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는 손주가 둘, 8살 5살, 첫째가 손자 둘째가 손녀,
아들 내외는 직장인, 맞벌이 부부다.
결혼 후, 아들 내외는 한 달에 한 번 정도 우리집에 왔다.
다른 집은 일주일에 한 번씩 오라고 한다는데 나는 그것을 원치 않는다.
각자 생활이 바쁜데 한 달에 한 번씩 와도 충분하다.
대부분 명절, 생일, 제사에 맞추어 온다.
며느리는 직장 생활을 하면서도 아이들을 정성껏 잘 키우고 있다.
나도 아이들을 좋아하지만
며느리는 아이들을 섬세하게 응대해 주고 있다.
나는 젊었을 때 직장 생활을 하면서
살림과 육아를 시어머니가 해 주셔서 살림을 잘 못한다.
누가 육아를 할 거냐, 요리를 할 거냐고 물으면 나는 단연코 육아다.
물론 힘들지만 그래도 요리하는 것보다 육아가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요리는 자신이 없는데 손주들이 할머니가 해 준 음식(특히 갈비)이
맛있다고 잘 먹는 모습을 보면 기분 좋고 요리에 자신감을 갖기도 한다.
손주들이 우리집에 오거나 내가 아들집에 가면
먼저 책을 가지고 와 읽어 달라고 한다.
한참 읽어 주면 나중에 목이 아프지만
집중해서 잘 듣는 모습에 힘든 줄 모르고 신나게 읽어 준다.
그래서인지 아이들에게 나는 책 읽어주는 할머니, 진관동 할머니로 불리어진다.
코로나19로 인해 우리집에 오는 날이 줄었지만,
손자가 초등학교 1학년에 입학하게 되어
3월부터 일주일에 한 번 아이들 등교, 등원을 도와 주고 있다.
올해 아들집에 간 첫 날 손녀가
삐뚤빼뚤 그린 글씨(할머니 사랑해요)와 그림으로 나를 반겨 주었다.
첫째 손자는 부끄러움을 많이 타고 얌전하여 먼저 나서서 행동하는 성격이 아니다.
아빠 성격을 닮은 듯하다.
둘째 손녀는 오빠가 하는 것을 보며 자기도 하고 싶다고
의사 표현을 할 정도로 매사에 적극적이다.
엄마 성격을 닮은 듯하다.
할머니인 나는 시간 관념이 철저하다.
약속 시간 10분 정도 미리 가 있어야 마음이 편안한 성격이다.
내가 고등학교에서 교직 생활을 하는 동안
지각하는 학생을 좋게 평가하지 않았다.
지각하는 학생은 항상 지각을 한다. 그만큼 습관이 중요한 것이다.
손자 등교 시간에 맞추어 샤워, 이닦기, 옷입기, 아침밥 먹이기 등을 해야 하는데,
손자는 다 하고 밥을 먹고 있는데,
손녀가 꼼지락거리고 씻으려 하지 않고 놀려고만 한다.
몇 분까지 놀다가 씻는다고 약속했지만, 약속한 시간이 지나도 놀려고만 한다.
하기 싫다는 손녀, 빨리 해야 한다는 할머니. 그러다 둘이 갈등.
네가 몇 분까지 하지 않으면 오빠가 지각한다, 지각하면 선생님한테 꾸지람 듣는다,
씻기 싫으면 너 혼자 집 봐야 한다는 등.
그 때 손녀가 큰 소리로 "할머니 미워"하고 소리 지른다.
순간 나도 "말 안 듣는 네가 미워"
73세 할머니와 5세 손녀의 말다툼.
손자에게서는 볼 수 없었던 손녀의 자기 표현.
겨우 고양이 세수만 하고 밥도 못 먹고 등원을 해야 했다.
집에 와서 딸에게 전화로 오늘 있었던 일을 말하니
딸이 "엄마 그 말 언어 폭력이야. 5살 아이 보고 혼자 집에 있으라고 하니
얼마나 무서웠겠어. **가 할머니 밉다고 말한 것은 그래도 **가 건강하기 때문이야.
그렇지 않으면 마음 속에 평생 남을 수 있어."
순간 가슴이 쿵! 내가 언어 폭력을 행사하고 있었다니...
나는 시간의 중요성과 약속에 대해 말해 주려 한 것인데.
문득 <어머니의 기도>가 떠올려졌다.
"아이들을 이해하고 아이들의 말을 끝까지 들어 주고
묻는 말에 일일이 친절하게 대답해 주도록 도와 주소서.
면박을 주는 일이 없도록 도와 주소서.
아이들이 우리에게 공손히 대해 주기를 바라는 것 같이
우리가 잘못을 저질렀다고 느꼈을 때
아이들에게 잘못을 말하고 용서를 빌 수 있는 용기를 주옵소서.
아이들이 저지른 잘못에 대해 비웃거나 창피를 주거나 놀리지 않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들의 마음 속에 비열함을 없애 주시고
아이들에게 잔소리를 하지 않게 하여 주옵소서."
다음 주 아들집에 갔더니 손녀는 인사도 하지 않는다.
할머니가 미안하다고 말하고 "용서해줘"하면서 안아 주었더니
그제서야 웃으면서 "할머니 사랑해요" 한다.
그 후 손녀도 잘 따라 주고 있다.
나이 들어도 젊은이에게 배워야 한다는데 정말 맞는 말이다.
아이들 마음 속에 상처로 남지 않기를 바라며
얘들아, 할머니야. 할머니가 더 잘 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