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지긋한 이들은 어렸을 적에 경험이 있겠지만 도시화가 된 지금은 드문 일이다. 그런데 물이 순환하듯 삶의 방식도 돌고 도는 것 같다. 왜냐하면 코로나 여파로 건강에 관심이 부쩍 많아진 요즈음 맨발로 걷기가 꽤 유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불치의 암에 걸린 한 분이 의사도 포기한 절망적인 상황에서 맨발 걷기로 나았다는 책과 영상이 널리 알려져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준 것이다. 만병통치약까지는 아니더라도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아도 푸른 숲을 찾아 맨살의 촉감을 느끼며 걷는 것이 건강에 도움이 되는 것은 분명하다.
나도 그 대열에 참여하게 되었다. 정기적으로 걸으면 좋으련만 여건이 쉽지 않으니 기회가 되는 대로 걷는다.
그렇지만 나는 아직까지도 맨발로 걷는 것이 어렵다. 발바닥이 민감해선지 걷는 것이 내게는 꽤 아프다. 비교적 평평한 길을 찾아 걷는다고 하지만 군데군데 흙에 박힌 굵은 모래와 자갈이 발바닥을 콕콕 찔러대니 은근히 아프다. 통증을 느끼는 수준은 사람마다 다른 것 같다. 아내는 맨발로 걷는 일이 나보다는 더 편안해 보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아니라면 내가 엄살이 심한지도 모르겠다.
오늘도 세 부부가 모여 홍유릉 숲길을 걸었다.
함께 걷는 분들 가운데 두 분의 생일을 맞아 운동도 하고 축하도 할 겸 모이게 된 것이다.
가장 무더운 시간을 피해 상대적으로 덥지 않은 오전에 걷고 점심을 함께 먹는 것으로 시간 계획을 세웠다. 집에서 홍유릉 가는 교통편이 간단치가 않아서 차를 가져가는 것이 좋았는데 수리를 하는 중이라 그럴 수가 없었다. 그래서 여유가 있게 나섰다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촉박하여 택시를 부랴부랴 타고 겨우 전철시간을 맞춰 홍유릉에 도착했다. 무엇을 하든 시간을 충분하게 확보하는 것이 지혜롭다. 더구나 초행길은 더 말할 것도 없다.
구름이 드리운 하늘은 걷기에는 그만인 분위기다. 햇살이 숨어 맹위를 떨치고 있는 무더위가 조금은 풀 죽은 느낌이다. 울창한 나무들이 들어찬 숲길은 푸르름이 넘쳐나 흐린 날의 가라앉은 기운을 지워버렸다. 잘 다듬어진 널찍한 산책로가 우리를 반겼다. 반갑게 만난 우리는 입구에 신발을 모두 벗고 맨발로 천천히 산책을 나섰다.
무궁화
나는 지금 숲해설가를 공부하는 중이어서 흔하지 않은 나무는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능 입구에 보기 드물게 고목이 된 무궁화가 화려하게 꽃을 피우고 있다. 거의 통나무 같은 두께의 몸통을 지닌 무궁화다. 지금까지 본 무궁화 중에 가장 오래된 것 같다. 늙어서도 풍성한 꽃을 피우는 나무의 끝없는 열정이 감동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열매가 감처럼 달린 노각나무와 커다란 콩꼬투리를 늘어뜨린 주엽나무를 만났다. 식물을 정확히 알려면 꽃과 열매와 수피와 잎을 다 알아야 한다. 이미 알고 있던 노각나무가 꽃이 지고 열매를 달고 있으니 처음 본 나무처럼 생소하게 다가온다. 안다는 것이 그만큼 어려운 일이다. 전부를 알지 못하면서 마치 다 알고 있는 것처럼 행동하는 일은 얼마나 우스운 일인가! 겸손을 다시 배운다.
주엽나무/노각나무
우람한 나무들이 둘러선 산책길은 발바닥이 아픈 것을 빼고는 아주 좋은 길이었다. 사람이 많지 않아 한적해서 더욱 좋았고 간간이 뻐꾸기의 정겨운 소리가 더해져 분위기가 기대 이상이었다. 고목이 주는 엄숙한 분위기와 푸르고 싱그러운 풀빛도 마음에 평안을 선사해 주었다.
친한 이들이라 걷는 내내 대화가 한없이 이어지고 웃음도 끊이지 않는다. 이야기에 빠져들다 보니 발바닥의 아픔을 잊고서 잘도 걸어간다. 그렇게 한참을 걷다 무논이 펼쳐진 곳에 놓인 나무 벤치에 앉아 쉬는 시간을 가졌다. 잘 자란 진한 잡초의 빛깔과 바람에 넘실대는 벼의 푸른 물결과 건너편 산자락의 소나무 숲이 뿜어내는 푸른빛까지 세상이 온통 푸르다. 그 풍경에 넋을 잃는다. 각기 다른 농담으로 풀어진 색감에 마음을 온통 빼앗길 수밖에 없었다. 말을 잃고 멍하니 그냥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에는 기쁨이 샘솟았다.
아침에 드리웠던 구름들이 물러가고 하늘도 제 빛을 드러냈다. 하얀 구름이 떠 있어 하늘이 더욱 푸르다. 이렇듯 밝고 청명한 날에 흙을 맨발로 밟으며 건강을 다지며 평지에서 산길로 올랐다. 산길을 걷는 것이 조금 더 힘들었지만 단련이 되었는지 걸을만하다. 산마루에서 훌라후프를 돌리며 즐거운 시간을 갖고 돌아 내려왔다.
중간에 족욕하는 곳이 마련되어 있었다. 편안하게 앉아 지친 발을 물에 담그며 휴식하는 순간이 저절로 미소를 짓게 한다. 기분도 덩달아 좋아진 나는 노래 한 곡을 멋들어지게 뽑았다.
족욕장
남는 날이 얼마가 될지 몰라도 사는 동안은 건강하고 싶다. 물론 마음먹는다고 다 되는 일은 아니겠지만 몸을 잘 돌보고 싶다. 건강하게 사는 것은 사실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자연처럼 살아가면 된다. 욕심부리지 않고 적당하게 자연의 섭리에 따라 사는 것이다.
맨발로 걷는 것이 건강에 얼마나 큰 기여가 되는지 알 수 없지만 함께 마음을 나누고 실컷 웃으며 맑은 공기를 마시고 싱그러운 풍경을 마음껏 눈에 담았으니 그것으로 오늘 하루는 충분히 족하다. 더구나 많이 걸어 배고파져서 점심도 맛나게 먹었으니 더 바랄 게 없는 하루다. 기회는 늘 오지 않으니 우선적으로 이런 시간을 많이 확보하여 자주 걸어야겠다. 이런 것이 평범하게 살아가며 누리는 일상의 행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