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야, 휴지 심 절대 버리지 마!”
나는 남편에게 이렇게 신신당부하곤 했다. 아이가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다닐 때는 휴지 심이 단순한 쓰레기가 아니라 돈 주고 사기 어려운 만들기 재료였으니까. 한 개, 두 개씩 모으다 보니 어느 순간엔 서른 개를 훌쩍 넘겼다. 휴지 심뿐만이 아니었다. 선물 받은 비누부터 각종 세탁용품, 다 쓴 용기까지 욕실 수납장은 버리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쓰지도 못하는 것들로 가득했다.
사실 휴지 심 정도는 양반이었다. 아이가 이유식을 먹을 땐 배달 이유식 유리병을 버리지 못했다. 이유식 병은 작고 예뻐서 차마 버릴 수가 없었다. 그 언젠가 잼을 만들어서 담아 쓰지 않을까 싶었다. 그렇게 하나둘 모으다 보니, 유리병이 무려 쉰 개를 넘었다. 남편에게 하소연했다.
“자기야, 어떡하지? 이유식 병이 너무 많아서 이사 갈 때 다 챙겨갈 수도 없겠어.”
남편은 이사 가는 마당에 그깟 이유식 병이 무슨 대수냐며 그냥 버리라고 했다. 나는 1년 넘게 차곡차곡 모아둔 내 정성을 생각해서도 그냥 버릴 수 없었다. 결국 그 병들을 동네 맘 카페에 드림으로 내놓으면서도 마음이 아팠다. 혹시 나중에 쓸지도 모를 거라는 미련 때문이었다.
우리 집은 항상 잡동사니들로 꽉 차 있었다. 자잘한 물건들을 버리지 못하고 쌓아놓다 보니 늘 답답했다. 어느 순간부터 마음마저 무거워졌다. 재활용 쓰레기도 나중에 쓸모가 있을 것 같아서 쟁여둔 건데 왜 마음이 편치 않은 건지 궁금해졌다.
그러던 중 미니멀 라이프의 세계로 안내해 준 친구를 만나면서 내 삶은 완전히 바뀌었다. 미니멀 라이프는 무조건 다 버리는 게 아니라, 내가 좋아하고 필요한 걸 남기는 삶이었다. 나는 그동안 내가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필요하지도 않은 것을 차마 버리지 못하고, 이고 지고 살았다. 비우지 못한 물건들 때문에, 우리집도, 내 마음도 점점 무거워졌단 걸 깨달았다.
처음부터 과감히 버리는 건 힘들어서 매일 딱 하나씩만 비우기로 했다. 처음엔 쉽지 않았다. 하나를 버리면 그 자리에 새 물건을 또 채우고 싶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매일 하나씩 꾸준히 비우다 보니 조금씩 익숙해졌고, 마음이 점점 가벼워지는 걸 경험했다.
하버드 의과대학(Harvard Medical School) 연구에 따르면 물건을 정리하거나 불필요한 것을 버리는 행위는 뇌의 도파민 분비를 자극하고, 성취감과 통제감을 회복시켜 준다고 한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환경 청결-심리 정화 효과(environmental cleansing effect)’라고 부르는데, 공간이 정리될수록 심리적 스트레스도 함께 줄어든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이거 혹시 나중에 필요하면 어쩌지?’ 망설이다 끝내 버리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머뭇거리는 순간이면 내게 묻는다. ‘지금 정말 필요한 물건이야? 혹시 불안해서 갖고 싶은 거야?' 그 질문 하나에 마음이 더 또렷해진다. 더 이상 지체하지 않고 과감히 비운다. 무언가를 살 때 느끼는 기분과는 전혀 다른 기쁨이었다. 물건 하나를 비울 때마다 내 마음속 오랜 짐도 함께 내려놓았다.
오늘도 나는 집 안을 천천히 둘러본다. 누렇게 빛이 바랜 컵 하나를 집어 든다.
“그동안 잘 썼어. 고마워.”
컵 하나를 버렸을 뿐인데, 싱크대 한 칸이 더 넓어진 느낌이랄까. 채울수록 행복해지는 게 아니라, 비울수록 행복해지는 게 아닐까 싶었다. 그렇게 하루 한 개씩 비우면서 나는 매일 가벼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