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소설>
3.
라운지로 돌아왔을 때는 식은땀이 이마와 목덜미를 적셨다. 바 안으로 들어가 접시에 스테이크를 세팅한 뒤, 패션프루트를 반으로 자르고 망고스틴과 리치의 껍질을 깐 뒤 초록의 샤인머스캣으로 접시를 풍성하게 장식했다. 라운지에는 두 팀의 고객들이 담소를 나누며 쇼핑 후 피로를 풀고 있었다. 이곳에는 두 부류만 존재하는 거 알아? 선애 언니 물음에, 두 부류? 하고 나는 되물었었다. 명품으로 치장한 자들과 유니폼을 입은 자들. 이상하게 선애 언니 말이 가슴을 파고들었다. 돈 많은 자들과 우리처럼 가난한 자들이 아니고? 선애 언니가 피식 웃었다. 나는 유니폼을 툭툭 치며 말했다. 우리끼린 유니폼이 평등해 보여서 좋긴 해.
키친타월을 뽑아 이마와 목덜미에 흐른 땀을 닦았다. 옷매무새와 머리를 매만지고 숨을 고른 뒤 트레이를 받쳐 들고 퍼스널 룸으로 들어갔다. 열이 식지 않아 얼굴과 목덜미가 후끈거렸다. 긴장된 마음과는 달리 맑은 피아노 선율이 물방울처럼 라운지를 통통 떠다녔다. 허 실장은 소파에 앉은 고객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고객은 30대 중반으로 보이는 여자였다. 호텔 룸에서의 프라이빗 쇼핑 계획에 관한 얘기를 나누는 것 같았다. 나는 선애 언니 메모를 참고로 고객의 정보를 추리했다. 저 여자도 VVIP로 위장한 리셀러는 아닐까. 고가의 한정품을 비밀리에 구입하여 몇 배로 부풀려 되파는 리셀러들.
선애 언니는 리셀러들의 횡포에 자주 휘둘린 눈치였다. 그 사이에 허 실장이 개입되었다는 건 라운지에서는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선애 언니가 마지막으로 만난 고객의 정보를 떠올렸다.
허 실장의 개인 고객 중 나이가 가장 많음. 주로 호텔 룸에서 쇼핑을 즐기고, 보안직원이 필요할 만큼 고가의 귀금속류 제품을 자주 구매함. 희귀한 한정품을 유난히 즐기는 타입. 항상 젊은 여자와 동행하지만 여자들이 수시로 바뀜. 취향: 심플하고 섬세하며 여성스러운 면이 강함. 화가 나면 예민하고 과격함.
이외에도 직업과 사는 곳, 스타일과 취향, 선호하는 음악과 취미생활 등 미술작품 경매에 선애 언니가 동행한 것까지 세밀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그날도 어김없이 여자 리셀러가 끼어 있었다고 했다.
나는 깍듯하게 고개 숙여 인사한 뒤 탁자 위에 스테이크 접시를 내려놓았다. 갑자기 왼쪽 아랫배에 날카로운 통증이 몰려왔다. 반사적으로 몸을 움찔했고 샤인머스캣 몇 알이 탁자 아래로 굴러떨어졌다. 고객이 놀란 듯 짧게 비명을 질렀다. 허 실장 역시 놀란 목소리로 고객에게 죄송하다고 했다. 노크도 없이, 당황스럽네. 나는 노크 소리를 못 들으신 거 같다고 했다. 어머 어디서 말대꾸야. 아유 죄송해요. 얼른 사과드리지 않고 뭐 해? 나는 머리를 숙여 사과의 뜻을 전했다. 허 실장은 바닥에 굴러떨어진 샤인머스캣을 주우라고 눈으로 신호를 보냈다. 무릎을 구부리고 탁자 아래로 굴러간 샤인머스캣 열매를 찾았다. 고객의 가는 발목을 감은 하이힐 스트랩이 영화 속 주인공의 것처럼 아름다웠다.
어머머, 이러면 미안해지지. 그러곤 까르륵 웃었다. 고객은 말끝마다 까르륵 웃는 버릇이 있는 것 같았다. 내가 나쁜 사람 같잖아요. 나는 고객의 발밑에 떨어진 샤인머스캣 세 알을 주웠다. 고객의 오른쪽 발목 안쪽에 새겨진 타투가 눈길을 끌었다. 문득 다이어리 메모에서 본 내용이 떠올랐다. 나뭇잎을 물고 날아가는 푸른 새. 블루버드! 갑자기 심장이 뛰었다. 선애 언니가 그날 만난 리셀러 별명과 일치했다. 고객으로 위장한 리셀러. 결코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쇼퍼들을 뒤에서 조종하는 유령 새라고 했다. 그만 됐어요. 어쩔 수 없이 몸을 일으켰지만 나는 신경이 예민하게 곤두섰다. 허 실장은 고객의 기분이 상하지 않도록 상황을 노련하게 이끌었다. 나는 정말로 죄송한 척 다시 사과한 뒤 룸을 나가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