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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년상품 Aug 11. 2019

내가 잘하면 남도 내게 잘한다

이 작은 믿음은 힘들게 살아온 어머니가 가지게 된 신념이자, 무기였다

가 잘하면 남도 내게 잘하는 세상


 내가 학교에서 맞고 돌아오면 우리 집은 두 파로 나뉘었다. 강경파였던 아버지와 형은 바보 같이 왜 맞고 왔냐고 당장 가서 맞은 것보다 더 때려주고 오라고 말했다. 온건파인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와 형을 흘겨보면서 먼저 나를 안아주었다. (보통 여기까지 나는 한 마디도 하지 않은 상태다) 그렇게 나를 안심시키고 나서 어머니는 무슨 일 때문에 싸웠는지 물었다.


 내 잘못으로 싸움이 일어났을 때도 있었고, 상대방의 이유 모를 악의에 의해 다툼이 일어났을 때도 있었다. 혹은 정말 싸움 말고는 답이 없는, 싸워야만 하는 순간도 있었다. 어머니의 물음에 내가 왜 싸우게 됐는지 이렇게 이야기했다. 하지만 어머니는 어떤 경우도 내 편을 들어주지는 않았다. 그저 앞으로 싸우지 말라고 하면서 뒤이어 매번 같은 말을 했다. ‘네가 잘하면 남도 네게 잘한다.’


 심지어 내 잘못이 아닌 싸움일 때도 이렇게 말씀하시는 어머니를 보며 어린 나는 억울했다. ‘네가 잘하면 남도 네게 잘한다.’ 이 말은 거꾸로 하면 ‘네가 잘 못했기 때문에 남도 네게 못했다.’라는 게 아닌가? 즉, 어머니의 말엔 내 잘못이 전제로 깔려있다고 느꼈고 그때는 그게 많이 억울했다.


 중학교, 고등학교 때 몇 번 더 싸우게 됐다. 그럴 때마다 어머니는 똑같은 말을 했다. 어머니 앞에서 알겠다고 순순히 답했지만 속으로 나는 어머니가 여자여서 남자들의 세계를 모른다고 그녀를 무시했다.


 성인이 되면서 주먹다짐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어졌다. 하지만 사회생활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들과의 다툼은 더 많아졌다. 사회생활과 다투고 집에 온 날, 심적으로 기대고 싶어서 나는 그날 있었던 일을 어머니에게 말했다. 어머니가 그저 내 편을 들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어머니는 역시 같은 대답을 했다. ‘네가 잘하면 남도 네게 잘한다.’


 답답했다.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사회생활은 내게 잘해주지 않았다. 그리고 평생 가난하고 힘들게 살아온 어머니가 어떻게 이렇게 긍정적일 수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어머니 혼자 동화 속 세상에 사는 것처럼 느껴졌다. 어렸을 땐 어머니가 여자여서 남자의 세계를 모른다고 무시했었다면, 이땐 더 나아가 어머니는 지금 사회 현실을 모른다고 무시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심부름으로 어머니가 일하는 가게에 갔다. 아마 여름이었던 것 같다. 무척 더웠다. 어머니는 땀을 흘리며 일하고 있었다. 덥고 힘든 와중에도 모든 손님들을 친절하게 대했다. 나는 어머니가 힘든 와중에 손님들에게 과한 친절을 베푸는 게 싫었다. 그 친절은 그들이 받아야 할 친절보다 많다고 생각했다. 그녀에게 다가가 손님들에게 너무 친절하게 대하는 것 아니냐고, 적당히 친절하게 해도 되지 않느냐 고 물었다. 그러자 어머니는 그 상황에서 듣게 될 것이라고 생각지 못한 말을 했다. ‘내가 잘하면 남도 내게 잘한다.’


 돌이켜보면 어렸을 적 자신과 성별이 다른 아들, 그리고 어느새 커버렸을 땐 그녀보다 아는 것이 많아진 아들에게 어머니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으리라. 어머니의 마음을 모르는 것은 나였다. 어머니의 현실을 모르는 것도 나였다.


 오래전 일이지만 이다음 상황들이 정확히 기억난다. 나는 얼마간 어머니를 도와드리다 가게를 나왔다. 23번 버스를 탔다. 울었다. ‘내가 잘하면 남도 내게 잘한다.’라는 것은 힘들게 살아온 어머니가 가지게 된 단 하나의 신념이자, 신앙이자, 무기였다. 내가 잘하면 남도 내게 잘할 것이라는 믿음. 이 작은 믿음이 없었다면 어머니는 무너졌을 것이다. 돌아올지 안 돌아올지 모르는 친절과 배려를 베풀며, 돌아온다고 언젠가 돌아올 것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온 어머니의 삶을 떠올리니 서글펐다. 많이 울었다.


 여전히 나와 사회생활과의 싸움은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이제는 사회생활의 긍정적인 면을 보려고 노력하고 있다. 요즘 어머니와 함께 ‘내가 잘하면 남도 내게 잘하는 세상’을 같이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1명이 베푸는 친절보다는 2명이 베푸는 친절이 돌아올 확률이 더 높을 테니까. 아 그리고 나도 이제 내가 잘하면 남도 내게 잘한다 라는 말을 믿는다. 나의 어머니가 그 증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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