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터러시(문해력)와 독서

독서의 목적

by 기혜선
Literacy(리터러시)


"심심한 사과"에 대한 논란은 한 번쯤 들어보셨을 겁니다. 사과를 왜 심심하게 하느냐 뿐만 아니라 심심의 한자어를 다르게 풀어 지루하게 사과하는 것이라는 해석까지 나오면서 젊은 세대의 문해력 '논란'을 양산했지요. 이후에도 "사흘"을 4일인 줄 알았다거나 "추후 공고"는 어디 고등학교냐 등의 일화를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문해력 관련 프로그램에서 초등학교 아이들에게 육교가 무엇인지 묻자 학교 같은 거냐고 되묻습니다. 용수철이 무얼까 물으니 아빠 친구 이름 같다고 하기도 하고요.


한편으로는 이러한 문제가 우리 아이들이나 젊은 세대에게 국한되는 것일까 생각해 봅니다. 우리말의 70%가 한자어라지만 한자에 대한 교육이 약화되고 한자보다 영어단어가 익숙한 세대에게는 낯선 말인 것이 당연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육교는 사라지는 추세이니 육교 한번 안 건너본 아이들이 육교를 모르는 건 당연할 수도 있고요. 어쩌면 언어의 사회성이나 역사성의 성격에서 조금 너그럽게 봐야 하는 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문해력이라고 통용되는 리터러시(Literacy)는 사실 문자의 뜻을 알거나 읽을 줄 아는 것만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읽고, 반응하고, 표현하며 참여하는 등 훨씬 더 넓은 의미를 내포합니다. 조금 더 이해하기 쉽도록 반대 의미를 생각해 볼까요? 문맹(illiteracy)은 실제로 문자를 읽을 줄 모르는 것만 칭하지 않습니다. 읽었지만 이해하지 못하거나 혹은 잘못 해석하여 오류를 만드는 것을 모두 일컫습니다. 오류에는 개인의 이해문제도 있지만 소통이나 사회적 담론을 만들어 내는 데도 영향을 미칩니다. 결국 리터러시는 글자를 읽고 해독하는 것을 넘어 의미를 구성하고 사회적 참여에 중요한 역량이 되는 것이지요.


하지만 우리말로 바꾸어 쓰는 "문해(文解)"나 "문맹(文盲)"의 한자어를 풀이해 보면 글자를 익히지 못한 것에 국한하여 생각하게 합니다. 그래서 글자 뜻을 모르는 것, 어휘 학습에 국한하여 문해력의 문제를 다루게 되는 것은 아닐까 싶습니다. 하지만 리터러시는 그저 문자 언어에 국한하여 뜻을 아는 능력의 문제를 넘어섭니다.


리터러시는 실천


문해력, 즉 리터러시의 핵심은 '실천'에 있습니다. 그저 읽을 줄 아는 능력, 언어를 쓸 줄 아는 능력이 아니라 언어적 경험과 문제해결, 사회 참여 등의 실천으로 직결되는 것이지요. 따라서 단순히 학습을 위한 능력이 아니라 삶의 전반에서 꼭 필요한 역량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현대 사회에서는 기술이 발전하고 다양한 매체가 등장하면서 의미를 가진 다양한 기호가 등장함에 따라 문자언어를 포함한 기호를 읽고 맥락적으로 의미를 구성할 줄 알아야 합니다. 언어를 포함하여 영상, 음악 등 시각적 기호, 청각적 기호와 같은 감각적인 기호들이 각각 의미를 갖기도 하지만 각각이 결합되어 새로운 의미를 만들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같은 영상이라도 음악에 따라서 분위기와 전달하는 이야기가 달라지거든요. 이렇게 여러 기호들이 결합하여 의미를 생성하는 것을 '복합양식텍스트'라고 합니다. 광고, 쇼츠 등 우리 아이들의 일상이 되어버린 매체들은 대부분 복합양식의 기호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복합양식 텍스트를 활용한 매체가 사회 담론 안에서 즉 세상, 맥락 안에서 의미를 만들어냅니다. 결국 그 세상도 읽을 수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일테면 아이들에게 한창 유행이었던 "외모 첵~!"이라는 밈이 어떻게 유행이 되기 시작했는지, 어떤 포즈에서 어떤 맥락에서 쓰이는지 담론이 있다는 겁니다. 그 세상을 읽어낼 수 있어야 의미를 구성하여 같이 웃고 동참할 수 있겠지요. 이렇게 기호, 의미, 세상을 읽고 그것이 직접적으로 내 삶에서 실천되는 리터러시를 갖추는 일은 매우 중요해졌습니다.


리터러시역량을 갖춘 사람들은 좋은 읽기, 좋은 쓰기, 좋은 대화 등을 충분히 경험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일상에서 읽고 쓰기, 소통하기 등에 대한 경험은 리터러시 역량에 아주 큰 영향을 미치거든요. 그런 맥락에서 독서의 효용성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리터러시 역량을 함양은 결국 독서 교육에서 비롯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읍니다. 독서의 기회, 경험을 제공하고 하고 싶은 마음을 키워주는 , 가치롭게 여기게 하는 환경과 조건을 갖추는 것이지요.


학교나 독서교육기관이 체계적인 교육을 담당한다면 일상에서 환경을 제공해 주는 것은 가정에서 해야 할 일입니다. 그러한 맥락에서 앞서 가정문식성(Family Literacy)의 중요성을 이야기했고, 하고 싶은 마음(동기)을 키워주기 위해 대화, 함께 읽기 등 정서적인 교류를 바탕에 둔 활동을 소개했습니다.


독서


독서는 인간이 지식을 습득하고 사고를 확장하는 가장 오래된 방법 중 하나입니다. 독서는 단순히 글을 읽는 행위에 그치지 않고, 다른 사람의 생각과 경험을 간접적으로 체험하며 자신만의 세계관을 구축하는 과정입니다. 개인의 성장뿐만 아니라 사회 발전에도 기여하지요.


인류의 역사에서 문자의 발명과 독서가 가져다준 기여는 매우 높습니다. 아울러 당시 사회 상황에 따라 텍스트 및 독서가 갖는 역할과 대상이 달라졌습니다.

고대 수메르인의 쐐기문자나 이집트 상형문자는 종교와 국가의 중요한 기록을 남기는 데 사용했습니다. 권력을 가진 아주 소수의 사람들만 사용하던 것이었지요. 일반 사람들은 그저 말과 기억에 의존했습니다.

중세사회까지도 독서는 아주 소수의 일이었습니다. 책은 대부분 종교 서적이었고 책을 읽는 목적은 절대자의 말씀을 온전히 기억하고 수용하기 위한 것이었으며 글쓰기 역시 말씀을 베껴 쓰는 필사에 한정되어 있었습니다.


인류의 역사에서 일반 독자층은 16세기 이후부터 19세기를 거치면서 형성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양한 "책"이 만들어지고 글자를 읽고 쓸 줄 아는 사람들이 늘어나게 되었지요. 성직자의 낭독으로 의미를 수용하던 사람들은 책을 읽고 의미를 탐구했습니다. 비로소 독자가 글의 의미에 대해 주체적으로 사고하고 자신의 생각을 타인에게 공유하는 독서문화가 생겨난 것입니다.


현대 사회 독서의 개념은 읽기의 맥락에서 '종이책 읽기'에서 '디지털 읽기'까지 확장하고 있습니다. 이는 사회적인 활동과 매우 밀접합니다. 타인에게 의미를 전달하고, 소통하는 근간이 되지요. 최근에 사회적 독서가 강조되는 까닭도 독서를 사회문화적 관점에서 이해하고 그 필요성이 높아지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사회의 흐름에 따라 독서의 관점이나 교육적 요구는 계속 달라지고 있습니다. 현대 사회에서는 다양한 테크놀로지에 기반한 의사소통 도구로서 활용, 복합양식의 자료에 대한 중층적인 의미구성, 창의적인 표현과 실천이 강조되며 비판적 리터러시가 더욱 강조되기에 이르렀습니다. 디지털 미디어 사용이 일상이 된 세상에서 독서는 "읽기(Reading)" 차원에서 이해되며 리터러시 역량을 위한 양질의 읽고 쓰기 경험이 제공되는 도구로 활용될 필요가 있습니다.


독서를 종이책에 국한하거나 더 나아가 종이책을 미디어의 회피도구로 사용하지 않길 바랍니다. 그저 책을 읽는 행위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 삶에서 더 나은 읽고 쓰기 경험을 제공해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keyword
금요일 연재
이전 03화독서 파트너가 되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