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소설>
7.
나머지 고기를 입안에 밀어 넣었다. 입안에 퍼지는 육즙의 향이 갈증을 더욱 부추겼다. 선애 언니 다이어리에 자주 등장했던 고객은 꾸준히 선애 언니를 괴롭힌 것 같았다. 허 실장은 고객의 위험한 비밀을 매출로 연결했고, 선애 언니는 허 실장의 악행에 휘말려 고객들의 비밀스러운 요구에 노출될 수밖에 없는 처지를 점점 견디기 힘들어했다. 나는 바닥에 떨어졌던 샤인머스캣과 고객이 남긴 패션프루트의 과즙까지 깔끔하게 먹어 치웠다. 오늘 처음 알게 된 열매들이었다. 고객이 아니었다면 그저 평범한 청포도나 이상한 열매 정도로 여겼을 것이다.
어렵게 구한 탓인지 상큼하고 달콤한 맛이 입안에서 향기롭게 퍼졌다. 빈 접시와 음료 잔을 정리하여 라운지 바에 가져다 놓고 물수건으로 손등을 묶었다. 그런 뒤 룸으로 되돌아왔다. 감쪽같은 기분을 느꼈다. 비밀을 좋아하는 고객들이 무엇을 즐기는지, 비밀스러운 공간이 그들에게 베푸는 무한한 혜택의 종류 역시. 탁자 위에 놓인 핸드백을 팔에 끼고 다면 거울 앞으로 갔다. 유니폼과 낡은 구두에 화려한 명품 백은 어울리지 않았다.
장식장 곳곳에 진열된 다양한 제품들이 화려하고 우아한 자태를 내뿜었다. 아무에게나 자신을 허락하지 않겠다는 듯 도도한 표정으로. 의류 행어 아래 장식된 토 오픈 스틸레토 힐에 발을 끼워 넣었다. 핸드백과 잘 어울렸다. 자리를 옮겨 보석에 무지갯빛이 반사되는 팔찌를 팔에 찼다. 눈이 부셨다. 부어오른 손과 서로 기묘하게 어긋났다. 천천히 행어 쪽으로 가 좀 전 고객이 피팅했던 부드러운 가죽 코트를 입었다. 코트가 유니폼을 감쪽같이 감춰 주었다.
다면 거울 앞으로 가 머리를 풀어 헤쳤다. 긴 머리가 어깨 위로 물결치듯 흘러내렸다. 지금까지 한 번도 볼 수 없었던 내 모습이 거울에 담겼다. 아름다우면서도 이질적이었다. 내 몸에 걸친 물건들의 가격표를 따져 보았다. 방 보증금인 5백만 원의 스무 배 가까이 되는 금액이었다. 그들이 한 번 착용하고 싫증 나면 버린다는 비용이 누군가에게는 평생 얻기 힘든 그저 평범한 방 한 칸과 다름없다니. 문득 생활비를 아끼기 위해 오랫동안 참아 왔던 새우감바스 파스타와 붉은 와인의 향긋함이 떠오르며 식욕을 부추겼다.
유니폼 주머니에서 진동이 울렸다. 선애 언니 번호였다. 물건을 훔치다 들킨 것처럼 화들짝 놀랐다. 선애 언니가 깨어난 걸까. 언니를 배신하려던 건 아니라고 변명할까. 근무 재계약 실패가 불러올 암담한 미래는? 언니가 말한 대로 철저히 위장 중이라고 할까. 심호흡을 한 뒤 통화 버튼을 눌렀다. 선애 언니 엄마의 떨리는 목소리가 귀를 파고들었다.
우리 선애가 죽어 가는데, 백화점 관계자들이 아무도 전화를 안 받아요.
전화를 받아 줘서 고맙다고 했다. 간신히 울음을 억누르는 목소리로 사고 경위에 대해 물었다.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고 했다. 몇 초간 전화기 너머로 가쁜 숨소리가 전해졌다. 빨래를 비틀어 짜듯 선애 언니 엄마의 호흡은 점점 일그러졌다. 하마터면 다이어리에 대해 말할 뻔했다. 마침 허 실장이 들어왔다.
저기 우리 선애, 며칠을 못 넘길 것 같다네요.
그 말을 한 뒤 무거운 침묵이 잠깐 이어졌다.
근데, 친하게 지냈다던데… 그럼 서로 깊은 속 얘기까지 다 하지 않나? …선애 이대로 보내면, 아가씨도 힘들 텐데… 우리 선애랑 친했던 거 맞죠?
선애 언니 엄마 말투가 신경을 거슬리게 했다.
죄송한데요, 친하다고 속사정까지 다 얘기 안 해요. 그리고 선애 언니랑 특별하게 지낸 사이도 아니고요.
거울 속 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노려보았다.
저기 어머니, 괜찮으시면 이따 일 끝나고 연락드릴게요.
울먹이는 선애 언니 엄마의 목소리를 들었지만 재빨리 통화 종료 버튼을 눌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