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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다 Jun 11. 2023

나이가 서른 살인데 생각은 여전히 애새끼입니다.

어떻게 살아야 되는지 몰라서 그냥 살다 보니 서른 살이 되었다.


정신을 차리고 내가 이 삶을 꾸려가는데  몇 해를 보내버렸나 세어보니 벌써 손가락으로 세도 한참을 더 쥐었다 폈다해야 서른 번을 셀 수 있다.


스무 살이 되었을 때는 편의점에서 신분증을 보여주고 맥주를 살 수 있다는 설렘으로 늘 신분증을 손에 꼭 쥐고 편의점에 들어갔다. 혹시라도 검사를 안 하면 어떡하지? 나는 내 신분증을 반드시 보여주고 내가 스무 살이라는 것을 확인받고 싶었다. 그렇게 더 이상 신분증을 검사받는 일이 귀찮아지고 이제는 신분증 검사조차 안 하는 때가 더 많아진 것을 보니 나는 누가 봐도 외형적으로 어른인가 생각했다.


그런데 앞자리가 1에서 2 그리고 3이 되었지만 어째 내가 눈물을 흘리는 횟수는 더 많아졌다. 삶을 어떻게 꾸려야 하는지 해본 적이 없어서 처음 겪는 일들이 많았다. 기억을 하지 못할 정도로 사소한 일들 그리고 기억하고 싶지 않아도 끔찍하게도 가끔 그때의 처음 겪어보는 일들이 있다.



어른이 되면 눈물을 흘리지 않아도 세상을 살아가는 거대한 능력이 생기는 줄 알았다.


그저 자연스럽게 나이가 쌓이면 세상을 대처하는 능력치도 숫자가 올라가겠지 했는데 그건 저절로 되는 일이 아니었다. 모든 것은 직접 만들어가는 것이었다.


고깃집에서 고기를 구우며 늙은 할아버지가 술 한 잔을 하자며 내 손을 덥석 잡으면 뿌리치고 한 시간에 오천 원을 벌어보겠다고 알바를 해 봤다.


입에 담을 수 없는 쌍욕을 하는 사람을 이사님이라 칭하며 그 사람의 농담에 웃으며 박수를 치는 것이 사회생활이라는 것을 알아갔다.


처음 비행기를 타보고 한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 살아보며 김치가 냉장고를 열면 쉽게 먹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눈물도 흘리고는 했다.


첫 직장을 그만둔다고 부장님한테 몇 시에 어떤 말로 퇴사를 한다고 할지 수천번의 상상을 하고 난 뒤에 사직서도 던져보고 직장 생활을 하며 가장 증오했던 누군가의 죽음을 맞이하기도 했다.  


영원히 친하게 지낼 거라 믿었던 친구와  매일 두 시간이 넘게 통화를 하는 가까운 사이였는데도 어느 날 갑자기 연락이 끊기기도 하고 어디에 존재하는지 몰랐던 사람과 문득 새로 친구가 되는 인간관계의 새로움도 배웠다.


반드시 선택을 해야 한다

늘 선택을 해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고 고민을 하고 어떤 결정을 내린다면  예상과 다른 인생의 흐름을 후회하지 않고 지혜롭게 인정하는 것도 모두 다 처음이라서 어른이라는 사실을 부정하고 싶었다.


어른들은 나에게 넘어지면 일어나는 방법을 알려줬고 친구와 싸우면 사과를 하는 예의를 가르쳐 줬다. 또 문방구에서는 돈을 내고 스티커를 사야 되며 마음대로 가방에 넣고 돈을 내지 않는 일은 올바른 일이 아니라 했다.


학교에서는 시험을 보면 점수라는 결과가 나오고 내 노력과 다르게 점수가 나오고 이름 옆에는 등수를 매겨지는 평가라는 무서움을 처음 느끼기도 했다.


그룹으로 활동을 하면 나만 잘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친구도 함께 잘해야 좋은 결과물을 만들 수 있는 협력의 힘도 기를 수 있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첫 발을 내디딘 나는 그저 물에 흠뻑 젖은 한지처럼 벅벅 쉽게 자극에 찢어졌다. 누군가의 말에 벅벅, 누군가의 행동에 벅벅, 그렇게 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몰라서 눈물에 취약한 나는 어른이 되면서 벅벅 찢어지기 좋은 한지처럼 사회로부터 쏟아지는 울컥함에 흠뻑 젖어있는 연약한 존재 그 자체였다.


진짜 어른들은 나에게 이 세상에서는 내가 잘못을 하지 않아도 배신을 당할 수 있고 몇 백 번의 이력서를 제출해도 면접을 보러 오라는 연락은 쉽지 않다는 선택받음의 끔찍한 기다림의 과정을 알려주지 않았다.


어떻게 메일을 써야 일 잘한다는 소리를 듣는지 개소리를 하는 상사한테라도 예쁨 받으려면 억지로 웃어야 한다는 것은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다.


착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배웠는데


진짜 사회에서는 여우처럼 교묘하게 잘못된 일을 하면서 밥그릇 챙기는 사람들이 더 편하게 살아간다. 정말 착하면 사람들이 착함을 이용해서 호구가 돼서 누군가에게 이용당하는 사실은 정말 뒤늦게 알았다.


직장에서는 내 잘못이 아니라 해도 내 잘못이 되는 억울함을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견뎌내야 통장에 200만 원이라도 들어온 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내 통장에 들어오는 돈의 원천은 스스로 찾아야 하고 그 원천의 일하는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지속적으로 또 다른 회사에서 나의 존재의 가치를 돈으로 인정받아야 했다. 다 같은 어른이라도 각자 통장에 들어오는 돈의 숫자는 달랐던 것이다.


회사를 다니지 않으면 스스로 회사를 차려서 돈을 버는 방법도 있다고 한다. 그것을 사업이라 하는데 사업은 더 낯설다. 그저 누군가 주는 월급을 받아먹는 그런 삶이 지금은 더 익숙하다.



내가 생각한 어른의 삶은 어떤 결정도 쉽게 하고 주변에는 나를 도와주는 능력 좋은 사람들과 내 침대에 누워서 잠을 잘 수 있는 집이 있고 통장에는 든든한 돈의 액수가 나를 지켜줄 것이라 믿었는데 그런 것은 서른이 됐어도 머나먼 어른의 일인가 보다. 탄탄대로 당연하게 이룰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일들은 다른 세상의 사람만 할 수 있는 것 같은 대단한 일처럼 낯설기만 하다.



난 아직도 떡볶이 밖에 모르는 어린애인데


초등학교 때는 내가 28살이 되면 차도 있고 집도 있고 남편도 있을 거라 생각했던 어른이 된 나의 모습은 전혀 달랐다.


그냥 매 순간 뇌가 꼬이고 꼬일 대로 고민하다 어렵게 선택을 하고 예상하지 못했던 결과는 후회로 맞이하면서 다른 선택을 할 걸 과거에 얽매여 살다 보니 어쨌든 서른 살이 되었지만 아직 집도 없고 차도 없다. 내 주변의 친구들은 대부분 결혼을 준비하는데 나는 결혼을 꿈꿔볼 남자친구도 없다. 이미 아이를 낳은 친구들도 있다. 같은 서른 살 이하도 삶의 모습이 너무 다르다.


지금 나는 삶의 의미가 뭔지 몰라서 도대체 이 주어진 삶을 어떻게 꾸려가야 할지 모르겠다. 여전히 모르는 사실들이 많고 어떤 말을 해야 현명하게 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지도 모른다. 집은 어떻게 사는 것이며 월급을 받으면 돈은 어떻게 모아야 하며 결혼을 하지 않는 삶은 어떤 모습이며 인생을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방법은 그 어떤 수업시간에도 배운 적이 없다.


직장 동료에게 청첩장을 받으면 얼마를 축의금으로 내야 하는지도 모르고 어떤 주식을 사야 수익률이 좋은지도 모르고 어떤 지역 아파트 값이 얼마가 올랐다는데 그게 어떤 의미인지 나에게는 너무 남의 얘기 같다.


나에게는 아직도 어디에서 파는 떡볶이가 더 쫄깃하고 맛있는지 어디 카페에 파는 케이크가 더 촉촉한지가 더 의미 있는데 말이야? 엄마한테 돈을 받지 않아도 내가 스스로 맛있는 것을 사 먹을 수 있는 사람이 되었지만 어른은 아직 아닌 것 같은 느낌이다. 어떤 은행의 적금을 들어야 현명한지 비교하는 일은 아직도 어렵다. 연봉을 몇 프로 올리고 이직을 해야 성공인지도 잘 모르겠다는 것이다.




우리 삶의 모습이 어떤지 정해두지 않았다


하지만 어쩐지 대부분의 삶의 모양들은 비슷하다. 취업을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서 가정을 꾸리는 것이 일반적인 모습들이다.


그런데 나는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은 나의 모습을 미래의 삶에 그려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내가 가진 이 삶조차 어떻게 사는지 몰라서 혼란스러운데 어떻게 타인과 결혼을 해서 같이 살고 아이를 낳으며 책임감을 함께 공유할 수 있는 걸까?


내 옆에서 종소리가 울리면 매점에 빵을 사러 가던 친구들 옆에는 이제 내가 아닌 낯선 남자들이 있다. 친구들이 점점 각자의 남편을 찾아서 떠난다. 나도 남편을 찾아야 하는 걸까? 남편을 찾으면 삶의 의미는 또 어떻게 달라지는 걸까? 소풍을 가면 보물 찾기를 하는데 나만 빼고 다른 친구들은 다 보물을 찾아 기뻐하는 것 같다. 내 보물은 어디에 숨어있을까 아니면 나의 보물만 없는 보물찾기 게임인가? 그런데 남들은 다 찾은 보물 그렇게 탐나지는 않다.


어떤 삶을 꾸리고 싶은지 제대로 생각도 못해봤다. 그냥 살다 보니 매 달 통장에 들어오는 월급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는데 월급 말고도 또 생각할 것들이 훨씬 많다.


매일 출근을 하면서 이 일을 계속하는 것이 맞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면서 또 나는 다음에는 어떤 회사를 다니게 될지 상상한다. 그저 아직은 불안정한 직장 때문에 도무지 다가오게 되는 미래가 두렵기만 하다. 오늘 하루 출근하고 퇴근하는 일만 잘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게 너무 힘겹다.


진짜 어른이 되는 때는 언제라고 할 수 있을까? 어른은 어떤 삶을 가져야 어른이 되었다고 정의하는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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