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동산에 보름달이 떠오르면

정월 대보름의 추억

by 정석진

뒷동산에 둥근달이 떠오르면 어린 마음에도 설렘이 있었다. 을 보면 아득한 먼 옛날 돌아가 동화의 한 장면에 빠져드는 느낌이었다. 괜스레 마음이 푸근해지고 평화로웠다. 달님이 다정한 누님 얼굴처럼 편안하고 정겨웠기 때문이었을까?

오늘은 정월 대보름 날, 도심 하늘에도 보름달이 떴다. 구름이 가리지 않아 달의 자태가 선명하다. 아쉬운 점은 고층 건물이 시야를 가려 숨바꼭질 하듯이 달님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도 유년 시절 밖에 놀러 갔다가 집에 가면 늘 엄마가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이 안심이었던 것처럼 그 자리에 항상 있다는 사실이 정겹고 반갑다. 비록 가로등 불빛이 심술궂게 짝퉁인 양 얼쩡거려 신경이 쓰이지만 충만한 달은 아랑곳하지 않고 하늘에 당당하다.


정월 대보름이 지금은 예전같이 큰 명절은 아니다. 하지만 어린 시절에는 그냥 넘어갈 수 없는 특별한 절기였다. 설을 지나고 맞이하는 첫 번 보름은 음력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졌다. 지금도 일본은 공휴일이고 북한도 노는 날이라니 동양에서는 특별한 날이 분명한 것 같다.


대보름에는 지역에 따라 독특한 세시풍속이 있었다. 고싸움놀이, 줄다리기, 달집태우기, 부럼 깨트리기, 오곡밥 지어먹기, 쥐불놀이에 더위팔기 등이 있었다.


나는 도심 근교에 살았기에 부락 단위로 갖는 행사는 기억이 없고 두 가지 추억이 있다.


한 가지는 찰밥을 먹었던 기억이다. 집집마다 찹쌀에 팥을 넣고 특별하게 설탕으로 단맛을 냈다. 다양한 먹거리가 없을 때, 찰밥은 귀한 음식이었고 특별한 간식이었다. 우리 고향에서는 집집마다 찰밥을 지어 밖에 내놓았는데 집마다 돌아다니며 찰밥을 얻어먹었다. 남의 음식을 훔쳐 먹는 짜릿한 느낌도 있었고 입도 즐거우니 아주 재미나는 경험이었다.

두 번째는 불놀이다. 평소에는 위험하다며 불을 가지고 노는 일은 엄격하게 금지되다가 보름날 저녁에는 합법적으로 불놀이를 할 수 있었다. 이렇게 기가 막힌 놀이를 마다할 수 있겠는가? 쥐불놀이라고 하지만 모닥불을 피우며 노는 것이 아니라 불깡통을 돌렸다.

빈 깡통에 삥 둘러 가며 바람 구멍을 내고 철사 줄을 달아 나뭇가지를 넣어 불을 붙여 빙빙 돌리는 놀이였다. 힘껏 돌리는 만큼 불이 세차게 일어 귓가에 붕붕 거리며 불깡통이 불야성을 이루는 밤! 정말 환상적인 시간이었다.

그때, 얼마나 가슴이 뛰고 흥분이 되었는지 지금도 그 생각을 하면 얼굴이 달아오른다.


그런데 애로사항이었던 것은 그 깡통을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처럼 어려웠다는 것이다. 물자가 풍부하지 않았던 시절이라 통조림 통을 아무 데나 버리지 않았고 거의 재활용을 했다. 특히 아이들 분유통 큰 사이즈가 가장 좋은 통이었는데 어쩌다 구하게 되면 세상을 다 얻는 기쁨이었다.


공식적으로 불을 가지고 맘대로 노는 날, 평소 할 수 없었던 놀이이니 엄청 열중하고 신이 나서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밤늦게까지 나뭇조각을 찾아 불깡통을 실컷 돌리다 질릴 즈음, 그날의 마지막 행사는 깡통에 가득 담긴 불씨를 하늘 높이 날리는 것이었다.

불붙은 이 가득한 깡통을 하늘 높이 던지면 떨어지면서 붉은 불씨가 까만 밤 하늘을 환하게 밝히며 선명한 선을 그리며 떨어졌다. 명멸하는 불의 자취가 얼마나 황홀했던 지 그 시절의 그 아름다운 장면은 지금도 잊히질 않는다.


놀거리 먹거리가 넘쳐나는 너무도 풍요로운 지금이지만 마음은 그시절의 그때로 돌아가 불깡통을 돌리고 싶다. 그때 그 동무들은 지금 무얼 하고 있을까?

무심한 보름달이 하늘 중천에서 환하게 세상을 비춘다.

#에세이 #정월대보름 #보름달 #불놀이 #찰밥 #글로성장연구소 #별별챌린지 #추억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