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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더라도 하는 쪽을 택했다

by 방송과 글 사이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어? 지금 가면 분명 늦는데...’

‘지금 가봤자 민폐만 끼칠 것 같으니까, 그냥 오늘은 빠질까?’

이래저래 집안일을 먼저 하다 보니 요가 수업 시작 시각이 임박했다. 서둘러 가더라도 지각할 것 같아 머뭇거렸다. 예전의 나는 조금이라도 늦으면 아예 가지 않는 쪽을 선택했다. 지각해서 어색하게 수업에 들어가는 것도 싫었다. 무엇보다 다른 사람들의 불편한 시선이 너무 신경 쓰였다.


시험을 앞두거나 과제를 준비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조금이라도 부족하면 아예 포기해 버리는 게 나았다. 완벽하지 못하면 아무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작은 실수 하나에도 자괴감이 들었다.




‘늦더라도 조금이라도 가서 하는 게 낫지 않을까?’


어느 날, 내 마음속에 작은 용기가 올라왔다. 그 덕분에 지각해도 요가 수업에 갔다. 물론 수업에 늦게 들어가서 다른 사람들에게 방해된 것 같아 미안했다. 나를 보는 시선이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길엔 왠지 마음이 가벼웠다. 남의 시선보다는 내가 조금이라도 움직이고 수업에 참여했다는 사실 자체가 뿌듯했다.

그날 이후 나는 지각하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요가 수업에 가는 쪽을 택했다. 매일 강박적으로 써왔던 일기와 가계부 쓰기도 가끔은 한 줄만 써도, 때론 쓰지 않아도 괜찮았다. 그렇게 작은 변화를 반복하면서 신기하게도 삶이 한결 편안해졌다.


실제로 ‘제이가닉 효과(Zeigarnik Effect)’라는 심리 현상이 있다. 1930년대 심리학자 블루마 제이가닉은 사람은 완료한 일보다 '끝내지 못한 일'을 더 오래 기억하고 신경 쓴다는 걸 실험으로 밝혀냈다. 그래서 ‘아예 안 하기’보다 ‘조금이라도 해두기’가 뇌에는 훨씬 편안한 상태를 만든다. 중단된 과제가 뇌에 남아 불편함을 유발하기 때문인데, 반대로 작은 실천이라도 시작하면 심리적으로 안정감을 준다는 것이다.




그동안 내가 완벽히 하지 못할 바에야 차라리 포기했던 이유는 바로 내 안에 자리 잡은 두려움과 불안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달라졌다. 늦더라도, 하지 않는 쪽보다 조금이라도 하는 쪽이 훨씬 낫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여전히 시간이 지났다고, 잘하지 못할 것 같아서, 현관문 앞에서 갈까 말까 망설이는 내게 말한다.


“조금 늦었지만 괜찮아. 완벽하지 않아도 충분히 의미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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