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소설>
5.
고기 두 점을 재빨리 입안에 밀어 넣었다. 강아지가 캉캉 짖더니 갑자기 달려들었다. 나도 모르게 비명을 지르며 강아지를 세게 떠밀었다. 강아지가 바닥으로 나동그라지며 날카로운 소리로 울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고 물린 상처 때문에 놀랄 틈도 없었다. 허 실장과 고객이 동시에 뛰어왔다. 고객은 비명을 지르며 강아지를 안고 소파에 앉아 강아지를 달랬다.
무슨 일이야?
허 실장이 당황한 목소리로 물었다. 오른쪽 손등이 후끈거렸다. 선명하게 박힌 이빨 자국 위로 검은 핏자국이 맺혔다. 한 손으로 상처 난 손등을 꾹 눌렀다. 허 실장이 내 뺨을 세게 때렸다. 너무 갑작스러웠다. 피할 틈도 없이 같은 쪽 뺨을 다시 때렸다. 잇새에 문 고깃덩이가 달큼한 맛을 냈다. 허 실장은 내 팔을 밑으로 잡아끌었다. 처음엔 무슨 뜻인지 몰라 어리둥절했지만, 무릎을 꿇고 사과하라는 의미였다. 허 실장은 공주님 괜찮으시냐며 자동 인형처럼 ‘죄송’이라는 단어를 반복했다. 고객은 울 듯한 목소리를 내며 강아지 상태를 살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허 실장이 공주님께 사과하라고 했다. 나는 귀를 의심했다. 고객이 아닌 강아지에게 사과하라고? 허 실장이 어깨를 툭 쳤다. 이곳은 죄송할 일과 사과할 일이 넘치는 곳인가 보았다. 문득 고기를 뺏어 먹을 때 강아지 역시 내가 느끼는 이 모멸감을 느꼈을지 궁금했다. 손등의 상처가 불에 덴 듯 후끈거렸다.
고객은 굳은 표정을 풀지 않은 채 침묵을 지켰다. 허 실장은 과할 정도의 제스처를 취하며 고객의 기분을 풀어 주려 노력했다. 허 실장이 뾰족한 힐로 내 발꿈치를 지그시 밟았다. 나는 입술을 세게 깨물었다. 선애 언니의 메모에서 매일 빠지지 않던 모멸감의 종류에 대해 떠올렸다. 선애 언니는 모멸의 순간을 박차고 뛰쳐나갈 용기와 맞서다 번번이 주저앉았던 자신을 책망했고, 그런 내용은 나를 혼란스럽게 했다. 맞서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지 나는 어릴 때부터 엄마를 통해 자연스럽게 배우며 자랐다. 엄마는 며칠 전에도 아빠에게 두들겨 맞아 병원에 입원했다. 신고하지 않은 이유를 따지는 건 이제는 서로 피곤한 일이 되었다. 아직 고3 동생의 대학 입학과 졸업까지만 참겠다는 이유도 엄마의 반복되는 변명이었다. 엄마는 아빠의 그늘에서 헤어나려는 노력마저 포기한 상태였다. 나는 아빠보다 엄마의 무기력을 경멸했다.
그날 호텔 룸 문을 박차고 계단을 뛰어내린 선애 언니의 감정선이 잘 그려지지 않았다. 그토록 참았던 고질적 모멸들을 한순간에 놓아 버린 이유 역시 반복된 무기력 탓일까. 내가 선애 언니였다면 어땠을까. 나에겐 참지 못할 모멸감이란 없다. 선애 언니가 말한 진정한 위장이란 자신을 속일 수 있을 정도의 것이어야 했다. VVIP 고객들이 한정품을 차지하기 위해 그들끼리 암투를 벌이듯, 종류가 다를 뿐 욕망이 극에 달한 인간이라면 거미줄에 자신을 던져 넣을 각오쯤은 필수 아닌가. 선애 언니가 명품을 선호하면서도 그들의 위악에 휘둘리지 않으려 꾸준히 갈등했다는 메모는 위선으로 보였다. 원하는 것을 얻을 때까지 완벽하게 속물로 변장할 수 있어야 했다. 상위 1%의 세계에서 일하는 나를 선망의 눈길로 보는 이들은 많았다. 그들이 나를 통해 다른 세계를 욕망하듯, 내 삶을 명품으로 바꾸고 싶은 열망은 엄마가 키우는 고구마 줄기처럼 거침없이 뻗어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