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떡볶이와 함께였다

by 눙디

그날도 엄마는 재단대 앞에서 천을 자르고, 재봉틀 앞에 앉아 한 몸이 된 듯 바쁘게 바늘을 움직이고 계셨다.

나는 엄마의 바쁜 등을 바라보며 소파에 앉아 동화책 속 세상에 빠져 있었는데, 어느 순간 엄마가 내 손에 동전을 꼭 쥐어 주셨다.
"○○아, 먹고 싶은 거 사 먹고 와."


여섯 살까지 동생이 없던 나는 늘 혼자 놀았고, 엄마는 그 모습이 안쓰러웠다고 나중에 말씀하셨다.
아마 그날도 혼자 있는 내 모습이 마음에 걸리셨던 모양이다.


나는 그 동전을 손에 꼭 쥔 채 곧장 의상실에서 한 블록 떨어진 골목에 있는 분식집으로 달려갔다.
그곳은 길가에 자리 잡은 작은 포장마차였는데, 스테인리스 직사각형 조리판 위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새빨간 양념 속에서 떡볶이가 끓고 있었다.
순대, 튀김, 어묵까지 가지런히 놓여 있었지만, 내 눈은 오직 떡볶이에만 꽂혀 있었다.


아줌마에게 동전을 내밀며 "떡볶이 주세요"라고 말하자, 초록 바탕에 흰 무늬가 불규칙하게 그려진 타원형 그릇에 빨간 떡볶이가 담겨 나왔다.
그 색감이 얼마나 예뻤던지, 나는 이미 눈으로 절반을 먹어버린 기분이었다.
떡의 쫄깃함과 양념의 달콤한 매운맛이 혀끝에서 어우러지자,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아이가 된 것 같았다.

그릇이 바닥을 보이기도 전에 나는 의상실로 달려가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나 50원만!"
정확히 얼마를 냈는지는 기억이 흐릿하지만, 떡볶이 한 그릇이 50원이었던 건 분명하다.

엄마에게서 다시 50원을 받아 분식집으로 달려가 두 번째 그릇을 깨끗이 비우고, 다시 돌아와 세 번째 50원을 받았다.
"이게 마지막이야." 엄마의 말에도 나는 웃음을 참지 못한 채 또 달렸다.

세 번째 그릇을 다 비운 뒤에는 도저히 뛸 수가 없어서, 배를 두 손으로 부여잡고 천천히 걸어 돌아왔다.
그날이, 내 기억 속에서 '처음으로 먹은 떡볶이의 날'로 남아 있다.


초등학교에 다닐 때도 나는 여전히 학교 앞 떡볶이 가게를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매일같이 아줌마에게 눈도장을 찍는 나를 아줌마가 기억하지 못할 리 없었다.
그 덕분에 나는 자연스레 단골이 되었고, 떡볶이 가게 매상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었을 것이다.

당시 300원어치 떡볶이를 사면 어묵 국물이 따라 나왔는데, 아줌마는 센스 있게 어묵 몇 조각을 서비스로 더 넣어주셨다.
나는 떡볶이도 좋아했지만, 그 따끈하고 짭짤한 어묵 국물도 좋았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그 분식집만을 다니게 되었다.


중학교를 다니던 시절의 떡볶이 1인분 가격은 500원이었다.
내 용돈은 일주일에 4,000원이었는데, 거의 매일 떡볶이를 사 먹느라 다른 간식에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
분식집에서 파는 삼각형 계란 샌드위치도 500원이었지만, 내 마음은 온통 빨간 떡볶이에 쏠려 있었다.


고등학교 시절 학교 내 매점에서 팔던 떡볶이는 조금 달랐다.

빨갛지 않고 옅은 주황빛을 띠는 밀가루 떡에 국물이 많았으며, 채소는 전혀 들어 있지 않았지만, 중독성 있는 맛이었다.

점심 도시락을 먹고 배가 불렀음에도 불구하고, 그 떡볶이를 위해 다시 매점으로 향했던 기억이 난다.
주 3회 정도는 꼭 사 먹었던 것 같다.


대학교 시절에도 나는 변함없이 떡볶이를 찾았다.
다만 달라진 점이 있다면, 떡볶이를 술안주로 즐기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철판 요리를 먹을 때는 꼭 떡사리를 함께 주문하는 것이 나만의 룰이 되었다.


잊을 수 없는 떡볶이는 한 가지가 더 있다.
친구가 자주 이야기하던, 여고 앞에 위치한 깻잎 떡볶이였다.
궁금증에 한 번 찾아간 그곳에서는 미리 조리해 둔 떡볶이 위에 채 썬 깻잎을 잔뜩 얹어주었다.
깻잎의 향긋함과 떡볶이의 매콤한 맛이 어우러져 정말 환상적인 조합이었다.

그 뒤로 나도 떡볶이에 깻잎을 넣어 먹는 것을 좋아하게 되었다.


그 이후에도 나는 맛있다는 떡볶이 집을 찾아다녔다.
서울 신당동에 밀집한 떡볶이 골목까지 두 시간이나 걸려 찾아간 적도 있었다.
즉석조리 떡볶이의 매력을 기대했지만, 실망했던 기억도 있다.
내가 좋아하는 쫄깃한 떡은 몇 개 없고, 어묵, 만두, 당면, 순대, 햄, 채소만 잔뜩 들어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재래시장에서 밀떡을 발견했을 때 왠지 반가웠다.
떡가게에서도 떡볶이용으로 가늘게 뽑은 떡을 팔지만, 나는 쌀떡보다 밀떡의 쫄깃한 식감을 더 좋아한다.
주저 없이 밀떡과 어묵을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궁중 팬(냄비)에 적당량의 물을 붓고 엄마표 고추장과 고춧가루를 넣어 끓였다.
밀떡과 어묵, 그리고 냉장고에 있는 각종 채소들을 넣고 조리하다가 설탕과 물엿으로 달콤함을 더했다.
마지막으로 간장을 약간 넣어 간을 맞추고, 화룡점정으로 깻잎을 듬뿍 올렸다.


그 뒤로 한동안은 떡볶이를 사 먹지 않았다.

노년에 떡볶이 가게 사장님이 되어, 내가 좋아하는 태국에서 떡볶이를 만들어 파는 상상을 하며 혼자 웃곤 했다.


한 번은 방송에서 떡볶이를 두고 '정크푸드인가? 소울푸드인가?'라는 갑론을박이 이어진 적이 있었다.
물론, 정제된 밀가루를 압축해 만든 떡과 설탕, 물엿이 몸에 좋지 않다는 점은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내 마음속 떡볶이는 언제나 소울푸드였다.
아마도 그 안에 내 어린 시절 추억이 담겨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요즘은 프랜차이즈 떡볶이 가게가 많이 생기고, 가격도 크게 올라서 옛날처럼 가볍게 즐기기 어렵다.
누구나 부담 없이 사 먹던 간식에서, 한 끼 식사로 충분한 양과 값이 되어버린 점은 아쉽기만 하다.


요즘 학생들 사이에서는 마라탕이 유행이라고 한다.

옛날 학생들에겐 떡볶이가, 요즘 학생들에겐 마라탕이 그 역할을 대신한다.
시간이 지나면 마라탕도 누군가의 소울푸드가 되어 추억 속에 자리 잡을 것이다.


옛날 떡볶이를 담던 그릇은 이제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작은 소품이 되었다.
심지어 그 맛을 경험하지 못한 젊은 세대조차도 레트로 감성에 이끌려 그릇을 모은다니, 신기하고도 놀라운 일이다.


이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에도 떡볶이가 그리워진다.
이런 순간들이 내게는 참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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