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어트는 이제 그만할게요
고향 찾아, 영국으로
한때 그림을 잘 그리고 싶어서 펜 드로잉, 색연필 드로잉, 마카 드로잉 등 각종 수업을 기웃거렸다. 잘 보고 그린 것 같은데 결국 이상해지는 결과물을 보며 “저는 아무래도 똥 손인가 봐요” 하고 다들 시무룩해하자 선생님은 말씀하셨다.
“수업을 하다 보면 자꾸 똥 손이라고 손을 구박하시는데 우리 손은 아무 잘못이 없어요. 그냥 잘 못 봐서 그러는 거예요. 눈을 훈련시켜야 해요.”
타고난 똥 손이라고 착각하지 말고 열심히 보고 연습해서 잘 그려 보자고 격려하신 걸 텐데, 수강생들은 모두 같은 생각을 했을 것 같다.
‘그러니까 음. 나는 똥 눈인 거네’
제대로 보는 줄 알았지만 눈은 가끔 잘 못 본다. 사람들마다 머릿속에 필터가 있어서 들어온 정보를 왜곡해서 해석하고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내 눈으로 바라본 나는 거대했다. 내가 입고 싶어 하는 옷들을 보며 엄마는 그런 옷은 땡땡(내 친구들)처럼 작고 귀여운 애들이 입어야 예쁘다고 말했다. 너처럼 덩치가 크고 뚱뚱한 애들은 그렇게 입으면 더 커 보이니까 입지 말라는 조언을 쏟아냈다. 지겹도록 듣다 보니 내 눈에도 똑같은 렌즈가 장착되었다. 덩치가 크고, 가슴도 크고, 다리도 굵은 나. 내가 바라보는 내 모습이었다.
거대한 몸집을 부끄러워하며 살았다. 두꺼운 다리를 보이기 싫어서 여름에도 긴 바지를 고수했다. 친구들과 옷을 사러 가면 늘 넉넉한 크기의 후드티만 골랐다. 가게에서 한번 입어보라고 하면 만지던 옷을 슬그머니 내려놓았다. 늘 체력장에서 1급을 받을 정도로 운동 신경이 좋고 건강했지만 내 몸은 늘 수치스럽고 개선해야 하는 대상이었다.
영국에 와서 옷을 사러 나갔다. 샀는데 안 맞을 까 봐 무서워서 L나 XL 사이즈를 골랐는데, 입어보니 나보다 한참 컸다. 작은 사이즈부터 큰 사이즈까지 다양했고, 나에게 맞는 숫자를 찾아서 옷을 고르면 될 뿐이었다. 세상에는 다양한 형태의 몸이 존재하고, 나는 내 생각만큼 거대한 몸을 가진 사람이 아니었다. 커다란 몸을 들킬 까 봐, 혹시 내가 너무 무거워서 남들을 곤란하게 할 까 봐 바들바들 떨었던 일들이 얼마나 바보 같았는지 차츰 깨달았다. 객관적이라고 믿었던 내 눈에 혹시 잘못된 필터가 써져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운 오리 새끼가 백조였던 것처럼, 알고 보니 내가 날씬했더라는 결말이 아니다. 영국에도 다이어트 열풍이 불고 예쁘다는 연예인들은 전부 이상적인 몸매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서로 외모나 몸을 평가하거나, 함부로 남에게 살을 빼라 마라 말하지 않는다. 더 좋은 남자를 만나려면 살을 빼고 예뻐져야 한다는 말을 하는 사람들이 없었다. 다양한 몸을 인정하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당당하게 입고 싶은 옷을 입는 사람들은 그들만의 멋이 있었다.
여전히 한국에 가면 나는 날씬하지 않은 축에 속하고, 살 빼면 예쁠 것 같다는 뼈가 되고 살이 되는 조언과 다이어트를 자극하는 광고들을 계속 마주할 것이다. 하지만 반드시 충족해야 하는 몸의 기준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 몸은 수십만 수십억 가지 몸 중 하나일 뿐, 맞춰야 하는 기준이 있거나 타인이 함부로 평가해도 되는 상품이 아니었다. 옷을 살 때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고, 옷을 입을 때 주저하지 않기로 했다. 옷을 살 때 필요한 정보는 수치에 불과하고, 그 수치가 나에게 수치심을 느끼게 한다면 그건 내 눈에 잘못 삽입된 필터 때문이다.
늘 습관처럼 입에 달고 살던 다이어트도 버리기로 했다. 음식을 먹으면서 이 음식이 몇 칼로리인지, 이걸 먹고 나면 며칠 동안 샐러드를 먹으며 체중 유지에 힘써야 하는지 계산하지 않겠다.
건강하려고 운동하는 사람에게도, 다이어트를 권하는 사회에서 살았다. 여자의 운동은 늘 다이어트와 직결되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뿌리 박혀 있었다. 건강한 습관을 만들고 싶어서 헬스장 회원권을 끊고 개인 PT를 등록했는데도 사실 살 빼고 싶을 거라면서, 날씬한 몸을 열망하고 있지 않냐는 말을 듣곤 했다.
아무리 정사각형 소파를 보고 그려도 왠지 모르게 납작하고 찌부러진 소파가 완성되었던 그날. 제대로 보고 그렸다고 생각했지만, 소파는 내 생각보다 더 정사각형이었고 더 통통한 팔걸이를 가지고 있었다. 그림을 그리려고 사물을 똑바로 보는 눈을 길러야 하듯, 잘 살아내려고 나를 똑바로 보는 눈을 훈련시켜야 한다.
더 이상 남들의 렌즈를 내 눈에 삽입해서 내 몸을 혐오하며 시간을 허비하지 않겠다. 건강한 눈으로 만족할 만큼 먹고, 건강해지고 즐길 만큼 운동하며 살아보겠다. 조금만 게을리하면 금세 거울 앞에서 나를 평가질 하고 미워하는 눈과 마음을 다독여가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