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이 짧은 딸아이는 오늘도 저녁밥 거부. 아침은 배 아파서 안 먹고(그나마 요즘은 파리바게트 우유식빵 두쪽은 먹음) 점심은 급식이 맛없어서 안 먹고, 저녁은 또 배부르다고 안 먹는다.(대체 뭐가 배부르다는 거냐?!)
도저히 이러다 굶기는 엄마가 되느니 먹이는 엄마가 되고 싶어 흰쌀밥 한 바가지에 김치, 계란 스크램블을 코 앞에 놔두었더니 성질을 부린다. 초등학교 2학년의 성질은 22살 성인보다 더 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 가끔 그 화에 감성이 여린 남편은 더 큰 상처를 입는다. 그나마 목석인 나는 어릴 적부터 무한 폭격의 화를 당해본 이라 41년 간의 노하우로 상처를 바로 처리하거나 아예 차단이 가능하다.
하지만 피곤에 지쳐 회사에서 퇴근해 늙은(죄송합니다. 41살입니다만 9살보다는 32살 연상이기에) 애미가 밥을 차려줬껀만 눈을 부랴리니 진짜 화딱지가 제대로 올라왔다. 하지만 90초를 세워보았다. 어느 책에선가 90초가 지나면 고꾸러진 화의 호르몬이 상실된다고 하던 게 떠올랐던 거다. 그렇게 아무 말 없이 딸아이를 쳐다보니 조금씩 동요되었던 마음의 바다가 잔잔해진다. 그러고는 내가 퍼온 밥의 양을 보니, 좀 심하긴 했다. 성인 남자 밥 양의 2배이다. 미안하다. 사랑하다.
아이가 화를 내면 부모의 입장에서 "적반하장"도 유분수의 마음이 든다. 내가 이렇게 고생을 해서 너를 먹여주고, 키워주고, 입혀주는데(옛날 어른들 말투가 메타버스 시대에도 나온다) 이런 대접을 하느냐 하는 거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얼마나 화를 잘 내는지 모른다. 어쩔 때는 둘도 없이 사랑할 것처럼 웃으며 안아줘 놓고는 조금만 자신의 눈 밖에 나면 호되게 호랑이 눈이 되는데(오은영 박사님은 정말 필요할 때만 과감하게 혼내라고 하셨지만 그 수위가 애매모호할 때가 많다.) 아이들도 우리에게 적반하장을 느끼지 않을까? 열심히 뽀뽀를 해드리고, 이쁜 짓에 기운 나는 말까지 서비스로 해드리는데 수시로 짜증과 화를 내는 부모가 황당할 때도 있을 것 같다.
아무튼 그때 잠시 머물렀던 90초의 시간 이후, 나는 화를 내도 되는데 왜 아이는 화를 못 내는 것인가? 하는 반문이 들었다. 아이도 나도 인간이며, 본인이 원하는 것이 있을 텐데 그것이 반인륜적인 행동이 아니라면 당연히 화나는 것이 아닌가? 그 화를 어떻게 센스 있게 넘기고 받아치며 표현하는 가를 부모인 내가 먼저 본보기를 보여줘야 하거늘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윽박지르고 강요만 해댔으니 부끄럽기 그지없다.
역지사지.
이건 사회생활에서도 꼭 필요한 말이지만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에서도 마음에 새겨놓을 말이다.
보는 내내 먹먹했던 김영하 작가님 원작의 드라마. 말 잘듣던 천사같은 아이는 반항끼 가득한 사춘기가 되어 결국 돌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