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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주워담기 Oct 17. 2022

내 인생의 세 번째 쇼트커트

누군가에게 무엇이 되어.

내 생애 세 번째 쇼트커트에 도전했다.

작년에 중학교에 입학한 큰 딸은 초등학교 때와는 정 반대로 뭐든 시도해보는 적극적인 아이로 변했다. 사춘기 호르몬에 의해 많은 부모들이 골머리를 앓지만 우리 아이의 경우는 긍정적인 변화가 더 큰 편이었다. 평소 내성적이고 소극적이던 녀석이 중학교에 입학하더니 다른 학교에서 온 친구들에게 먼저 다가가 친해지려고 하기도 하고, 학교 대회라는 대회는 다 참가해서 상장 퍼레이드의 기쁨을 맛보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주기적으로 자르던 머리카락을 1년 넘게 커트를 하지 않고 길러 소아암 환자들을 위해 기부를 하기도 했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는지 기특하다는 생각과 함께 그런 일을 시도조차 안 했던 나로서는 한편으로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그런데 과거에 펌한 모발이나, 염색모는 기부가 되지 않았는데 딸아이의 모발 기증 신청서를 작성하면서 보니 염색모와 펌한 머리도 기부가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래서 나도 딸아이의 기부 행렬에 릴레이를 해보기로 결심했다. 아이의 선한 영향력이 내 마음을 움직인 것이다.



 엄마 머리카락 길이 한 번만 재주라!

 평소 머리카락 길이가 어깨를 넘어가면 감고, 말리는 것도 쉽지 않고, 방바닥에 뒹구는 게 더 잘 보인다는 이유로 주기적으로 머리카락을 잘라왔다. 그런데 그런 이유들을 무시하고 오로지 기부를 위해 머리를 기르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딸아이가 머리카락 기부를 앞두고 한동안 저녁만 되면 30cm 자를 들고 와서 어느 정도 자랐는지 체크해 달라고 했는데 그때는 그게 참 귀찮게 느껴졌다. 머리카락이라는 게 날마다 재어봤자 확확 늘어나는 게 아니지 않은가? 그리고 딸아이는 머리카락이 빨리 자라려면 뭘 해야 하는지 검색을 해보기까지 했다. 그랬기에 어느 정도 단발 길이를 확보한 이후에 머리카락의 길이가 25cm를 넘기기까지 기다리는 일은 옆에서 보기에도 쉬워 보이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딸아이는 그 기간을 잘 견뎌 넉넉하게 30cm의 머리를 잘라 기부를 했다. 그런데 몇 달 전부터 내가 그때의 딸처럼 자를 들고서 머리카락 길이 좀 재달라고 보채게 됐다. 머리를 감을 때마다 샴푸도 배로 들어갔고, 무엇보다 머리가 길다 보니 엉켜서 빠지는 양도 더 많아진 것 같았다. 소아암 환자를 위해 기부를 하겠다더니 기부는커녕 탈모로 인해 나부터 가발을 사서 써야 하는 순간이 오는 게 아닐까 걱정이 되기도 했다. 그렇게 머리카락을 기르는 일은 대단한 인내심이 필요한 일이었다. 또, 평소 머리를 감고 나면 잘 말리지도 않고, 스타일에도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던 나였는데 머리카락 기부를 위해서 머리를 감고, 완벽히 말리고, 에센스까지 발라주며 머리카락 관리도 했다. 기부를 했으나 정작 쓸 수가 없다고 한다면 그동안의 시간이 너무 허무하게 느껴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한 번은 이 정도면 됐겠다 싶어서 자를 들고 미용실에 가서 머리카락을 25cm 정도 길이로 묶어서 잘라달라고 원장님께 말씀드리니 원장님께서 2달 뒤에 다시 오라고 했다. 머리를 묶었을 때 가장 긴 머리가 아니라 가장 짧은 머리의 길이가 25cm가 넘어야 하는데  양쪽 귀 근처의 머리카락은 그보다 훨씬 짧았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인 줄 알았어. 못 알아볼 뻔했네.

 우여곡절 끝에 귀 밑으로 겨우 25cm 넘는 머리카락을 고무줄로 묶어 잘라냈다. 목 뒤가 휑할 만큼 짧게 머리를 다듬으니 거울 속에는 정말 낯선 내가 앉아있었다. 내 생애 세 번째 쇼트커트이었다. 첫 번째는 유치원 때 머릿니 때문에 눈물을 머금고 어쩔 수 없이 했던 쇼트커트이었다. 원치 않게 남자처럼 머리를 잘라야만 했던 나는 미용실 의자에서 툭툭 떨어지는 내 머리카락과 함께 눈물을 뚝뚝 떨구던 기억이 여전히 새록새록 떠오른다. 엄마는 그런 나를 달래느라 미용실을 나서면서 평소에는 비싸서 절대 사주지 않던 마루 인형을 사주셨다. 그렇게 가지고 싶었던 인형이었지만 머리스타일의 충격은 마루인형으로도 위로가 되지 않았고, 한동안 머리 때문에 유치원 등원 시간마다 엄마에게 징징거렸던 것 같다.   

 두 번째 쇼트커트는 큰 아이를 낳고 기르면서 내 생활에 뭔가 큰 변화를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시도했다. 쇼트커트 스타일의 여자가 좋다는 남편의 부추김도 한몫을 했으나 육아로 지친 우울함을 달래기 위함이기도 했다. 그런데 머리를 자른 날, 초등학교 동창 결혼식장에 가야 했는데 남자 동창들이 나에게 이제 아줌마가 다 됐다고 해서 큰 충격을 받았다. 게다가 남편과 시어머님 외에 내 주변 모든 사람들이 헤어스타일이 바뀌고 좀 시간이 지난 후, 

 "이제와 이야기이지만 넌 쇼트커트보다는 긴 머리가 더 어울려."

라는 이야기를 해서 더 우울했던 나날을 보내기도 했다. 그 이후 십여 년간 내 머리카락 길이는 늘 어깨선의 위아래쯤이었으며, 헤어스타일 역시 비슷하게 유지해왔다. 

 그러던 내가 오늘 인생에 세 번째 쇼트커트를 시도하게 된 것이다. 남편은 내 짧아진 머리를 보며 

"그렇게 자르니 장모님이랑 더 똑같아 보인다. 장모님!"

이라며 농담을 던졌고, 두 딸들은 너무 적응이 안 된다며 몇 번이고 내 얼굴 앞에 본인들 얼굴을 들이 밀고 이리저리 살펴보고 가곤 했다. 그런가 하면 머리를 잘랐던 날, 오랜만에 중학교 친구를 만났는데 처음엔 나를 못 알아봤고, 중학교 때도 나의 머리가 이렇게 짧지는 않았는데 무슨 일이냐며 머리스타일의 변화 이유에 대해 추궁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 쇼트커트는 기다리고 기다려서 했던 것이어서 그런지, 아니면 남을 위한 목적이 있어서 그런 건지 거울 속의 내 모습이 그리 나빠보이지 않았다. 딸들은 버섯모양의 초콜릿 과자 모양이라고 놀리기도 하고, 나는 목 뒤가 썰렁해서 자꾸 머리로 손이 가긴 하지만 나름대로 쇼트커트 스타일의 내 모습이 마음에 든다. 거울을 볼 때마다 나도 모르게 내가 나를 보며 배시시 웃게 된다. 



누군가에게 무엇이 된다는 것

대학 선배 중 한 사람은 그때부터 지금까지 단발과 장발 사이를 오가며 머리카락 기부를 꾸준히 하고 있다. 그때는 그냥 그런가 보다 했는데 직접 동참해보니 이제야 비로소 어떤 마음으로 기부를 이어오고 있는지 알 것 같다. 솔직히 머리 기르면서 중간에 자르고 싶은 순간마다, 그리고  머리를 자르는 그 순간까지도 머리카락 기부는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오늘 우체국에 가서 머리카락을 기부처로 등기로 보내는데 뭔가 뿌듯함이 느껴졌다. 그러면서

'지금부터 또다시 시작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머리카락은 또 자랄 테고, 결국 잘라서 버려지기보다는 누군가에게 무엇이 될 수 있다면 그것만큼 의미 있는 일은 없을 테니까. 남편은 반대하지만 난 내 신체 일부가 다른 생명을 살릴 수만 있다면 죽기 전에 내 장기를 기증 할 생각이다. 어차피 죽고 나면 한 줌의 재가 될 텐데 이 세상에 태어나서 나 이외에 누군가에게 의미 있는 존재가 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가치 있는 삶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겨우 머리 한 번 기부하고 거창한 이야기까지 하게 된 것 같으나 세상에 태어나서 누군가에게 의미 있는 무엇인가가 되는 일은 해볼 만한 일인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그 기분은 해본 사람만이 느낄 수 있다. 

 "딸, 고마워. 네 덕에 엄마가 소중한 걸 깨달았네."

 오늘따라 목 뒤에 스치는 바람이 참 차갑다. 하지만 마음만은 훈훈하기에 몸이 움츠러들지 않는다. 이쪽저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머리가 헝클어진다. 그러나 한쪽 손으로 머리를 쓱 쓸어 올린 다음 양쪽 중지 손가락으로 흘러내린 머리를 귀 뒤로 넘겨 고정시켜주면 간단하게 머리 정리 끝. 참 간편해서 좋다. 머리는 가벼워졌는데 내 마음은 따스하면서도 묵직해진 기분이다. 한동안 거울을 볼 때마다 낯선 나를 향해 그 따스함에 더 많이 웃을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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