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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숲 Oct 25. 2024

아르코창작선정작/위장의 기술4

<단편 소설>

  4.

  이봐요, 어디 가요? 우리 공주님 식사 챙겨 줘야지. 기다란 귀걸이가 고객의 귓불에서 찰랑거렸다. 쇼트커트 머리에 화려한 눈화장이 어울리는 여자였다. 교육을 제대로 못 시킨 제 탓이니 너그럽게 봐주세요. 애교 섞인 허 실장의 말투는 나긋나긋했다. 살짝 감았다 뜬 고객의 눈썹은 인형처럼 길고 윤기가 흘렀다. 고객의 하얀 손가락과 매끄럽게 잘 손질된 핑크빛 장식의 손톱이 유난히 눈길을 끌었다. 공주님 식사를 챙기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몰라 어정쩡하게 서 있었다. 


  얼른 공주님 식사 챙겨 드려. 


  허 실장이 공손한 손짓으로 고객의 옆자리를 가리켰다. 그제야 털이 수북한 방석 위에서 졸고 있는 작고 하얀 강아지를 발견했다.

 

  쇼핑하는 동안 우리 공주님 심심하지 않게 잘 돌봐 줘요. 


  고객이 한껏 품위를 포장한 채 말했다. 나는 강아지 곁으로 다가갔다. 가장 낮은 등급의 라운지에서 유아 동반 고객들을 많이 봐 왔지만, 최상위층 프라이빗 룸에 강아지를 동반한 고객이라니. 고객은 스테이크를 작게 잘라 한 입 우물거렸다. 


  오 역시, 허 실장님 초이스는 언제나 최상이라니까. 


  허 실장 눈이 초승달처럼 접혔다. 고객은 내 앞으로 스테이크 접시를 내밀었다. 나는 얼떨결에 접시를 받았지만 무슨 의미인지 몰라 어리둥절 서 있었다. 고객은 우아한 손길로 강아지 몸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우리 공주 맛있게 먹어요. 


  그제야 상황이 파악되었다. 허 실장이 잘게 썰어 드리라고 덧붙였다. 개를 사람처럼 대하는 두 사람의 말투가 거슬렸지만, 나는 스테이크 접시를 들고 강아지 앞에 쭈그려 앉았다. 


  허 실장은 자연스럽게 신상품 얘기로 대화를 유도했다. 고객은 샤인머스캣 열매를 한 알씩 입안으로 밀어 넣으며 허 실장 얘기를 들었다. 허 실장은 미리 준비한 팸플릿을 펼쳐 신상품에 대해 설명했다. 그런 뒤 호텔 룸 프라이빗 쇼핑 계획에 대해 말했다. 나는 두 사람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고객은 한 문장을 끝낼 때마다 초록의 알맹이가 또르륵 굴러가는 소리로 웃었다. 3인조 미니 클래식 공연과 남녀 모델 쇼를 추진해 달라고 했다. 허 실장은 완벽하게 준비할 테니 안심하시라고 했다. 고객의 시선이 가끔 내게로 와 꽂히는 것을 느꼈다. 마치 돋보기에 투과된 햇빛에 피부가 녹아내리는 기분이었다. 


  잠깐 일어나 볼래요? 


  고객이 문득 내게 뭔가를 주문하듯 말했다. 나는 엉거주춤 몸을 일으켰다. 어떤 물건의 상태를 살피듯 나를 훑어보던 고객은 작게 중얼거렸다. 


  잘만 하면 작품 되겠어. 


  허 실장과 고객은 15개 한정품인 고가의 명품 시계에 대해 진지하게 대화를 나눴다. 가끔 내가 신경이 쓰이는지 목소리를 낮출 때도 있었다. 허 실장의 한정품 공수 능력은 쇼퍼계에서 유명했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한 번에15개만 생산된다는 한정품 시계를 어떤 루트로 구하는지 나는 궁금했다. 그런 기술을 익힐 수만 있다면, 원하는 모든 것을 손에 넣을 수 있을 것이다. 심지어 내 인생을 명품으로 온전히 재탄생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허 실장은 진열 상품으로 고객의 관심을 유도했고, 두 사람은 그제야 몸을 일으켰다. 


  고객님께 잘 어울리는 특이한 아이템들만 모아 놓았다며, 어렵게 공수해 온 작품들이라고 허 실장은 생색을 냈다. 두 사람은 자리를 이동하며 대화를 이어 갔다. 그들의 대화는 자연스러웠지만 어딘가 위장된 느낌이 강했다. 나는 스테이크를 잘게 썰어 강아지에게 먹였다. 강아지 목에는 생로랑 로고의 펜던트가 달랑거렸다. 강아지는 고기를 금세 삼키고 다시 달라고 낑낑댔다. 내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며칠 동안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일정 탓에 매일 고객용 비스킷으로 식사를 때웠다. 강아지가 고기를 삼킬 때마다 목구멍으로 침이 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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