으로 “끌고” 온 적이 있었는데, 이것은 아이를 낳고 처음으로 내가 이성의 끈을 놓은 순간이었다. 날이 추워 바닥이 꽁꽁 얼었는데 아이는 친구의 부탁으로 바닥에 떨어진 비비탄 총알을 주워주었다. 여기까지는 그러려니 했는데 정작 비비탄을 주워달라는 아이는 주머니에 손을 넣고 있더라. 우리 아이가 몇 개를 주워 그 아이에게 건네며 “너는 아직 못 주웠구나”라며 걱정을 하니 아이의 대답이 “아니, 나는 손 시려서 안 주울 건데.”였다. 6살짜리 아이의 대답도 화가 났지만, 그 모습을 보고도 휴대폰만 만지며 무관심한 아이 엄마의 모습에 화가 나 이제 추워서 집에 가고 싶다며 아이를 끌고 왔다. 그날 아이의 대답이 아직도 생생하다. "나도 손이 시려서 하고 싶지 않았는데, 안 해주면 oo이가 화를 낼까 봐 그랬어. 그런데 엄마를 속상하게 했네. 내가 미안해." 


그날 나는 그 집 엄마에게 가서 소리를 치고 싶었다. 아이를 그렇게 이기적으로 키우지 말라고도 하고 싶었고, 종종 같이 하원하는 길에 늘 휴대폰을 쳐다보거나 딴짓을 하느라 본인의 아이 안전까지 내가 챙기고 있었음을 아느냐고 화를 내고 싶었다. 그러나 정작 그 아이의 엄마도 걱정하지 않는 아이의 안전을, 원하지도 않았는데 왜 내가 신경 쓰고 있었냐는 생각이 들어 앞으로는 그 아이가 도로 가까이 가든, 빨강 불에 건너든 신경 쓰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화를 삭였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그 아이가 도로에 가까이 가면 휴대폰을 보는 그 엄마 대신 안쪽으로 오라고 말해주고 있다. 맙소사. 너 나 닮은 거 맞는구나) 


그냥 나랑은 다른 사람이라고, 세상에 어떻게 내 마음에 맞는 사람만 있겠냐고 스스로를 달랬다. 내가 마음을 달래야 우리 아이를 안아줄 수 있을 것 같아서 세수를 하며 울음을 삼켰다. 아이를 안아주며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마음은 좋은 거라고, 그렇지만 배려받지 못할 행동을 하면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된다고, 또 스스로 원하지 않을 때는 배려하지 않아도 된다고 차분히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아이에게 "싫어. 하고 싶지 않아"를 가르치고 거절을 여러 번 연습시킨 후 잠자리에 누워, 아까 그렇게 팔을 잡아당겨 집으로 와서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다. 아이는 나보다 더 너그러운 사람이라 엄마가 속상해서 그런 것을 알고 있다며 되려 나를 토닥여주었다. 


오늘 우리 아이는 샤워 후 머리를 말리며 친구에게 거절을 한 이야기를 했다. 아이가 먼저 블록을 가지고 놀고 있었는데 달라고 하기에 기다려달라고 했다고, 걱정되고 마음이 조마조마했는데 걱정과 달리 차분히 기다리겠다고 말하여 좋았다고. 아이는 스스로 거절을 한 것도 기분이 좋은 듯했고, oo 이와 달리 친구가 짜증을 부리지 않고 기분 좋게 기다려준 것도 좋았던 듯했다. 심지어 □□이는 자신의 차례에 우리 아이에게 아까 만들던 것처럼 세모로 쌓는 법을 가르쳐달라고 하기까지 해, 같이 신나게 놀았던 모양이다. 그러면서도 아이는 거절이 쉽지 않았다고 말한다. 사실은 나도 안다. 나도 거절이 어렵다. 싫다는 말을 해서 사이가 틀어지는 것보다, 차라리 내가 참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거절은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나이를 먹을수록 점점 더 많이 하는 생각이, 싫은데 억지로 참으며 버티는 시간만큼 아까운 게 없었다. 사람도 그랬다. 안 맞는데 억지로 맞추려고 노력하기보다는 나와 잘 맞는 사람에게 조금 더 시간을 할애하는 편이 현명했다. 그렇지만 아이에게 벌써 사람을 골라 사귀어도 된다는 말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남 탓하는 법을 가르치고 싶지 않았다. 


대신 자신의 감정을 솔직히 말하는 법을 같이 연습하고 있다. "나는 이런 점이 싫어.", "나는 이런 부분이 마음에 들지 않아.", "나는 이런 것 때문에 하고 싶지 않아."같은 말들을 같이 연습하고 있다. 거절은 어른이 되어도 어렵다. 가르치는 것도, 배우는 것도 어렵다. 우리는 오늘도 "미안하지만"을 연습했다. 









이전 22화 눈 감으면 창의력이 자라는 거 맞죠?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