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십 대의 나는 거의 매주 주말마다 산에 있었다.
그 시절, 산이 참 좋았다.
숨이 턱턱 막히도록 힘든 오르막을 지나 정상에 오르면, 정상석 앞에서 찍는 그 한 장의 사진이 주는 쾌감이 이루 말할 수 없이 벅찼다.
늘 '이번이 마지막 산행일지도 모른다'는 마음으로 산에 올랐고, 내려오면서는 또다시 다음 산을 계획하곤 했다.
근교의 낮은 산은 혼자 다니기도 했지만, 주로 여러 사람들과 함께 높고 낮은, 멀고 가까운 산을 오갔다.
'100대 명산을 모두 찍겠다'는 야심 찬 목표도 있었다.
허리디스크만 아니었더라면, 현재도 그 목표를 마음에 두고 산길을 걷고 있었을 것이다.
어느 해 겨울.
전날 밤에 폭설이 내려, 아이젠과 스패츠, 스틱 등 겨울산행에 필요한 장비를 더 단단히 챙겨 산행을 시작했지만, 그날 우리는 길을 잘못 들었다.
원점 회귀를 했어야 했는데, 어느새 반대편으로 걷고 있었다.
"택시 타고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자."
해가 지기 전까지는 내려가자는 결론을 내리고 조심조심 걸었다.
한참을 걷다 잠시 쉬자며 나무 아래에 기대어 쉬고 있을 때, 오십 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두 명의 등산객이 우리 근처에 자리를 잡았다.
그들도 잠시 땀을 식히는 듯 보였다.
산에서는 처음 보는 사람과도 종종 말을 트게 된다.
힘든 길을 걷다 마주치면 "수고하세요", "힘내세요" 같은 인사가 오가고, 낯선 이와 가벼운 대화를 나누는 일도 흔하다.
그 두 사람 중 한 명이, 내가 나무 옆에 가지런히 세워둔 빨간 스틱을 보며 말을 걸었다.
"스틱 누가 놓고 간 건가 봐요?"
"아, 제 거예요."
"그래요? 잠깐만 볼게요."
나는 스틱 두 개를 나란히 잡아 건넸다.
그는 스틱을 살펴보며 물었다.
"이거 얼마짜리예요?"
"정확히 기억은 안 나는데, 2만 원 조금 안 줬던 것 같아요."
그러자 그가 말했다.
"에이, 이런 거 쓰면 안 되죠."
순간 나는 무슨 말인가 싶었다.
"네? 왜요?"
"스틱은 좋은 거 써야죠. 비싼 거 사세요, 비싼 거."
그는 곧 자신의 스틱을 자랑하기 시작했다.
어느 나라 제품인지, 가격은 얼마인지, 어떤 기능이 있는 등 그야말로 자랑이었다.
이야기는 점차 본인의 직업과 재력까지 넌지시 드러내는 쪽으로 흘러갔다.
나는 그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그리고, 안전산행을 하시라고 말을 한 뒤 다시 걷기 시작했다.
얼마나 걸었을까. 함께 가던 일행 중 한 명이 말했다.
"저런 사람 말 신경 쓰지 마. 그냥 자기 과시하려는 거잖아."
나도 고개를 끄덕이며 그 말에 동의했다.
그렇게 우리는 무사히 하산했고, 택시를 타고 원점으로 돌아갔다.
그 빨간 스틱은 그 후로도 오랫동안 내 산행을 함께했다.
대략 10년은 된 듯하다.
그리고 허리 통증으로 산행을 멈춘 뒤엔, 아버지께서 동네 뒷산에 오르실 때마다 들고 다니셨다.
지금도 여전히, 그 스틱은 제 몫을 다하고 있는 중이다.
어떤 것이 '좋은 것'인지는, 써봐야 아는 법이다.
그것이 비싸서 좋은 건지, 오래 함께해서 좋은 건지는 결국 시간과 쓰임이 알려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