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생 시절, 나는 연기학원에 다니고 싶었다.
하지만 우리 집은 형편이 그리 넉넉하지 않았다.
그때는 몰랐지만, 나중에 엄마의 옛이야기를 들으며, 그 시절이 참 어려운 시기였음을 알게 되었다.
나는 그런 사정을 전혀 눈치채지 못한 채, 평범하게 청소년기를 보내고 있었다.
동네에 예쁘게 생긴 언니가 있었다.
탤런트가 되고 싶어 했지만, 엄마의 극심한 반대에 부딪혀 밥도 먹지 않고 방에 틀어박히는 '시위 아닌 시위'를 한 적이 있었다.
나는 속으로, 언니가 정말 텔레비전에 나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우리 학교에는 까무잡잡한 피부에 또렷한 이목구비를 가진 학생이 있었는데, 연기자 학원을 다니며 청소년 드라마의 엑스트라로 출연한 적도 있었다.
학교에서는 이미 연예인급 인기를 누리고 있었다.
그 친구가 부럽지는 않았지만, '나도 장래희망이란 걸 가져봐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
그 시기, 두 사람의 영향을 받으며 나도 막연히 '연기자가 되고 싶다'는 꿈을 품게 되었다.
어느 날, 엄마 몰래 서울 여의도에 있는 연기학원 오디션을 보러 갔고, 합격했다.
그 후 엄마에게 연기학원에 다니고 싶다고 조심스레 말했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단호했다.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
오디션에 합격했다고 말하자, "거긴 돈 벌려고 누구든 붙여줘."라며 엄마는 단호하게 잘라 말했다.
그때도, 지금도 나는 고집이 센 편이다.
몇 날 며칠을, 아니 몇 달을 엄마에게 졸라댔다.
떼를 쓰고, 반항도 하고, 별 방법을 다 써봤다.
하지만 엄마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엄마의 그런 반응에 상처도 받았고 속상하기도 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엄마의 걱정은 당연했다.
나는 외모가 특히 눈에 띄는 편도 아니었고, 말을 잘하거나 센스 있는 옷차림과는 거리가 멀었다.
무엇보다 '끼'라는 것이 나에게는 없었다.
장기자랑에 한 번도 나가 본 적 없는 내가 연기에 관심을 가지니, 엄마는 황당하면서도 답답했을 것이다.
결국, 못 이기는 척 엄마는 아빠 몰래 학원비를 내 손에 쥐여주었다.
거금이었다.
나는 그 돈으로 연기학원에 등록을 했다.
물론, 아버지는 지금까지도 모르신다.
주말마다 전철과 버스를 갈아타고 학원에 갔다.
커다란 카메라에 담긴 내 모습이 TV 화면으로 비치는 게 신기했고, 야외수업에서는 공원에서 드라마나 영화 대본을 읽으며 연기를 하기도 했다.
처음엔 모든 게 새롭고 즐거웠다.
하지만 그 즐거움 뒤에는 늘 '돈'이 따라왔다.
교재 한 권에 몇 만 원.
프로필 사진은 몇 십만 원.
카메라 테스트 비용도 만만치 않았고, 점심 한 끼도 부담스러웠다.
경제 개념이 없던 나조차도 '이건 큰돈이구나' 느낄 정도였다.
처음엔 엄마에게 이것저것 필요하다고 말했지만, 점점 그 말조차 꺼내기 어려워졌다.
그리고 결국, 학원을 자진해서 그만두었다. 수료도 하지 않았다.
엄마는 아직도 내가 싫증이 나서 그만뒀다고 생각하신다.
하지만 그게 아니다.
나는 여전히 재미있었다.
다만, 내가 감당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었다.
그 모든 환경 속에서 나는 이곳이 내 자리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같은 기수의 친구들은 공주 옷이나 신사 옷을 입고 다녔고, 부모님들은 학원 로비에서 기다렸다가 아이들을 모셔가듯 데려갔다.
점심시간에는 고급 음식점에서 식사를 하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흘러갔다.
그 모든 것들이 부럽지는 않았지만, 분명 나는 그 세계에 '흡수될 수 없는 사람'이라는 사실만은 뚜렷했다.
그래서 어느 날, 엄마에게 말했다.
"나, 학원 그만 다닐래."
몇 개월 간의 연기학원 생활은 그렇게 막을 내렸고, 나는 다시 공부에 전념했다.
같은 기수였던 친구들이 혹시라도 텔레비전에 나오지 않을까 싶어 엑스트라까지 유심히 살펴본 적도 있었지만, 아는 얼굴은 없었다.
지금 그 친구들이 어디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지는 여전히 궁금하다.
사람들은 말한다.
"경험은 돈 주고도 못 산다"라고.
하지만 나는 돈을 주고 경험을 샀다.
그리고 후회는 없다.
궁금했던 일을 직접 경험해보았고, 그 덕분에 나는 다른 길을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만약 그때 연기학원의 경험이 없었다면, 나는 아직도 그 언저리를 맴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꿈이란, 해보지 않으면 평생 '미련'으로 남는다.
그게 무엇이든 한 번쯤 해보는 용기는, 인생에서 결코 헛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