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 밤의 꿈처럼 좋아라

여름밤 늦은 저녁에 강가를 달리다

by 정석진

친구들과 일주일에 한 번 스크린 골프를 치기로 했다. 골프를 배운 지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정기적으로 필드에 나가지 못하다 보니 거의 초보나 다름이 없다. 어쩌다 치는 스크린골프 실력도 별반 다를 바가 없다. 골프에 푹 빠져 정신없는 정도는 아니지만 좋아하는 편이고 내게 기회가 주어질 때는 놓치지 않고 골프를 즐기는 중이다. 스크린 골프는 중년을 훌쩍 넘은 남성들에게 가장 좋은 놀거리임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근자에 들어 몇 번 스크린 골프를 쳤다. 내 실력이 형편이 없다 보니 치면서 미안한 마음조차 들었다.

잘 치면 좋겠지만 못 치면 또 어떠랴? 함께 어울려 유대감을 쌓고 친분을 나누는 일로 충분히 족한 것을.


오늘은 우리가 세 번째 모이는 날이었다. 오후 다섯 시에 만나기로 하고 나는 따릉이를 타고 갔다. 한여름에 접어들어서 땀이 송골송골 솟았지만 그늘을 골라 다녀서 자전거도 탈만 했다. 두 사람은 이미 골프장에 와있었기에 가볍게 몸을 풀고 라운딩을 시작했다.


기분 좋게도 오늘은 기대 이상으로 내 게임이 잘 풀렸다. 전반 9홀은 제일 좋은 스코어를 내가 냈다. 잘 치는 친구가 해준 조언을 따랐더니 실수도 줄고 안정적인 게임이 되었다. 마지막은 결국 실력대로 꼴찌가 되었지만 기분은 하나도 나쁘지 않았다. 좀 아쉬운 점이 있다면 드라이버가 잘 안 맞았는 것이다. 모든 게 다 좋을 수는 없는 것이 인생이라는 것을 오늘도 배운다.


운동하는 것에도 성격이 굉장히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 같다. 내가 지적받았던 점이 너무 급하게 친다는 것이다. 무엇이든 급하게 하면 좋을 것이 없다. 평소에도 차분하게 자신을 잘 다스려가며 살아가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게임을 끝내고 오버 타수만큼 각자 벌금을 내서 저녁을 먹었다. 오늘은 잘 치는 친구들이 실수가 많았고 나는 기대이상으로 쳐서 공평하게 벌금을 냈다.


저녁을 먹고 차를 마시며 살아가는 이야기로 꽃을 피웠다. 그러는 중에 벌써 10시가 훌쩍 지났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시간이 가는 줄 까마득히 잊고 있었다. 우리 스스로 수다 삼매경에 빠진 것에 놀라 웃으며 즐거운 모임을 파했다.


운동삼아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도 따릉이를 탔다. 청계천을 통해 중랑천변으로 이어진 호젓한 길을 택했다.

한여름 밤에 자전거 페달을 힘차게 돌리며 달리는 길이 기대이상이다. 후덥지근한 날씨라도 맞바람이 온몸을 세차게 두드리는 느낌이 싱그럽게 몸을 깨운다. 늦은 시간인데도 사람들이 심심찮게 눈에 띈다. 자전거를 타기도 하고 달리기 하는 사람도 있고 산책하는 모습도 보인다.

청계천을 빠른 속도로 달려 중랑천에 접어들었다. 밤이 내린 길, 평화로운 정적 속으로 들어서는 기분이 아늑하다. 강물도 잠이 들었는지 잔잔하고 고요하다. 시원한 강바람이 분다. 길바닥에 반짝이는 푸른 등불이 길게 이어져 신비롭다. 여명에 푸르스름한 가로수들도 미동도 없이 하루의 쉼을 누린다.

낮 풍경을 다채롭게 수놓던 꽃들이 어둠에 잠겨 보이지 않는다. 중랑천 자전거 길의 다양한 얼굴을 만난다. 가로등이 환하게 밝히는 거리, 불빛 하나 없는 깜깜한 거리, 길바닥을 비추는 푸른 조명이 이어진 길.

한참을 신나게 달리다 코를 자극하는 강한 향기가 훅 끼쳐온다. 한동안 꽃봉오리로만 머물던 백합들이 활짝 피어 진한 향내를 뿜고 있다. 얼마나 강렬한지 꽤 오랫동안 내음이 가시질 않는다.


빠른 속도로 꽤 먼 거리를 달렸지만 조금도 피곤하지 않고 오히려 개운하다. 더운 한여름에 고즈넉한 밤이 주는 서늘한 기운이 참으로 상쾌하다. 마음도 덩달아 하늘을 나는 듯 자유로운 기분이다.


밤에 자전거를 타고 강가를 달리는 것은 한낮의 무더위에 지친 한여름밤에만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이 분명하다. 이는 누구든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맛볼 수 있는 특선 요리 같다. 실내에서 머물며 덥다고 투덜대는 일보다는 얼마나 신나는 일인가! 여름밤이 주는 아주 특별한 선물이 아닐 수 없다. 올여름에는 이런 즐거움을 자주 누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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