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농사 철학

들깨를 파종하며

by 눙디

우리 밭은 작물을 키울 때 멀칭(mulching)을 하지 않는다.

멀칭은 농사 관리법 중 하나로, 이랑을 만들고 토양 위를 검정 비닐로 덮는 작업을 말한다.

검정 비닐을 씌우면 햇빛을 차단해 잡초를 억제할 수 있고, 수분을 유지해 주어 자주 물을 주지 않아도 된다.
그 밖에도 장마철 토양 유실을 방지하고, 병해충도 막을 수 있으며, 작물에 흙이 튀지 않도록 도와주는 등 여러 이점이 있다.


아버지는 이러한 이점들을 잘 알고 계시면서도 멀칭을 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다.
공기 흐름이 차단되어 뿌리가 썩을 수 있고, 지온이 과하게 올라가 작물이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다는 점.
또한 수확 후 비닐을 걷는 일이 번거롭고 시간과 노동력이 많이 든다는 점 때문이라고.


멀칭의 장단점을 알고는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멀칭을 해두는 편이 낫지 않을까 싶을 때가 있다.

잡초를 제거할때가 그렇고, 상추나 딸기처럼 흙이 쉽게 튀는 작물을 수확할 때도 그렇다.

늘 '멀칭을 했으면 좋았을 텐데'하고 아쉬움을 느끼게 된다.


멀칭을 하지 않았다고 해서 작물이 잘 자라지 않은 것도 아니다.
매년 고구마, 감자, 양파, 고추, 딸기, 마늘 등등 다양한 작물들이 잘 자라주었으니까.


아버지의 농사 철학은 하나 더 있다.

가능한 한 모든 작물에 씨앗을 직접 뿌려 기르신다는 점이다.

상추, 쑥갓, 참깨, 들깨 등 대부분 작물이 씨앗에서 시작된다.

작은 씨앗 하나하나를 손으로 뿌리시고, 기다리시며 보살피신다.

아버지께서는 농사 자체를 진심으로 즐기시는 듯하다.

씨앗이 싹을 틔우는 모든 순간에 마음을 기울이시고, 그 기다림마저 농사의 소중한 일부로 여기신다.


얼마 전, 들깨 파종을 하는 날 부모님과 함께였다.
밭을 갈고, 씨앗을 뿌리고, 흙을 덮고, 발로 밟고, 망사를 덮고, 물을 주는 여러 번의 손길이 더해졌다.

일주일 뒤, 망사를 걷어내자 소복하게 올라온 새싹들이 조용히 고개를 들고 있었다.

그 예쁜 새싹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저절로 웃음이 지어진다.




갈아라, 갈아라 밭을 갈아라.

딱딱한 흙, 부드럽게 풀어라.


뿌려라, 뿌려라 들깨 씨앗 뿌려라.

숨결처럼 가볍게, 골고루 뿌려라.


덮어라, 덮어라 흙을 덮어라.

소복소복, 씨앗을 감싸 안아라.


밟아라, 밟아라 꼭꼭 밟아라.

두 발로 눌러라, 정성껏 눌러라.


덮어라, 덮어라 고운 망사 덮어라.

햇살은 들이고, 새는 막아라.


물 주어라, 물 주어라 한참 주어라.

촉촉이, 스며들도록, 뿌리까지 머물게.


기다려라, 기다려라 일주일 남짓.

연둣빛 새싹이 조용히 고개를 든다.

keyword
이전 26화기억하고도 아무것도 하지 못한 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