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는, 말수가 적고 수줍게 웃는 모습이 예뻤다.
친구들 여럿이서 만날 때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보다는 들어주는 쪽이었고, 수동적인 태도를 취할 때가 많았다.
친구에게 만남을 먼저 제안하는 건 늘 나였다.
"○○아, 오늘 뭐 해?"
"그냥 있어."
"별일 없으면 우리 만나자!"
"그래."
"○○아, 점심 뭐 먹을까?"
"난 아무거나 괜찮아."
"닭갈비 어때?"
"그래."
우리의 대화는 늘 이런 식이었다.
친구는 술을 마시면 180도 달라졌다.
쉴 새 없이 웃고, 말도 많아졌다.
낯설지만 너무 귀여운 그 매력에, 친구들도 나도 자연스럽게 빠져들었다.
그렇게 우리는 30년에 가까운 시간을 함께했다.
친구는 비교적 이른 나이에 결혼했다.
내가 사는 곳과 가까운 곳에 신혼집을 꾸리고, 아이도 낳아 길렀다.
자연스레 자주 만나게 되었고, 친구는 점점 달라졌다.
말수가 늘었고, 마음속 이야기를 나눌 때도 생겼다.
친구는 결혼과 동시에 육아에 전념했고, 남편의 외벌이로 삶을 꾸려갔다.
여전히 만남을 먼저 제안하고, 어디로 갈지 정하는 쪽은 나였다.
친구와 함께하는 시간이 소중했고, 그 시간에 쓰는 돈이 아깝다고 느껴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밥과 커피를 사는 일도 즐겁게 내 몫으로 여겼고, 미혼인 나에게 그건 너무도 당연한 일이라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는 2주 전에 연락을 주고받으며 점심 약속을 잡았다.
약속 전날, 약속시간을 정하려는데 친구가 이렇게 말했다.
"○○아, 우리 점심 먹고 만나자."
나는 "왜? 무슨 일 있어?"라고 물었다.
그러자 친구는 "커피 마시면서 오랫동안 이야기하고 싶어서."라고 답했다.
우리는 항상 만나면 밥을 먹고 차를 마셨다. 늘 똑같은 패턴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밥 먹고 만나자'는 이유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오랜만에 만나는 건데, 같이 밥 한 끼 먹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 싶기도 했다.
차라리 어떤 사정이 있어 밥을 먹을 수 없다고 했으면 이해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결국, 그날 친구를 만나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혹시 내가 늘 밥값을 내는 상황이 친구에겐 부담이었을까?
그동안 아무렇지 않게 했던 일들이 오히려 친구에게 불편함으로 쌓였던 건 아닐까?
의문이 생기다가도 마음속에 쌓여 있던 서운함이 폭포수처럼 쏟아졌다.
한 동안 연락을 하지 않던 내가 문자를 보냈다.
"○○아, 이번 주말에 여행 가자."
"그래."
아무 말도 묻지 않고 응한 친구와 함께 근교로 여행을 떠났다.
나는 그날의 서운했던 감정을 꺼내 이야기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친구는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아이들 이야기만 했고, 겉도는 이야기만 나눈 여행이 되어버렸다.
그날, 친구의 마음이 더는 내 마음과 같지 않다는 걸 확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