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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이 태도가 되지 않도록

by 방송과 글 사이

“꾸마야, 숙제 먼저 하고 놀아!”

“싫은데~ 싫은데~”


내 말에 아이는 꿈쩍도 하지 않고 약을 올렸다. 결국 나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너 친구한테도 그렇게 말해? 친구한테 하는 거 엄마한테 반만이라도 좀 해!”


아이는 움찔했고, 내 잔소리를 피해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내가 던진 그 말이 자꾸 머릿속을 맴돌았다.


‘나는 아이한테 남들에게 하는 거 반만이라도 잘했던가?’

아니었다. 나는 일이 뜻대로 되지 않으면 아이에게 쉽게 짜증 내고, 화를 냈다. 남들에게는 억지로라도 웃었지만, 아이에게는 민낯 그대로의 모습을 드러냈다. 만만하다는 이유로 아이는 화풀이 대상이 되기 일쑤였다.



하버드대학교 심리학 교수 대니얼 길버트(Daniel Gilbert)는 자신의 저서 『행복에 걸려 비틀거리다(Stumbling on Happiness)』에서 사람들이 자신의 부정적 감정을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더 쉽게 쏟아낸다고 설명했다. 사회적 관계에선 체면과 사회적 압박으로 감정을 억누르지만, 오히려 사랑하고 친밀한 사람일수록 감정을 그대로 표출하기 쉽다는 것이다.


돌이켜보니 나 역시 남들에게는 짜증을 내지 않았다. 행여 다른 사람들에게 부정적 감정을 들킬까 꼭꼭 숨겼다. 그런데 가장 사랑하는 내 아이에겐 내 감춰진 마음들을 고스란히 쏟아냈다.




‘친구한테 하는 거 반만이라도 친절하게 대하자!’


아이에게 던졌던 그 말이 오히려 나를 돌아보게 했다. 내 감정과 기분이 태도가 되지 않도록 노력해 보자고 다짐했다. 아이에게 친구에게 하는 것처럼 존중과 배려를 담아 말하려고 애썼다.


“엄마 딸로 태어나줘서 고마워.”

“엄마가 세상에서 가장 잘한 일은 너를 낳은 거란다.”


심리학자 마틴 셀리그만(Martin Seligman)의 긍정심리학 연구에 따르면, 상대방에게 듣고 싶었던 말이나 표현을 내가 먼저 해주면 관계의 만족도와 긍정적 정서가 크게 증가한다고 한다. 내 말과 태도를 다정하게 바꾸자, 아이는 서서히 달라졌다. 전보다 내게 편안하게 다가왔고, 내 눈치를 보는 대신 더 자주 웃었다. 얼마 전 아이가 말했다.


“엄마랑 얘기하는 게 제일 재밌어. 엄마는 세상에서 제일 웃긴 사람이야.”


해맑게 웃는 아이를 보며 다시금 깨달았다. 가장 가까운 사람일수록 더 소중히 대해야 한다는 걸. 내 기분이 내 태도를 지배하게 해서는 안 된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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