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1학년 첫날, 유독 눈에 띄는 친구가 있었다.
투명에 가까울 정도로 맑은 피부, 커다란 눈과 짙은 쌍꺼풀,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더욱 돋보이게 하던 검은 단발머리.
그 친구는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분위기를 지니고 있었다.
나는 자주 그 친구를 눈여겨보곤 했다.
항상 조용했고, 자신의 책상에 앉아 책을 읽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만화든 소설이든 장르를 가리지 않고 몰입하는 모습은 묘하게도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
우리는 그리 가까운 사이는 아니었지만, 같은 반이었기에 가끔은 이런저런 대화를 나눴다.
그 친구가 꼭 마음에 들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싫지도 않았다.
워낙 조용하고 말수가 적었기에 내가 먼저 다가서기엔 조금 어려웠던 것 같다.
3년 내내 같은 반이었던 우리는, 자연스럽게 서로를 의식하게 되었다.
그 친구는 매번 1등이었고, 나는 항상 2등이었다.
분명 나도 열심히 했지만, 단 한 번도 그 친구를 이겨본 적이 없었다.
그 친구는 내게 가장 강한 자극이자, 선의의 경쟁 상대였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어쩌면 그 친구를 동경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고3, 2학기 기말고사.
마지막 과목 시험이던 날이었다.
나는 교실 맨 앞줄에 앉아 있었고, 그 친구는 내 자리에서 두 칸 뒤에 앉아 있었다.
예상보다 일찍 문제를 다 푼 나는, 시험지를 덮고 시계를 보기 위해 고개를 뒤로 젖혔다.
그때, 무심결에 마주친 그 친구의 모습은 잊히지 않는다.
고개를 숙인 채, 시험지 밑에 깔아 둔 작은 쪽지를 보고 있는 그 친구.
그리고, 우리 눈이 마주쳤다.
그 순간, 심장이 쿵 하고 요동쳤다.
나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칠판을 바라봤지만, 이미 본 것은 돌이킬 수 없었다.
머릿속이 하얘졌고, 손끝은 서늘해졌다.
종소리가 울리고, 선생님이 답안지를 걷어 나가자 친구들은 시험이 끝났다는 해방감에 들떠 있었다.
그러나 내 마음은 점점 무거워졌고, 표정도 굳어졌다.
나는 조용히 그 친구에게 다가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나, 3년 동안 널 이겨보겠다고 그렇게 애썼는데, 넌 겨우 이 정도였어?"
물론, 그 친구가 3년 내내 시험을 모두 컨닝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날의 나는 너무도 화가 나 있었다.
그 말을 들은 친구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표정 하나 바뀌지 않은 채, 그저 시험지만 만지작거리며 시선을 들지 않았다.
침묵만이 흘렀고, 그 침묵 속에서 분노와 실망이 뒤섞인 감정이 서서히 밀려왔다.
그렇게 우리는 졸업했고, 각자의 길로 나아갔다.
몇 년 후, 동창회 자리가 마련되었고, 그 친구도 참석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누군가는 그 친구가 결혼해서 아이도 여럿 낳았다고 했다.
그 말을 들었지만, 쉽게 상상이 되지 않았다.
그 조용하던 아이가 누군가의 아내이자 엄마가 되었다는 사실은 어쩐지 어울리지 않는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조금 늦게 도착한 그 친구는 여전히 특유의 분위기를 지니고 있었다.
나는 조심스레 다가가 "잘 지냈어?"라고 물었고, 그 친구는 "어."라고 짧게 대답했다.
우리가 나눈 대화는 그것이 전부였다.
그것이 우리가 마주한 마지막 순간이었다.
그날, 내가 시계를 보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그 장면을 마주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더 가까운 친구가 될 수 있었을까.
가끔은 그런 생각을 한다.
하지만 분명한 건, 그 친구 덕분에 나는 더 치열하게 스스로를 단련할 수 있었고, 그 시절의 모든 긴장과 노력이 결국 나를 조금 더 단단한 사람으로 만들어줬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