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맞아야만 했는가

by 눙디

고등학교 때의 일이다.

경제 과목 시간만큼은, 우리 반 모두 숨을 죽인 채 수업에 임해야 했다.

선생님은 단 한 번도 미소를 짓지 않던 분이었고, 그 교실 안엔 항상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말소리나 기침 소리 하나조차 허락되지 않을 만큼, 교실은 숨 막히는 긴장감에 싸여 있었다.

우리는 50분 중 30분을 칠판에 빼곡히 적힌 글씨를 공책에 옮겨 적는 데 써야 했고, 나머지 20분은 선생님의 설명을 들어야 했다.

수업은 어렵고 재미없었고, 목소리를 낼 자유조차 허락되지 않는 수업이었다.

그래서 나는 경제 수업이 싫었다.


시험 기간이었다.

경제 과목 시험을 마친 뒤, 종례를 기다리며 시험지를 보며 답을 맞혀보고 있을 무렵, 옆 반 친구가 교실 문 앞에서 날 불렀다.

"○○아, 경제 선생님이 너 교무실로 오라고 하셨어."

'왜 나를?' 고개를 갸우뚱하며 교무실로 향했다.

선생님이 계신 곳이긴 했지만, 그 공간은 정확히 말해 '상담실'이었다.


옷매무새를 가다듬은 뒤 조심스럽게 문을 두드렸다.

"저, ○○○인데요. 저를 찾으셨다고 해서 왔습니다."

선생님은 날 한 번 매서운 눈빛으로 쏘아보시더니, 아무 말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내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오셨다.

그리고는 이렇게 물었다. "네가 ○○○이야?"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선생님의 손이 내 뺨을 세차게 내리쳤다.

쓰고 있던 안경은 저 멀리 날아갔고, 나는 주저앉았다.

놀란 나머지 뺨을 부여잡은 채 어안이 벙벙해 있었다.

그때 선생님이 소리쳤다. "이리 와! 너, 네가 왜 맞았는지도 모르지?"

눈물이 핑 돌았다. 흐릿한 시야 속에서 안경을 주워 쓰고는, 선생님 책상 옆으로 조심스레 다가갔다.

그제야 선생님은 내게 OMR 답안지를 내밀었다. 시험이 끝난 후 제출한, 나의 답안지였다.

한참을 바라봐도, 내가 왜 맞았는지 알 수 없었다.

선생님은 주관식 문항 중 하나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때서야 들려온 말.

"이거 봐. 앞의 두 글자랑 뒤의 두 글자 필체가 다르잖아. 누가 봐도 네가 쓴 게 아닌 것 같잖아."

나는 당황한 채 설명했다.

"샤프심이 떨어져서 중간에 심을 다시 끼웠어요. 그래서 느낌이 좀 다르게 나왔나 봐요."

글씨체가 완전히 바뀐 건 아니었지만, 확실히 글씨의 힘이나 느낌이 조금 다르긴 했다.

나는 이유를 설명하면서도 그것이 뺨을 맞을 이유였는지는 여전히 납득이 되지 않았다.

선생님은 이어서 말했다.

"이런 식으로 써 놓으면, 나중에 교육청에서 '감사' 나왔을 때 내가 답을 써준 것처럼 보일 수 있잖아! 너 때문에 내가 오해받게 생겼잖아!"


결국, 내가 뺨을 맞은 이유는 선생님이 '의심받을 수 있는 상황'을 내가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그날 받은 건 '체벌'이 아니었다. 감정이 실린, 명백한 폭력이었다.


교실로 돌아왔을 땐 이미 종례가 끝나 있었고, 평소 함께 하교하던 친구 몇 명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책상에 엎드려 한참을 소리 내어 울었고, 영문을 알 수 없었던 친구들은 내 등을 두드리며 나를 위로했다.


선생님은 내 이름도 제대로 알지 못했다.

답안을 그렇게 쓰면 안 된다는 걸 이해시키거나, 차분히 설명해 주려는 시도조차 없었다.

그저 본인의 억울함을 막기 위해, 나를 희생시켰다.


지금은 체벌이 금지되어 이런 일은 없겠지만, 그 시절엔 흔한 풍경이었다.

우리 반 친구 중 한 명도, 또 다른 선생님에게 말대답을 했다는 이유로 교탁 앞에서 공개적으로 따귀를 맞은 적이 있다.

온 친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였다.

그 친구도 많이 놀라고, 수치스럽고, 억울했을 것이다. 마치 그날의 나처럼.

우리는 숨죽인 채 그 장면을 지켜보며, 말로 하는 교육이 아닌 폭력으로 길들여지는 교육을 받고 있었다.

'말대답을 하면 맞을 수 있다'는 사실이 하나의 규칙처럼 주입되었다.


그날의 기억은 오래도록 내 안에 남아 있었다.

그날의 상처가 조금이라도 아물기를 바라며 이 글을 쓴다.

이제야 비로소 꺼내 놓으며, 나는 나 자신을 다독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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