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서울에서 영국 뉴캐슬어폰타인까지
2020년 10월.
한국의 코로나 확산세가 잠시 나아지는가 싶더니 여름휴가 시즌을 기점으로 감염자 수가 미친 듯이 치솟았다.
100명 이하를 유지하려고 온 국민이 힘을 합쳐 노력했는데 노력은 물거품이 된 듯 보였다.
한국은 그나마 나은 편이었다.
당시 영국은 코로나 대응 최악의 국가로 낙인찍혀 있었고, 일일 확진자수가 몇 만 명에 달했다.
영국을 포함한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은 쇼핑몰 등 실내에서의 페이스 커버링 및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하고, 실외는 철저히 개인의 선택에 맡기고 있었다.
집 밖을 나서는 순간부터 마스크 착용을 권고하는 한국과 달리 다소 느슨해 보이는 방역 수칙이 이 상황의 원인은 아닐까 두려웠다.
하지만 휴직까지 한 마당에 더는 미루고 싶지 않았다.
어차피 맞닥트려야 하는 현실이면 조금이라도 빨리 가서 적응하는게 낫겠다 싶어 10월 7일 비행기 티켓을 끊었다.
주변 사람들 중 COVID 시대에 처음으로 출국하는 용자로, 많은 조언을 받았다.
“그냥 물도 마시지 말고, 기내식도 먹지 말고 자. 그래야 화장실 안 가지.”
“뭐 만지지도 말고, 움직이지도 마.”
이 시대의 비행은 퉁퉁 부을 다리, 뻐근한 허리를 옵션으로 가져가야 하는 비행이었던 것이다.
나름 코로나 셀프 방역 키트도 만들었다. 4시간마다 바꿔 쓸 수 있는 넉넉한 양의 마스크를 가방 곳곳에 넣어 두었다. 좌석이나 물건을 닦을 소독용 티슈와 손 세정제도 여러 개 챙겨서 어떤 가방을 들고 있든 꺼내 쓸 수 있도록 했다. 공항에 도착해서부터 화장실 갈 때를 대비한 라텍스 장갑도 넉넉하게 챙겼다.
뉴캐슬어폰타인까지 바로 가는 직항이 없어서 런던에서 뉴캐슬로 가는 국내선으로 갈아타야 했다. 외국 국내선에는 마스크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거나, 시끄럽게 떠드는 사람이 많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코로나 특수 모자까지 구매했다. 등산용 벙거지 모자에 앞에 투명한 가림막이 달린 모자였는데, 그 모자를 쓰고 있노라면 공기가 잘 안 통해서 투명한 비닐에 습기가 가득 차곤 했지만 그렇게라도 코로나로부터 안심하고 싶었다.
10월 7일. 인천 공항은 텅텅 비어있었다. 21살 첫 해외여행을 떠나러 인천 공항을 방문했던 이래로 유학이며, 여행이며, 출장으로 공항을 수십 번 넘게 방문해왔지만 이렇게 공허하고 한산한 공항은 처음이었다. 도우미 로봇만이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며 소리를 내고 있을 뿐이었다.
걱정과 달리, 비행기에 탄 사람들은 모두 마스크를 잘 착용하고 있었고 잡담도 삼가는 분위기라 그 어느 때보다 조용했다. 탑승객이 많지 않아 다른 승객들과 붙어 앉을 일도 없었다.
비행기에서 최대한 기내식을 안 먹고 화장실을 가지 않으려고 했지만, 배고픔을 참지 못하고 간식까지 야무지게 해치웠다. 그래도 물, 커피 및 술 등의 음료는 최대한 자제하며 화장실 가는 것을 최소화했다.
호텔에서 하루 묵고 탄 국내선도 별거 없었다. 턱 마스크를 한 사람도 없었고, 수다를 떠는 사람들도 없었다. 타자마자 승무원들이 준 소독용 티슈로 자리 주변을 닦고 기내식으로 주는 샌드위치도 먹고 나니 뉴캐슬에 무사히 도착해 있었다.
공항에 가기 전에는 공항에서 숨 쉬는 것조차 무서웠고, 비행기를 타기 전에는 비행기에서 까딱 잘못하면 코로나바이러스에 노출될 것만 같았다.
런던 공항에 내려서 호텔로 가는 길에도, 국내선 비행기에 앉아 있을 때에도 보이지 않는 불안함과 싸우는 일은 양어깨를 잔뜩 움츠러들게 했다.
하지만 막상 해보니 그렇게 까지 공포스러운 일들이 아니었다.
코로나 시대의 비행. 내 안전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안전을 위해서도 예방 수칙을 지키는 것은 중요하고 무개념한 사람들을 조심할 필요가 있지만 해야 할 일을 못할 정도로 긴장하고 스트레스 받을 필요는 없다.
영국에서의 생활도 마찬가지다. 여기 오기 전까지는 한국보다 느슨한 방역 체계와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 확진자수를 보며 살아남을 수 있을지 걱정했었다.
다들 나름의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다.
누군가의 생각으로는 코로나가 무서워 밖을 나가지도 못할 것 같은 이 곳에서도 사람들은 마트도 가고 산책도 하며 하루를 보낸다.
그렇게 나도 두려움을 내려놓고 여기 일상을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