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엄마는 시행착오 중
오전에 우리 지역 고등학교에 대한 설명회 동영상을 찾아서 봤다. 요즘 학원들마다 한창 고등학교 지원 관련해 설명회를 진행했는데 뒤늦게 알게 된 탓에 미처 신청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얼마 전 큰 아이 친구 엄마가 학원에서 하는 고등학교 설명회를 다녀왔다며 자료를 보여줬는데 그것을 보니 내가 요즘 너무 아이들에게 무신경했나 싶어 조금 마음이 급해졌다. 게다가 어제는 둘째 아이의 친구 엄마가 12월부터 시작하는 과학 강의가 있는데 같이 테스트를 받아보자며 전화가 왔다. 다음 달에는 큰 아이 학원에서 새롭게 개원하는 국어 학원 설명회가 있는데 같이 가자고도 했다. 둘째도 이제 곧 중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으니 엄마들이 조금씩 움직이고 있는 듯하다.
이렇다 보니 내가 알지 못하는 사이 우리 아이들이 뒤처지면 어쩌나 조바심이 났다. 그래서 살펴본 지역의 고등학교 자료들이었다. 창체동아리 지원비, 문이과 비율, 수업시수와 수행평가 비율, 학교별 특성, 선택과목의 분포, 수시, 정시 입결 등 아이 고등학교 지원에 있어서 알아봐야 할 것들이 참 많았다. 그냥 무턱대고 집에서 가까운 학교를 선택한다면 참 안일한 선택이겠구나 싶었고, 각 학교별 3등급조차 서울 4년제에 들어가기도 어려운 현실이라는 말에 답답함이 몰려왔다. 이렇게 학교들을 살피고 나니 여전히 뚜렷하지 않은 큰 아이의 진로와 준비되지 않은 상태로 고등 진입 시 캄캄한 아이의 앞날에 마음이 무거워졌다.
7교시라 나보다 늦게 집에 온 아이는 며칠째 이어지는 수행평가로 현관문을 열자마자 힘들다는 말을 반복했다. 그제도, 어제도 수행 준비하느라 밤마다 몇 시에 잠이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아이는 아침을 먹으면서도 오늘 볼 수행 때문에 인강을 돌려보며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그렇게 피곤해 하는 아이에게 나는 저녁을 먹으며 오늘 고등학교 설명회를 본 이야기를 꺼냈다. 그러면서
"너는 문과 성향인 것 같아? 이과 성향인 것 같아? 고등학교에 가면 선택과목이 있는데 이과는 과학 문과는
사회, 역사, 경제 등의 분야를 선택하더라."
라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리곤 과학을 택할 거라면 올겨울부터는 과학 공부를 좀 해야 하지 않겠냐고, 인강은 안 맞는 것 같다고 하니 학원에 가는 게 좋지 않겠느냐며 아이에게 속사포를 날리듯 내 이야기만 계속했다.
아이를 학원에 데려다주면서도 2학년 들어와서 독서기록은 제출한 게 있느냐, 책은 왜 안 읽냐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그랬더니 급기야 아이의 불만이 터져 버렸다.
"엄마, 나 아직 2학년이야. 그런 건 3학년 때 알아봐도 돼. "
"그때 가서 뭔가 준비하기엔 너무 늦어."
"그럼 어쩔 수 없는 거지."
아이는 차 보조석에서 발까지 구르며 화를 냈다.
"그냥 후회하고 마는 게 아니라 인생이 바뀔 수도 있으니까 그렇지."
나도 아이의 화에 뒤질세라 목소리를 높였다.
"엄마, 난 지금 수행만으로도 이렇게 힘든데 그런 것까지 어떻게 다 챙겨. 그리고 엄마가 이렇게 얘기해도
난 안 해. 못해."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녀석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그제야 아차 싶었다.
평소 아이에게 공부가 다는 아니라고, 대학이 인생에 전부는 아니라고 얘기해놓고 난 정말 모순 덩어리의 엄마라는 생각에 내가 쏟아 냈던 말들을 도로 다 주워서 입으로 다시 집어넣고 싶은 심정이었다. 눈물을 꾸역꾸역 참고 차에서 내리는 딸의 뒷모습을 보며 많이 미안해졌다.
'내 조바심으로 아이에게 상처를 줬구나. 아이는 나와 같지 않은데. 아이는 아이이고, 나는 나인데....'
나는 고등학교 선택을 하고 참 많이 후회했다. 내가 고등학교를 입학하던 당시 외고와 일반고를 두고 고민을 했는데 외고를 준비하는 친구들은 1년 이상 선행을 했으나 난 한 학기 정도 밖에 예습이 안돼있던 상태였다.
그랬기에 외고에 가서 잘 할 자신이 없었고, 시험을 봐서 떨어질 걱정에 외고는 등록금이 비싸다는 이유를 핑계 삼아 일반고로 진학을 했다. 그런데 우리 학교는 외고와 같은 재단이었기에 교문을 같이 사용했다. 중학교 때까지 나랑 같은 학원 같은 반에서 공부를 하던 친구들은 다들 교문 앞에서 헤어져 다른 건물로 들어갔다.
뿐만 아니라 친구들의 학교생활은 나와는 전혀 달랐다. 외고만의 문화와 그들만의 리그가 늘 멀리서 보기에 부러웠다. 당시 한편으로는 일하느라 미리 정보력을 갖추지 못한 엄마를 원망하는 마음도 있었다. 그랬기에 나는 우리 아이에게만큼은 그런 면에서는 부족함이 없는 엄마가 되어주겠다는 생각이 강했다. 그러나 간과한 게 있었다. 아이는 내가 아니라는 것, 내가 바라던 것이 아이가 바라는 것과 같지 않다는 것, 나는 나이고, 아이는 아이라는 것. 그런데 나는 종종 이 사실을 까맣게 잊어버리곤 한다. 아이의 인생은 아이의 인생이고, 내 인생은 내 인생인데 자꾸 내가 아이의 인생에 끼어들어서 마치 아이 역시 나처럼 생각할 거라는 착각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여지없이 그런 날은 아이와 투닥거리고, 그제야 나의 실수를 뒤늦게 깨닫고 후회를 한다. 오늘도 아이를 학원에 내려주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많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마음이 정말 무거웠다.
저녁을 먹고, 상을 치우고 잠시 책상에 앉아서 생각을 정리했다. 그리고 편지지 꺼내 딸에게 반성문 격의 편지를 썼다.
어릴 때는 잘못을 해놓고도 자존심 때문에 '잘못했습니다'란 말을 절대 하지 않아서 나에게 더 많이 혼났던 딸이었다. 그랬던 딸이 요즘에는 다음 날 아침에서야 전날 가져갔던 물통을 꺼내 놓을 때도, 깜빡 잊고 책을 가져가지 않아서 나에게 전화를 해서 책을 가져다 달라고 말할 때도 '죄송합니다.' 란 말을 참 잘 한다. 그런 딸아이에게 나도 오늘은 먼저 사과를 하려고 한다. 힘들게 해서 미안하다고, 뒤에서 지켜봐 주고 응원해 주겠다고 말해놓고 정작 옆에서 채찍질했던 것은 엄마가 잘못했다고, 그러니 다시는 그러지 않도록 노력하겠다고.
너를 사랑하는 내 마음이 너를 힘들게 하는 일이 없도록.
오늘도 난 여전히 엄마로서 시행착오 중이다. 육아 경력 15년이 지나고 있으나 여전히 육아는 어렵다. 아니, 이쯤 되고 나니 이제는 내가 아이를 기르기 보다 아이가 나를 기르는 중이라고 해도 될 법하다. 이렇게 오늘도 난 아이를 보며 배워나간다. 딸아! 오늘도 이 서툰 엄마를 잘 부탁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