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작은 행복을 들려드립니다

아내와 함께 따릉이를 타고 퇴근 하는 길

by 정석진

아내가 출근을 하고 나는 집에서 노는 날, 아내 퇴근 시간에 맞춰 따릉이를 함께 타고 집에 오기로 했다. 한동안 일로 바빴는데 오늘은 하릴없이 집에 머물렀다. 이것저것 해야 할 일이 있었는데 바보상자가 어리석은 중생을 가만 두지 않는다. TV 채널에 홀려 지난 방송을 마치 새로 보는 것처럼 빠져 들었다. 미스터 트롯 결승전을 몰입해서 보는 데 눈물까지 찔끔거리며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벌써 오후 4시가 훌쩍 지났다.


약속 시간이 되어 부랴부랴 집을 나섰다. 아파트 근처의 따릉이를 타고 동대문 구청을 향해 달렸다. 도심을 통해 외대와 경희대 근처를 지날 때 수업을 마친 대학생들이 삼삼오오 짝을 지어 지나는 것이 봄날처럼 싱그럽다. 길가의 가로수에도 계절의 변화가 완연하다. 은행나무에도 잎들이 이미 성장했고 깜짝 놀랄 일은 이팝나무가 벌써 포슬포슬한 꽃을 달고 있는 것이었다. 올해는 정말로 꽃이 빨리 피었다. 초여름에 피어야 할 꽃이 벌써 피고 있는 것이다. 좋아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확실히 기후 변화가 심각한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이 인다.

이팝나무

고층건물이 빽빽하게 들어선 청량리를 지난다. 60여 층의 건물들이 완공 직전으로 일대가 놀랍게 변모했다. 하지만 길 건너에는 오래된 단독건물들이 그대로 남아 묘한 대조를 이룬다. 발전 뒤의 그늘이 함께 느껴져 조금은 씁쓸한 마음이다.


홈플러스에서 간단한 장보기를 하는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전화를 받지 않는다. 늘 전화를 묵음으로 해놓으니 전화 오는 것을 모르는 경우가 왕왕 있다. 예전에는 이런 상황이면 짜증이 치솟았는데 요즘은 그러려니 하는 마음이 드는 것 보면 나도 인내심이 조금은 는 것 같다. 세 번의 통화 시도 끝에 아내와 연락이 되어 함께 따릉이를 타고 청계천 자전거 길로 들어섰다.


청계천 내려가는 길이 완전히 녹음으로 우거졌다. 벌써 초여름의 풍경이다. 미처 준비도 되지 않은 사람들을 내버려 둔 채 계절은 전혀 사정을 봐주지 않고 미련 하나 남김이 없이 제 길을 가고 있다.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길에 바람이 시원하다.

길 곁에는 너른 냇물이 흐른다. 냇가에는 수풀이 우거지고 군데군데 자라난 버드나무가 푸른 가지를 수면에 드리웠다. 잔잔하게 냇물이 흘러 마치 호수 같은 느낌이다. 물 따라 푸른 경치가 길게 이어져 있어 눈이 시원하다. 천변에 드문드문 놓인 벤치에는 노부부가 말없이 앉아 쉬기도 하고 젊은 연인들은 눈을 맞추며 행복한 한 때를 보낸다. 평화로운 정경이 주는 평안함에 마음이 푸근하다.


강안 언덕에 노란 꽃들이 눈에 많이 들어온다. 애기똥풀이 군락을 이루며 피었다. 잠시 서서 관찰을 해보니 쇠뜨기가 무리 지어 자라는 사이로 샛노란 꽃망울이 피어나 있다. 지나는 길에 계속 보이는 꽃 하나는 선씀바귀이다. 작은 꽃들이지만 꽃송이가 수북하게 피어나 눈에 띈다. 갈퀴나물도 보라색 꽃송이를 달고 있고 토끼풀도 귀여운 꽃망울을 터뜨렸다. 야생화도 제 힘껏 자라나 봄을 빛낸다.

노랑선씀바귀, 갈퀴나물
토끼풀
애기똥풀과 쇠뜨기

오늘의 하이라이트는 튤립이다. 드문드문 보이다 꽤 넓은 곳이 온통 튤립으로 총천연색이 눈이 부시게 화려하다. 구태여 본고장을 갈 필요가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종류도 다양해서 보는 재미가 있다. 우리가 흔히 보는 튤립으로 흰색 붉은 색깔은 기본이고 꽃 모양이 정말로 다채롭다. 장미꽃과 같은 겹꽃이 있고 연꽃처럼 우아하게 벙근 것도 있다. 독특한 색깔의 꽃도 눈길을 사로잡는다. 한 종류 한 종류가 다 매혹적이다. 튤립의 매력에 빠져 한참을 꽃구경을 하다 보니 다른 한편으로는 품종을 상상하는 대로 육성해 내는 현실이 조금은 당혹스럽다.


아내가 힘들어 해 쉬엄 쉬엄 간다. 잠시 머무는 곳에 철쭉이 만개했다. 연분홍은 아주 흔해서 별로 눈길이 가지 않는데 정열적인 영산홍과 순백의 철쭉은 눈길을 사로잡는다.


시간은 어떻게든 흘러간다. 오늘 하루도 마무리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틈을 내어 아내와 함께 자전거를 타며 만나는 풍경들이 삶에 작은 활력을 준다. 가만히 앉아서는 볼 수 없고 느낄 수 없는 싱그러운 자연이 주는 감성을 만난다. 작은 행복이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몸은 좀 피곤해도 마음은 평안한 저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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