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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저기요 Oct 07. 2020

그래서 얼마에 샀어?

집 샀다는 친구에게 제일 처음 묻고 싶었던 질문

친구가 얼마 전 집을 샀다. 집 문제로 오래 고민해온 친구였다. 남편과 지지고 볶고 사네 마네 이혼 직전까지 갔다고 했다. 청약 당첨 확률을 높이려 둘째 임신까지 고민했다는 대목에선 허걱 했다.


'잘됐다'라고 생각하며 "잘했네" 하고 말하면서도 왠지 가슴 한 구석이 모서리에 찔린 것 같았다. 비슷한 기분이 들었던 때가 떠올랐다. 고등학교 때 가장 친했던 친구가 4년이나 만난 남자 친구를 보여주지 않고 스물여덟 살에 결혼한다고 했을 때, 수능 끝나고 오랜만에 통화하게 된 친구가 서울대에 붙었다고 했을 때, 한 달 차이로 결혼한 친구가 반전세로 들어가는 아파트 보증금이 4억이라며 "요즘 4억도 없으면 거지 아니냐"라고 했을 때.


결혼 후의 삶은 정말 제각각이라서, 대충 이 정도겠지 하고 함부로 가늠했다가 전혀 다른 걸 깨닫고 벙찔 때가 종종 있다. 한 달에 얼마를 벌고, 어떻게 소비하고, 어디에 투자하는지 등등. 천차만별의 정도가 너무 크다 보니 서로 오픈하는 것은 금물이요, 섣부른 예상도 말아야 한다. 어쩌다 알게 돼도 비교는 정신 건강에 좋지 않다. 그런데 나는 어지간하면 대부분의 사람들과 나의 처지를 비교한다. 그들과 비교해서 나의 순위를 매기고, 평균보다 위인지 아래인지를 빠르게 계산한다.  


2년 전에 무리해서 집을 샀다. 서울 시내 모든 아파트가 그렇듯이 우리가 산 집도 많이 올랐다. 경제적인 면에선 크게 나아질 희망이 전혀 없었는데 영혼까지 끌어모아 집 한 채 마련해 둔 게 이렇게까지 든든할 줄은 몰랐다. 고2 때 유행했던 폴로 스웨터를 대치동 할인매장까지 가서 거금 17만 원을 주고 샀을 때, 스물아홉 살 때 레아 세이두가 <미션 임파서블 4>에서 들고 나온 프라다 사피아노 백을 마침내 손에 넣었을 때. 나도 남들과 비슷한 수준의 것을 소유할 수 있어 뿌듯했다. (비록 갚아야 할 돈이 많지만) 집이 주는 뿌듯함은 그와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다.


나도 집을 갖고 있으면서 왜 집 샀다는 친구 말에 가슴이 따끔따끔했을까. 어디 샀어? 얼마 주고 샀어? 가장 먼저 묻고 싶은 질문이었다. "그래서 얼마에 샀어?" 참고 참다가 물어봤다. 상상을 초월하는 액수였다. 대출을 아무리 많이 받는다 해도 기본으로 깔고 있는 자산이 최소 8-9억은 돼야 살 수 있는 집이었다.


평소 친구의 부동산 고민을 들으며 우린 집을 사서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곤 했었다. 한편으론 친구가 집을 사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었다. 친구보다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않은 나는 집이 있고, 친구는 집이 없는 게 나에겐 왠지 더 나은 상황인 것 같아서.  


비교하고 작아지는 건 흡연만큼 나쁜 자학 행위인데 정말 끝이 없다. 자본주의 사회의 핵심은 돈이다.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도 돈이다. 돈이 많은 사람이 꼭 훌륭한 건 아니지만 돈이 많은 건 부럽다. 그냥 순수하게 돈을 좇으면 되는데. 돈에 초연한 가치관이 있는 것도 아니면서 돈에 상처받고 돈에 연연한다고 대놓고 인정을 못하니 변명만 길다.


아이를 낳은 뒤 보편적인 욕망의 레이스에 뛰어들었다. 예전엔 밖에서 지켜 보며 "뭘 저렇게까지..." 하고 혀를 끌끌 차는 입장이었다. 이젠 내가 관전의 대상이다. 좋든 싫든 레이스에 뛰어든 이상 앞만 보고 달려야 하는데 가끔 저만치 앞서 나가는 사람들을 보면 스텝이 엉킨다. 주저앉아 멍 때리고 싶다.


여전히 나는 내가 남들과는 다르다고 생각하는 걸까? 대체 뭐가 다른데? 돈 없는 게 싫고, 돈 없는 상황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이해 안 되고, 겪어보지 못한 가난을 재난처럼 여기는 나. 돈이 많은 걸 부러워하고 여유로운 삶을 욕망하는 나. 가난에 대한 두려움과 돈을 향한 욕망을 제대로 인정하면 어떤 경지에 이를까. 나의 마음, 나의 욕망. 분명 나의 것인데 나도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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