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하게 사춘기를 보내는 방법
사춘기 아이들은 입에 '짜증'이라는 말을 달고 산다. 요즘 한 초등학교에서 기초학력 부족인 아이들을 지도하고 있는 내가 아이들에게서 가장 많이 듣는 말이 '힘들어요' 다음으로 '짜증 나요'라는 말이다. 그런 아이들을 보면서 아이들 마음속의 복잡 미묘한 감정들을 그저 '짜증 난다'란 말로 표현해 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난 짜증이 나는 감정을 읽어주되 그 말을 할 때마다 왜 그런 감정을 느끼게 됐는지 아이에게 한 번 더 생각해보게끔 질문을 한다. 그런데 어제는 우리 딸아이가 학교에서 축구 시합에 져서 대성통곡을 하고 오더니 그 울음 끝에'짜증 난다'라는 말을 했다.
"짜증이 날 수 있지. 짜증 나는 마음은 이해해. 그런데 그렇게 이야기를 하고 나면 그 짜증을 듣는 상대방은
어떨지 생각해봤니? 짜증이라는 감정은 너의 것인데 그 감정 때문에 그 말을 듣는 상대방 마음도 좋지 않지
않을까?"
아이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더니 그러면 그 감정들을 마음에 꽁꽁 싸 두고 있는 건 더 좋지 않은 것 아니냐고 했다. 또 감정에 솔직한 게 나쁜 건 아니지 않냐고 말이다.
평소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걸 누구보다 싫어하는 나는 지금까지 내 감정보다는 다른 사람의 마음을 더 많이 의식하며 살아왔다. 그러다 보니 종종 혼자 끙끙 거리며 마음 앓이를 할 때도 많고, 상처를 입을 때도 많았다. 감정에 솔직한 사람들을 만날 때는 좀 불쾌하게 느끼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부러운 것도 사실이었다. 최소한 본인은 상처를 덜 입을 것 같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40이 넘도록 다른 사람의 감정을 생각하는 것이 배려라고 생각하며 살아온 나에게 여전히 내 감정에 솔직해지는 일은 참 낯설고 어렵다. 그런 나인지라 본인의 감정을 습자지처럼 내비치는 사춘기의 딸은 적응하기가 무척 힘들다.
"엄마, 나 오늘 학원에서 너무 슬퍼서 수업이 귀에 안 들어왔어. 집중을 하려고 해도 자꾸 축구 생각에 눈물
이 차오르고 마음이 너무 아픈 거 있지."
학원 수업을 끝마치고 나온 딸이 차에 타자마자 또 눈물이 그렁그렁해져서 말했다. 하기사 전 날 밤부터 축구시합을 생각만 해도 너무 떨린다고 밥도 먹기 힘들다고 했던 녀석이니 실망감이 오죽하겠는가. 회복탄력성이 이렇게 낮아서야 이 험난한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겠냐는 나의 말에 딸아이는
"엄마, 나는 슬플 땐 충분히 슬퍼해야 하고, 기쁠 땐 충분히 기뻐해야 그 감정에서 벗어날 수 있어."
라고 말했다. 그래서 그 충분히가 얼마만큼이냐고 물으니
"그건 나도 모르지."
라는 아이. 아이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었다. 그러니 아이에게 어떤 것을 가르치거나 이렇게 해보라는 말보다는 아이의 말처럼 충분히 슬퍼할 시간을 주는 게 맞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본인이 겪어내는 경험을 통해 아이는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가고, 그 슬픔을 극복해 나가는 방법도 배워나갈 테니까. 내가 아이의 감정을 대신 느껴주거나 대신 극복해줄 수 없는 것이니 말이다.
집에 돌아와서 딸아이의 우울한 마음을 위로하는 의미로 낮에 사다 놓은 설탕 듬뿍 뿌린 꽈배기를 간식으로 내어줬다. 그랬더니 딸아이는 꽈배기를 맛있게 먹고는 속이 느끼하다며 저녁에 끓여 놓은 김치찌개를 떠서 먹기까지 했다. 그런 아이에게 무언가 먹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슬프지 않은 건 다행이라고 했다. 그랬더니 위로의 김치찌개라며 너무 맛있다고 손가락을 치켜세운다.
생각해보니 꽁하고 방에 들어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혼자 속앓이를 해서 감정들을 차곡차곡 쌓다가 그 감정 속에 스스로 묻혀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것보다 본인 감정에 솔직하며 무엇이든 부모인 나에게 이야기해주는 딸이라 고맙다. 어쩌면 이런 게 건강한 사춘기를 나는 방법일지도 모른다. 아이는 오늘 흘린 눈물만큼 또 자라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아이를 지켜보는 나도 부모로서 아이가 자라는 만큼 자라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