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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두유 Oct 30. 2022

쌍문동 토박이, 고향을 찾습니다

진짜 이름을 찾아서

서울 지도를 살펴보면 가로로 흐르는 한강을 중심으로 두세 개의 구들이 모여 있다. 그중 유독 북쪽으로 솟아 오른 부분이 있다. 행정구역상으로 서울에 속하지만 중심까지 한참 걸리는 외진 곳이다. 서울 어느 곳을 가든 한 시간은 족히 필요한 곳. 하지만 1로 시작하는 파란 버스들의 차고지가 근처라서 버스를 타면 앉아 갈 수 있는 곳. 교통이 편리하고 살기에 안전한 곳. 내가 태어나고 자란 도봉구 쌍문동이다.


그때 당시 이곳은 서울 드림을 꿈꾸고 지방에서 올라온 신혼부부가 처음으로 집을 마련하는 곳이었다. 쌍문동을 첫 발판 삼아 서울에서 아이들을 키우고, 아이들이 중학교나 고등학교, 대학교에 진학하는 시기에 맞춰 진짜 서울 같은 동네로 이사 가며 재산을 불려 나가는 사람들이 많았다. 하나둘씩 떠나는 와중에도 떠나지 못했다.


쌍문동이 내가 살 수 있는 곳의 전부였던 때에는 외국에 나가 살 수 있다고 꿈꾸지도 못했다. 언젠가 가고 싶은 나라들은 많았지만 그 소망이 어떤 미래에 이루어질 수 있다고 감히 연결 짓지도 못했다. 그럼에도 계속 어딘가로 나가고 싶었다. 이곳을 떠나고 싶었다. 지리 공부에 도움이 될까 싶어서 화장실 벽에 붙여 놓은 세계지도를 보며, 언젠가 가보고 싶은 나라와 수도 이름을 소리 내 읽어보곤 했다. 낡아서 끽끽 소리를 내는 지구본을 의미 없이 돌리다가 손가락을 찍어서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점쳐보곤 했다. 돌아가는 지구본을 멈추게 한 내 검지 손가락에 마치 신이 준 운명이 깃든 것 마냥, 손가락으로 찍은 그곳에 갈 수 있을까 몰래 두근대며 꿈꾸곤 했다. 꿈이라고 생각했다. 매일 밤 잠들면 랜덤으로 꾸는 꿈. 현실에서 일어날 리 없이 하룻밤이면 사라지는 꿈.


30년 넘게 쌍문동 토박이로 살았지만 이곳이 내 고향, 안식처가 아닌 것 같았다.

나로 살고 싶은 절박함과 나로 살아선 안된다는 주변의 짓누름 사이에서 숨 쉬지 못했다. 생각을 서로 나누고 싶었다. 의견을 말하거나 동의하지 않는다고 이의를 제기하면 선생님, 부모님, 또는 주변 누구든 어른에게 버릇없이 말대답을 한다고 했다. 조심스럽게 말해봐도, 조리 있게 피력해봐도 모두 입을 모아 나에게 입을 다물라고 했다.


내 공간을 지키고 싶었다. 나한테 시간 쓰고 마음 쓰고 돈 써도 모자랄 자원들을 남을 위해 쓰는 기분이 들었다. 그저 덜 모나 보이려고, 끊임없이 평가받는 곳에서 너무 티 나게 뒤쳐지지만은 않으려고 안간힘 써야 할 것만 같았다. 누군가 내 몸을 멋대로 평가하고 “나를 위한 조언”을 할 때 그만하라고 말하고 싶었다. 불쾌한 농담에 웃어주지 않아도 센스 없다고 낙인찍히지 않고 싶었다.


남들은 다 잘 살고 있다는데, 왜 나만 적응하지 못하는지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 다들 집 떠나면 개고생 이라면서 고향이 제일 포근하고 좋다고 했다. 그렇다면 도출할 수 있는 결론은 하나. 이곳은 내 고향이 아닐지도 모른다. 처음 만났는데도 오래전부터 알았던 것처럼 친근한 사람이 있듯, 외국 어딘가에서 나도 고향을 찾은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다.


태어나고 사는 곳이 나를 설명하기도 한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고 나서, 쌍문동 토박이에게 외국은 한껏 구겨지고 못생긴 마음을 들추는 거울이었다. 이미 고향이 외국인 사람들은 고향에 가면 아늑할 테니 이렇게 방황하지 않을 거라며 부러워하다가 못나게 질투하기도 했다. 어쩌면 영국에 다녀오면 더 이상 쌍문동 토박이가 아닌 더 넓은 사람이 될 수 있다고 상상했다. 기꺼이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는 사람. 쉽사리 흔들리지 않는 사람. 그 어딘가에 있을 무표정 하지만 자유로운 런더너를 상상하며, 나는 눈감고도 갈 수 있는 쌍문동 거리의 흔적을 지워보고 싶었다.


누군가에게는 돈 쓰고 시간 쓰고 회사에서 승진 기회를 놓치는, 등가성이 성립되지 않는 어리석은 선택일 수 있지만, 나에게는 쌍문동에서 태어난 순간부터, 화장실에서 세계지도를 더듬어 보던 순간부터 계속 쌓여온 해결해야 할 숙제 같은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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