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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저기요 Jun 12. 2020

내 얘길 들어달란 건 아닌데

얼마 전 친구네 집에 놀러 갔다. 셋이 함께 모이는 자리였다. 주말이라 남편에게 양해를 구하고 "무슨 중요한 약속이기에 애도 팽개치고 나가냐"는 친정 아빠의 핀잔도 들어가며 어렵사리 잡은 약속이었다.


그토록 기다렸던 외출이고 약속인데. 한 시간이 채 되기도 전에 남편에게 집에 가고 싶다고 카톡을 보냈다. 재미는커녕 소외감만 느껴서였다. 같은 업계에 종사하는 친구들은 내가 전혀 모르는 이야기를 한 시간 넘게 계속했다.

 

이 상태가 60분 지속됐다 


정말 중요한 이야기고, 둘이 그 주제를 가지고 의견을 나누는 게 정말 필요했다는 것 안다. 한때는 나도 같은 업계에 있었어서 대화를 1번부터 100번까지의 피스로 치면 간혹 28번이나 67번 정도는 아는 척을 할 수도 있었다. 근데 그게 참 외롭고 쓸쓸했다.


나는 뭘 기대하고 이 자리에 온 걸까. 육아 이야기를 하러 온 것도 아니고, 회사 다니는 일상을 나누려고 온 것도 아니고. 그냥 집과 회사를 벗어나 좋아하는 사람들과 편한 시간을 보내고 싶었던 건데. 점점 불편해졌다.


애가 없거나 결혼을 안 한 사람들 앞에서 결혼과 육아 얘기는 되도록 하지 말자고 늘 다짐한다. 강박을 갖고 스스로 결계를 친다. 그래도, 내가 속해 있는 영역이 거기라서 콘텐츠가 한정적일 수밖에 없다는 게 가끔 울컥하다.


아무콘텐츠 챌린지 수준으로 아무 콘텐츠나 마구 소비하며 살지만 그중 내가 정말 자신 있다고, 이 분야만큼은 내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게 있을까? 새벽에 잠깐 깨면 인스타 광고 영상을 보며 입 헤 벌리고 있는 게 나다. 당근마켓에 디올 귀걸이나 이큅먼트 블라우스 같은 걸 말도 안 되는 금액에 올려놓은 혜자로운 판매글은 없는지 알림창을 수시로 눌러보는 아줌마.


힙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스스로를 위로했건만 정신승리는 아무래도 한계가 있다. 자신들이 속한 분야에서 전문성을 갖고 깊이 몰입하는 친구들의 대화에서 나는 겉돌고만 있었다. 솔직히, 진짜 솔직히 좀 원망스럽기도 했다. 둘이 만나서 얘기하면 될 것을 방청객처럼 리액션도 하기 힘든 나를 왜 부른 것이야. 시무룩한 상태로 멍을 때리며 문득 예전 일을 떠올렸다.


10년 전쯤 첫 아이를 낳은 친한 언니를 지인의 결혼식장에서 만났다. 모두 같은 업계 사람들이 모인 자리였다. 당시 업계의 화제는 영화 <드라이브>였다. 그 영화 연출 정말 죽이지 않냐, 감독 전작도 찾아봤다, 음악은 또 얼마나 좋게?, 라이언 고슬링 인생 캐릭인 듯. 오랜만에 만난 업계 지인들은 한결같이 <드라이브> 얘기만 했다.


집에서 감금 수준의 생활을 하고 있던 언니는 결혼식장을 뜨며 나지막이 말했다. "나영아, 나 다른 건 몰라도 <드라이브> 만큼은 꼭 봐야겠어." 대화에서 철저하게 소외당한 사람이 다음번엔 절대 소외당하지 않겠노라 스스로 다짐하며 하는 말이었다. 그땐 몰랐었다.


온전히 나에게만 집중할 수 있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의 처지를 헤아리기란 얼마나 힘든 것일까. 그때의 나를 변호하자면 그렇지만,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언니, 아이 키우는 거 힘들지?"라고 속 깊은 척이라도 하고 싶다. 그때의 언니에게 너무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그땐 정말 몰랐어, 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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