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굴에서 익어가는 정직한 맛

by 눙디

겨울 어느 날, 아버지와 함께 바람도 쐴 겸 '○○항'으로 드라이브를 다녀왔다.
우리는 젓갈 몇 가지를 골고루 샀다.
엄마가 요리할 때 주로 사용하는 새우젓, 아버지가 밥상에서 즐기시는 조개젓, 그리고 나와 남동생이 좋아하는 낙지젓까지.

그렇게 기분 좋게 집으로 돌아왔고, 낙지젓과 조개젓은 금세 밥도둑처럼 사라졌다.

하지만 새우젓은 냉장고 안에서 긴 시간을 버티고 있었다.

엄마는 요리할 때마다 조금씩 꺼내 쓰셨다.


계절이 바뀌어 봄이 찾아왔다.

겉절이를 담글 준비를 하던 어느 날, 엄마는 새우젓을 꺼냈다가 그대로 음식물 쓰레기통에 넣으셨다.
형태는 온데간데없고, 역한 냄새만이 남아 있었다.

엄마는 그날 이후로 '제대로 된' 새우젓을 사야겠다고 여러 번 말씀하셨다.
TV에서 토굴에서 자연 발효로 익혀낸 새우젓이 소개될 때면, "저런 새우젓 좀 사다 먹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말씀하시곤 했다.


며칠 전, 아버지가 텃밭에서 애호박 몇 개를 따오셨다.

엄마는 그걸 보며 "새우젓 넣고 자박자박 끓이면 정말 맛있을 텐데"라고 하셨다.

그 말에 우리는 마음을 모아, '토굴 새우젓'을 사러 길을 나섰다.
아무것도 첨가하지 않고, 자연 속에서 묵묵히 익어가는 그 진짜 젓갈을 만나러.


가는 길에 나는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우리 가면 토굴 보여주실까?"
"오는 사람마다 어떻게 다 보여주시겠니"
그래도 한 번쯤은 토굴 안을 볼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도착한 상점은 소박했다.

사장님께서 "많이 덥죠? 토굴로 가시죠" 하며 우리를 이끌었다.

뜻밖의 행운이었다.
우리는 그렇게 토굴 안으로 들어섰다.
몇 걸음 걷자 더위는 사라지고, 서늘한 기운이 팔을 스쳤다.
점점 안으로 들어가니 외투가 아쉬울 정도의 한기가 느껴졌다.


토굴 안은 여러 갈래길로 이어져 있었고, 커다란 통들이 길게 줄지어 서 있었다.
사장님은 뚜껑을 열어 보여주셨다.

연분홍빛의 작은 새우들이 제 모양을 그대로 간직한 채 익어가고 있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신선함이 느껴졌다.


요즘, 정직을 가장한 장사꾼들이 얼마나 많은가.
좋은 재료라 속여 가짜 젓갈을 팔고, 상한 음식을 진공포장으로 감추는 이들도 있다.
이윤에 눈이 멀어 양심을 저버린 사람들로 인해, 소비자들은 늘 불신 속에 살아간다.

그러나 이곳에서만큼은, 젓갈 하나에도 진심이 느껴졌다.
그 긴 토굴 속에서 '시간'이 맛을 빚어내고 있었다.


그날 우리는 새우젓과 함께, 아버지가 좋아하시는 조개젓도 함께 구입했다.
엄마는 만족스러워하셨고, 아버지는 "토굴은 처음 들어가 봤다"며 즐거워하셨다.


다음 날, 밥상 위엔 애호박과 새우젓이 자박하게 끓여진 국이 올랐다.
평소 국물을 잘 안 드시던 엄마가 국물까지 깨끗이 비우셨다.

"엄마, 새우젓 다 떨어지면 또 가?"

"안 가"
"왜?"
"택배 있잖아!"
"아...!"

믿을 수 있는 상점과 정직한 상인을 만났기에, 이제는 믿고 주문만 하시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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