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이와 꼬막

큰 누이의 못다 한 효도 이야기

by 정석진

짭조름하면서 식감은 쫄깃하고 감칠맛도 나면서 조금은 비린듯 하지만 그 점이 바로 매력인 것.


데쳐서 바로 먹어도 되고, 초무침도 좋고 비빔밥도 기막히고 양념간장을 얹어 먹으면 별미가 되는 것.


찬바람이 불면 살이 통통하게 올라 입맛을 돋우는 벌교가 가장 유명한 이 먹거리는 과연 무엇일까요?


바로 꼬막입니다.


음식에 대한 추억은 그다지 많은 편은 아닌데 꼬막은 특별한 기억이 있어서 떠올리면 가슴 한편이 아릿해집니다.


꼬막을 아주 좋아해서 제철이 되면 빼놓지 않고 먹는 제철 음식 중 하나입니다. 고향에서는 잔칫날이나 명절이 되면 거의 빠지지 않는 음식입니다.

가족 중에 저만 유독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그런게 아니었습니다.

모친이 치매를 오래 앓으시다가 병세가 심해지셔서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이게 되었습니다. 소천을 앞둔 상황이었기에 미국에 사시는 큰 누님도 귀국을 하였습니다.


맏이인 누님은 70을 바라보는 나이입니다. 4남 4녀의 대가족인 우리는 과거에 큰 누이에게 거는 기대가 컸습니다. 어려운 가정 형편으로 누이만 학교를 제대로 다녔고 더구나 1등을 도맡아 하는 수재였기 때문입니다. 누나의 선생님은 서울대를 적극 밀었지만 경제적 지원을 받을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국가가 전액 장학금을 지원하고 급여도 받을 수 있는 국군 간호대학에 가게 되었습니다.

운명이었는지 누이는 그곳에서 지금의 남편을 만나 빠른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로 누님의 인생은 꼬이기 시작했습니다. 살림이라고는 해본 적이 없었는데 시부모를 모시는 전업주부로 살아야 했고 간호장교도 그만두어야 했습니다.

자신의 삶이 힘들었기에 피붙이들을 돌아볼 여력은 전혀 없었습니다. 숱한 어려움을 겪다 우여곡절 끝에 미국 간호사가 되어 시부모를 떠나 미국에 이주하게 되었습니다.


가족에 대한 책임감이 컸지만 자신의 삶도 빠듯했기에 친정에 아무런 도움도 줄 수 없는 처지로 누님은 늘 불효라는 마음의 커다란 짐을 안고 살아 왔습니다.

그 와중에 모친의 임종을 맞이하게 된겁니다,

누나와 가족들은 병원에서 가까운 제집에서 함께 숙식을 하며 모친의 마지막 길을 지키게 되었습니다. 누님은 병원에 상주하다시피 하며 모친을 돌볼 수 있었습니다. 미국 노인병원에서 간호사로 근무 중이었던 누님은 모친의 필요를 잘 알았고 직접 처치할 수 있었기에 다른 이의 손을 빌지 않고 손수 지극 정성으로 수발을 들었습니다. 자신도 머리가 희끗하고 손자들을 둔 할머니였지만 모친 앞에서는 여전한 딸이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은혜였습니다. 돌아가시기 전, 그간 못다 한 효를 다할 수 있는 특별한 기회였습니다. 평생 따라다니던 무거운 마음의 짐인 불효를 어느정도 내려놓을 수 있는 시간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때 식탁에 빠짐없이 오른 음식이 꼬막이었습니다. 누님은 정말로 꼬막을 좋아했습니다. 그 좋아하는 음식을 오랜만에 대하니 더 반가웠겠지요!


저만 좋아한다는 생각이었는데 누님도 좋아해서 신기한 생각도 들었습니다. 슬픔이 묻어나는 식탁이었지만 행복하기도 했습니다.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우리를 하나로 묶어 줬기 때문입니다.

사실 우리 가족의 구성원은 많았지만 다들 이른 나이에 집을 떠나 살았고 그러다 결혼을 했기 때문에 각자의 삶을 사느라 바빴습니다. 그래서 전부 모이는 일은 쉽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모친이 가족 모두를 한자리에 불러 모은 것입니다.

지난 이야기가 끝없이 마술처럼 꽃을 피웠고 그립고 애틋한 사연으로 울다 웃었습니다.


꼬막을 사 가는 일은 제 몫이었습니다. 근무지 근처에 야채와 수산물을 싸게 파는 가게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한동안 거의 매일같이 사갔기 때문에 속으로 이제는 누나도 질렸으려니 하는 생각이 들어 누님께 물었습니다. "오늘도 사와?" 누님은 배시시 웃으시며 고개를 끄덕이셨습니다. 타국에서 지내시면서 못 먹은 양을 다 채우시려는 듯 그 후로도 꼬막 공수는 한동안 이어졌습니다.

신비롭게도 거의 의식이 없었던 모친이 가족들 모두 모였을 때 눈을 뜨시고 한 사람, 한 사람 눈을 맞추셨습니다. 말은 하시지 않았지만 우리는 모친이 우리를 알아보신다는 느낌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가족들을 불러 모으시고 그동안 격조했던 가족들의 끈끈한 정을 나누게 해주셨던 모친은 이제는 되었다 여기셨는지 아주 평안하신 모습으로 소천을 하셨습니다. 우리는 이미 마음의 준비를 했고 천국 소망을 가졌기에 모두 장례를 담담하게 받아들였습니다.


꼬막은 그렇게 누님과 모친과 가족의 끈을 이어주는 잊을 수 없는 고운 매듭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꼬막을 먹을 때마다 그때의 느낌들이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가슴 저릿하게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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