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배움 앞에서 더 빛났던 분들

by 눙디

평일 아침 7시. 눈을 비비며 일어나 광역버스와 시내버스를 갈아타고 도착한 곳은 서울의 ○○사회복지회관이었다.

65세 이상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평일 오전 9시부터 3시간 동안 수업을 진행했었다.

주로 문서 작성과 인터넷 활용 등의 기본적인 컴퓨터 사용법을 가르쳤다.

수업 준비는 컴퓨터를 부팅하고, 한글 프로그램을 실행해 커서가 깜빡이면 완료된다.

그런데 내가 도착하기 훨씬 전에 미리 컴퓨터를 켜고 수업 준비를 마친 채 나를 기다리시던 분들이 대부분이었다.


대상은 65세 이상이었지만, 실제로는 70~80대 어르신들이 대부분이었고, 특히 인상적이었던 점은 부부가 함께 수업을 신청해 나란히 앉아 수업을 듣는 경우가 절반 가까이 되었다는 것이었다.

말씀하실 때 약간 불편해 보이시거나, 거동이 불편해 보이시는 분들도 계셨지만, 배우려는 마음 하나로 반려자의 도움을 받거나 지팡이에 의지해 한 번도 지각하지 않으셨다.


수업이 시작되면 매일 같은 질문이 돌아왔다.

"배울 땐 이해가 되는데, 막상 집에 가면 기억이 잘 안 나서 어려워요."

나는 숙제를 낸 적이 없지만, 어르신들은 스스로 복습을 해 오시곤 했다.

그럴 때마다 "괜찮아요, 누구나 처음엔 그래요. 저도 새로운 것을 배울 땐 자꾸 까먹어요."라고 말씀드리면,

"아, 그래요? 나만 못 따라가는 줄 알고..." 하며 말끝을 흐리시면서도 그 표정 속엔 안도감이 서려 있었다.


수업은 늘 천천히 진행되었고, 수업 내용을 먼저 따라오신 분들은 자발적으로 보조강사가 되어 주변 어르신들을 도와주셨다.


컴퓨터 자판을 독수리 타법으로 하나하나 눌러가며 정성스럽게 입력하시는 모습을 볼 때마다 깊은 인상을 받곤 했다. 그분들에겐 '포기'라는 단어가 없었다.

아무리 느려도 끝까지 해내는 그 모습이 바로 그것을 보여주었다.


시력이 좋지 않으셨을 텐데도 중요한 내용은 꼭 노트에 꾹꾹 눌러 적으셨다.

"내일도 다시 설명드릴 테니 굳이 안 적으셔도 괜찮아요"라고 말씀드려도,

"집에 가서 복습해보고 싶어서요"라며 꼭 메모를 하셨다.


인터넷 수업에서는 이메일 계정 만들기, 카페 가입 및 글쓰기, 메신저로 텍스트 주고받기를 가르쳤다.

한 번은 닉네임을 정해보시라고 했는데, 갑자기 교실 분위기가 조용해졌다.

아마도 내 이름이 아닌 다른 이름으로 불리는 것이 어색하고 낯설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이내 닉네임을 모두 정하셨고, 대부분 자연과 관련된 단어들로 선택하셨다.

특히 어머님들은 꽃 이름을 닉네임으로 많이 고르셨다.

국화, 민들레, 백합, 장미...

서로의 닉네임을 확인하던 순간, 교실은 한바탕 웃음바다가 되었다.


어르신들에게 복습하다가 막히면 언제든 전화하셔도 된다고 말씀드린 적이 있었다.

수업에 매우 열정적으로 수업에 참여하셨던 어머님은 전화를 하실 때마다 "미안해서 어떡해요..." 하시곤, 다음날 간식을 챙겨 오셔서 주시기도 하셨다.

그 마음이 너무 따뜻해서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


젊은 시절 누구나 부러워할 만한 직업을 가졌던 분들도 몇 분 계셨다.

누구보다 자부심을 가질 만한 이력이 있으셨지만, 내색하지 않고 스스로를 낮추며 배우는 모습에서 진정한 '겸손'을 배울 수 있었다.


우리의 수업은 3시간 내내 자연스럽고 따뜻하게 흘렀다.

웃음이 끊이지 않았고, 진심이 오갔다.

집에서 가까운 거리는 아니었지만, 어르신들과 함께했던 그 시간이 너무 즐거웠다.


돌이켜보면, 가르친 것보다 배운 것이 훨씬 더 많았던 시간이었다.

겸손, 성실, 배려, 그리고 열정.

무엇보다도 '배움에는 끝이 없다'는 소중한 깨달음을 얻게 해 주신 분들이었다.


20년 가까이 흐른 지금도, 그 시절이 그립고 그분들과의 인연이 아련히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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