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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읽는엄마곰 May 18. 2023

적당함이 무엇인지를 배워가는 길

너의 고군분투 반려식물 이야기

찹쌀아. 네 화분이 죽어가고 있어. 목이 마른가 봐.

그렇지만 물을 많이 주면 안 돼. 

지금 목이 마른 것 같은데 왜 주면 안 돼?

저번처럼 죽어버리면 어떡해! 저번에 물 많이 줘서 죽었다고 했잖아.

이번에는 너무 안 줘서 죽을 것 같아. 

어휴, 식물들의 마음은 도저히 알 수가 없어.




 네가 데리고 온 작은 화분은 며칠째 목이 말랐다. 지난번 다육식물에 물을 너무 많이 주어 물려 주어버린 것을 경험했던 터라, 물을 쫄쫄 굶긴 까닭이었다. 엄마의 성화와 또 죽어버릴까 걱정인 마음 반반으로 물을 주었더니, 다음 날 아침, 언제 비실거렸냐는 듯 분홍빛 얼굴로 인사를 해준다. 살금살금 베란다에 갔던 너는, 꽃보다 해사한 얼굴로 달려와 “엄마, 분홍이가 꽃을 다시 펼쳤어!”하고 소리를 지른다. 


 아이와 같이 호들갑을 떤 후, 마주 앉아 귀리 크런치를 먹는데 네가 말한다. “식물들의 마음은 도저히 알 수가 없어. 차라리 말로 나 목말라, 나 배불러 말해주면 좋겠어.” 


 “엄마 비법을 하나 공유해줄까? 흙에 손가락을 쑥 넣었다가 빼 봐. 흙이 안 털어지면 물 줄 때가 아니야. 흙이 탁탁 털어질 때 물을 주면 딱 맞더라” 하고 말해주니 아이는 엄청난 비밀을 알게 되기라도 하는 듯 눈을 반짝인다. 물론 너도 살아가며 너만의 비법들을 쌓아가게 될 테고, 너에게 적합한 방법들을 찾아가게 될 테지. 그때까지는 엄마가 너에게 비법을 전수해줄 수 있기를, 부디 너의 고민을 함께 나눌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아이의 고민을 들으며 문득, 처음 엄마가 되었던 시절이 떠올랐다. 나는 엄마는 되기는 되었지만, 진짜 엄마는 되지 못했기에 매일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엄마, 찹쌀이가 우는데 왜 우는지 모르겠어! 빨리와”, “엄마 찹쌀이 똥이 노래”, “엄마 찹쌀이 얼굴에 뭐가 났어”를 외쳐댔다. 네가 이백일쯤 되었나, 이앓이로 보채는 너를 안고 나도 “엄마, 차라리 말로 어디가 안 좋은지, 뭐가 필요한지 말하면 좋겠어.”하고 엉엉 울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반찬도 못 하고 빨래를 알록달록하게 만들기 일쑤지만, 그래도 어느새 아이의 표정을 읽을 수 있는 엄마가 되어가는 중이다. 


 못하는 반찬을 잘하려 하는 대신, 반찬을 사 먹고 그 시간에 너에게 더 많은 책을 읽어주는 것으로 스스로 합의를 했다. 권위를 가지고 학습을 시키는 능력이 없는 대신, 같이 앉아 공부하는 것을 대안 삼았다. 잘 못 하는 것을 욕심내고 속상해하지 않고, 잘하는 것을 더 잘하기로 마음먹었던 것. 또한, 어느새 '적당히'를 배워 내려놓을 것은 빠르게 내려놓고자 하니 마음에 가득하던 부담도 사라지고 오히려 조금 더 나은 엄마가 된 것 같기도 하다. 


 엄마의 길뿐 아니라, 세상의 모든 것이 적당할 때 더 아름답다는 것을 조금씩 배워간다. 식물을 잘 키우는 가장 적합한 방법도 적당함임을, 아이를 잘 키우는 적합한 방법도 적당함임을 조금씩 알아간다. 언제인가 너도 그것을 알아가겠지. 지금, 흙을 만져보는 것으로 물줄 때를 알아가듯, 사람 관계에서도- 일에서도- 어떤 순간이 적당함인지를 알아가게 되겠지. 그 순간순간, 네가 지치기보다는 단단해질 수 있기를, 베란다의 화분에서라도, 겨울을 이겨낸 식물이 더 아름다워지듯 더 단단할 수 있기를! 


 그 힘을 기를 수 있기를 바라며, 너의 화분에는 미안하지만, 엄마는 한걸음 물러서 보기로 했다. 너의 적당함을 배워가는 길을 응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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