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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다 Apr 02. 2020

정말 그냥 같이 사는 사람, 해외 셰어하우스 경험담

15살 차이 나는 집주인과 싸운 이유는?


여러 차례의 해외살이를 하면서 다양한 주거형태에서 살아본 경험이 많다.

내 집이 없으니 어쩔 수 없이 내 집을 구해서 살아야 하는데 경제적 능력이 없어서 남들과 같이 살 수밖에 없었다.

간단하게 나의 집 나가면 개고생 경험담을 요약하자면, 러시아 어학연수 시절에는 기숙사, 우즈베키스탄 해외인턴 시절에는 자취, 캐나다 어학연수 시절에는 셰어하우스로 나눌 수 있는데,

그중에서 셰어하우스에서 사는 것이 가장 스트레스가 크고 우여곡절이 굉장히 많아서 하루에도 몇 번씩 이사를 고민했던 그 경험담을 공유해 본다. 


내가 살던 집은 거실에 사는 한국인 집주인과 마스터룸에 사는 외국인, 세컨드 룸에 사는 나로 총 3명이 살았다.

처음 한 달은 나와 집주인만 한 공간에 살다 보니 크게 불편함이 없었고, 조용해서 너무나 편했다.

내가 입주하고 한 달 뒤에 외국인 셰어 메이트가 들어오고 여러 갈등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집마다 규칙이 있는 집도 있고 없는 집도 있는데, 내가 살았던 집의 규칙은 정말 간단했다.


- 밤 10시 이후, 주방과 화장실 사용 제한 ( 라면 끓이기는 가능하지만 도마질은 금지, 샤워 금지)

- 집에 친구를 데리고 와도 괜찮지만, 숙박은 금지

- 설거지는 음식 먹고 바로 하기

- 일주일에 한 번 개인 방 청소하기


정말 상식적이고 지키기 쉬운 규칙이었고, 심하게는 규칙이 18개까지 있는 집에 비하면 우리 집은 꽤 자유로운 편이라고 생각했다.



어느 날, 어학원에서 수업을 듣는데 문자 하나가 왔다.


"이건 좀 아니다. 먹고 바로 치워야지"

"냉장고 문 열고 다니면 전기요금 나눠내야 돼"


문자를 자세히 확인해 보니까, 설거지통에는 짜파게티를 끓여 먹은 냄비,

유통기한이 지난 반찬과 냉동 가리비가 음식물 쓰레기통 근처에 있는 사진과 함께 집주인 언니가 문자를 보낸 것이다. 나는 문자를 보자마자, 아차 싶었고 너무 미안했다.


아침에 정신없이 나오느라 식사 후에 주방 청소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것이 갑자기 생각났다.

명백히 나의 잘못이고, 급해서 깜빡했다며 다음부터 주의하겠다고 답장을 했다.


생각해 보니 집에 와서 대화로 주의를 줬으면 모르겠는데, 문자로 보이지 않는 감정이 보이게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지 기분이 상했다.


평소에 집주인은 친구들을 초대해서 집에서 요리를 해 먹고, 설거지통이 가득 찬 채로 외출을 하고 돌아온 적도 많은데 왜 내가 한 번 설거지를 안 했다고 이런 소리를 들어야 했는지 기분은 상했지만 그저 세를 내고 사는 을의 입장에서 집주인 갑에게 어떤 말로 대응하겠나, 그냥 사과를 했다.


그런데 냉장고 문을 열고 다닌 적은 없는데, 왜 나한테 저런 말을 했을까? 싶어서 반박의 문자를 보냈다.


며칠 전부터 냉동실에 음식들이 가득 차서 문을 닫아도 자꾸 열리고, 닫아도 자꾸 열려서 냉동실 문이 고장 난 줄 알았다. 그런데, 그 문이 열려있어서 냉동실 문을 제대로 안 닫았다고 생각해서 저런 말을 했나 보다.


나는 냉동실에 보관하던 재료들이 별로 없었고, 평소에 냉장고를 사용하면 문이 닫혔는지 확인하는 편인데 저런 문자를 받으니 기분이 나빴다. 마스터룸에 사는 애한테는 확인해 봤을까?


몇 시간 뒤에 또 문자가 왔다.


집주인

"앞으로 주마다 당번을 정해서 쓰레기를 버리자"

"냉장고 문은 냉동실 정리를 좀 해서 문이 잘 닫힌다.

앞으로 신경 써서 닫아줘"


그동안 쓰레기통이 가득 차면 보는 사람이 알아서 치웠는데, 내 사건을 계기로 당번이 정해졌고 일주일에 한 번씩 3명이 돌아가면서 주방 쓰레기통,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기로 했다.




몇 가지 말하기에는 좀 그렇지만 기분은 나쁜 점들이 몇 가지 있었다. 모든 것을 나열하기에는 무리가 있어서 기억에 남는 불편했던 점을 적어봤다.

- 마스터룸에 외국인 메이트가 들어오고 나서 남자 친구를 집에 데리고 와서 재우고 가는 일이 잦아졌다.

또, 일주일에 한 번씩 쓰레기를 버리는데 외국인 메이트가 쓰레기를 안 버리고 당번을 그냥 넘어가는 일도 있었다. 항상 그 친구 다음 차례가 내 차례였는데, 지난주부터 넘어온 쓰레기를 내가 버리니까 당번을 정하는 이유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걸로 싸움 만들기 싫어서 그냥 내가 버리고 넘어가는 일이 많았다.


- 밤 11시가 넘었는데 주방에서 달그락달그락 거리는 소리가 들려서 조용한 집에 소음이 가득했다.


- 냉장고에 집주인의 재료로 가득 차서 내가 수납할 공간이 부족했다.


- 화장실, 부엌을 쓰고 싶을 때 누군가 사용하면 순서를 기다리기가 싫었다.


- 방음이 안 되는 집이라 저녁 9시마다 옆집 화장실에서 목욕을 하는 물소리와 욕조에 발이 움직이는 뽀드득 소리가 듣기 싫었다. 아이가 있는 집인지 소리 지르고 부모님은 훈육하느라 언성을 높이는 소리가 너무 거슬렸다.


- 거실에 사람이 살다 보니 늦은 시간에 화장실, 부엌 사용에 눈치가 보였다.

거실에 사람이 있으면 부엌에서 요리를 할 때, 냄새가 날까 봐 시끄러울까 봐 조심스럽게 행동했다.


- 공용공간 청결 유지를 나만 신경 쓰는 것 같아서 손해 보는 기분이었다.

  예) 마스터룸에 사는 메이트가 흘린 양념 소스, 내가 치우지 않으면 집주인에게 내가 청소 안 한 의혹을 받을까 봐 내가 청소했다.


- 마스터룸 사는 메이트가 밤마다 집에 들어오고 나가고를 반복했다. 꽤 늦은 시간에 현관문 열고 닫는 소리가 나의 취침을 방해했다. 남자친구를 집에 데려와서 일주일에 3-4번을 숙박을 시키는데 집주인이 뭐라안하는게 너무 짜증났다.







집주인은 본인이 거슬리는 것이 있으면 나에게 문자로 이런 점을 주의해 달라며 말했다.


나도 셰어하우스에 사는 것이 처음이라 신경 쓰지 못한 부분에서 남에게 배려하지 못하는 행동을 지적받으니

반성도 되면서 더 같이 사는 사람들을 위해 나의 행동을 조심해야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나에게 이런 것 저런 것은 하지 말라면서 정작 집주인과 다른 메이트는 나에 대한 배려 심 없이 본인들은 나에게 피해를 주는 행동을 했다.


그럼 불만이 있으면 말을 하지 왜 가만히 있냐며 나를 비난하는 사람도 있을 것 같다.

그렇게 싫으면 이사를 가면 되지 왜 그 사람들이랑 같이 사냐며 혀를 차는 사람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집을 찾는 과정이 힘든 것을 알기에 다시 집 찾기에 신경 쓰기 싫었고, 내가 이해하고 넘어가면 호구가 되고 짜증 나겠지만, 그런 나의 감정소비를 하찮은 인간들에게 낭비하기 싫어서 이해하며 넘어가는 것이 낫다고 생각해서 그냥 그러려니 참고 살았다.


조용히 잘 살고 있다가 집주인으로부터 나에게 또 문자가 왔다.


집주인

"방 청소를 안 한지 오래된 것 같은데, 방청소 좀 해야겠다."

"방을 쓰는 사람은 너지만, 집 자체는 내 이름으로 빌린 거라서 집에 문제라도 생기면 내가 비용을 물어야 한다"

"방을 깨끗하게 관리할 의무가 있다"


이 문자를 보고 든 생각은 우리 엄마도 안 하는 방청소 잔소리를 나에게 왜 할까?

내 방문을 열어 봤을까? 아무리 내가 이 집을 빌려서 살지만 내 허락도 없이 내 방에 들어온 건가?


청소를 안 한 것은 내 잘못이고 이 지적을 받아야 할 이유는 사실이라서 앞으로 청소 주의하겠다고 답장했다.



그리고 며칠 뒤에 또 문자가 왔다.


집주인

"이번 주가 청소 당번은 마스터룸 사는 친구지만, 

네가 버린 음식물 쓰레기 양이 많으니까 음식물 쓰레기통을 좀 비워줘"

"마스터룸 사는 애는 음식물 쓰레기를 별로 버리지도 않는데, 매 번 버리게 하는 것이 미안해서"


그동안 셰어 하우스에 살면서 청결에 대한 지적을 받으면 군말 없이 받아들였지만, 이번 지적은 도저히 그냥 참고 넘어갈 수가 없었다. 내가 버린 쓰레기 양이 많은지 무게라도 측정해 봤나? 어떻게 그 음식물 쓰레기 중에서 내가 버린 것이 많다고 판단하지? 본인이 버린 것은?


매주 당번이 있고 서로 차례가 되면 쓰레기를 버리는데, 내가 버린 쓰레기 양이 많아서 당번이 아닌데도 내가 쓰레기통을 비우라는 상황이 이해가 안 됐다.


그동안 일을 하면서 바깥 음식을 사 먹는 일이 많았고, 대부분 끼니는 일터에서 제공해주는 무료 직원식을 먹어서 집에서는 밥을 해 먹는 일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음식물 쓰레기를 만드는 일이 별로 없었지만, 그래도 내가 버리는 차례이고 공평하게 순서가 돌아가는 것이라 내 차례에 내가 버린 쓰레기 양에 상관없이 쓰레기통을 비웠다. 그런데 집주인이 내가 버린 쓰레기 양이 많다고 나보고 쓰레기통을 비우라는데 기가 차서 따졌다.


"마스터룸 사는 애는 당번인데도 쓰레기통을 안 비운적이 많지만, 내가 버려준 적이 있다"

"쓰레기를 버리라고 말해도 무시하고 안 버리는 당번을 지키지 않는 마스터룸 사는 애한테는 왜 뭐라 안 하냐"




집주인

"왜 이런 것에 화를 내는지 모르겠다"

"상식이 있으면 쓰레기를 많이 버린 사람이 쓰레기통을 비우는 게 맞는 거지"라며 

화를 내는 나를 오히려 이상하게 취급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동안 나는 불공평하다고 생각했고, 그동안 쌓인 열 분과 함께 불만사항을 곧이곧대로 다 말했다. 결국 집주인은 내 전용 음식물 쓰레기통을 만들어줬고 이 상황은 마무리되었다.


사소한 생활습관 차이로 지적을 받으니 기분이 상했고, 같이 사는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기가 싫었다.


본인들은 시끄럽게 목소리가 울리도록 전화를 하면서, 이어폰 끼고 혹시나 시끄러울까 봐 속삭이며 친구랑 통화하던 나의 배려는 유난이었을까?







가족이랑 살면서도 생활 습관과 집안일을 하는 가치관 때문에 싸우는 일이 빈번한데, 전혀 모르는 남이랑 사는 것은 쉽게 볼 일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세를 나눠내면서 정말 그냥 같이 사는 사람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그 사람들과의 관계를 유지하면서 흔히 말하는 현타가 많이 느껴졌다.


정작 규칙을 지키지 않는 사람한테는 뭐라 안하고, 나한테만 뭐라하는 것이 억울했다.


같이 살면 맛있는 음식도 같이 해 먹고, 날씨가 좋으면 같이 놀러 가는 정말 가족의 모습을 상상했던 내가 엄청난 환상 속에 갇혀 있던 사람이었다. 

짐마다 분위기는 다르다고 하지만, 내가 살던 집은 메이트들끼리 서로 대화를 전혀 안 하고 마주치면 그저 안녕이라는 인사만 건넸다. 서로 집에 있는 시간이 다르다 보니 일주일 동안 얼굴도 못 보고 지나가는 때도 있었다.

어쩌면 각자의 집에 있는 시간을 방해하지 않는 면에서는 좋고 편했다. 나 역시 누군가 나의 시간을 침범하는 것을 선호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집에 같이 사는 사람이 있는데도 대화를 한 마디 안 하고 삭막하고 어두운 분위기에 집에 있으면 괜히 우울한 감정이 들기도 했다.




내가 너무 과도하게 남을 배려했을까, 최소한의 사람 간의 예의를 지키고 싶었던 나는 오버스러웠을까?

집은 편하게 휴식을 취해야 하는 나만의 공간인데, 신경 쓰고 자유롭지 못하는 제약적인 생활공간 사용에 꽤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물론 가끔 음식을 하면 나눠 먹기도 했고, 맛있는 음식이 있으면 식탁 위에 올려두고 먹으라는 쪽지도 남기며 나름 훈훈한 일들도 있었다. 또, 내가 살던 집은 집 근처에 대형 쇼핑몰과 편의시설이 많아서 좋았다.

무엇보다 가장 좋았던 점은 큰 창으로 저녁에 붉게 물든 노을의 모습을 보며 감동에 심취하기도 참 좋았다.


불가피하게 셰어하우스를 살게 된다면, 같이 사는 사람들과 불만 사항이 있으면 텍스트보다는 말로 차분히 대화를 하는 것이 좋고 내가 스트레스를 받을 정도로 같이 지내는 사람과 불편하다면 하루라도 빨리 거주지를 바꾸는 것이 좋다. 또, 인생을 살면서 내가 불리한 상황에서 대처하는 방법과 타인과 갈등이 생기면 해결하는 지혜로움도 이번 기회를 통해서 알 수 있었다.


셰어하우스 살이는 나에게 지금은 술 마시며 그때의 생활을 추억하는 안주거리가 되었다. 그때는 왜 그렇게 사소한 것들도 화가 났을까, 예민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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