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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년상품 Nov 11. 2019

빛은 잘 들어옵니꺼?

그것도 못 참아?에 대한 자아적 세대의 답변

-“빛은 잘 들어옵니꺼?”     


 성남의 대학교 근처 반지하의 세입자가 들은 첫 말이었다. 말총머리를 하고 버짐이 핀 입꼬리를 좀처럼 올리지 않으시던 집주인 아주머니는 반지하임에도 빛이 잘 들어온다는 점을 강조하곤 했다. 집이 있는 성남시 수정구는 비가 내리면 뭐든지 흘려 내려보낼 것 같은 기울기의 언덕 지형이었다. 그래서인지 건물 지하로 내려가 집 문을 열고 나면, 지상의 집처럼 창문으로 빛이 들어오는 것이었다.

-“이번에 리모델링 싹 했으니까네, 솔찬히 잘 살 수 있을꺼여”

 화장실과 안방, 그리고 주방 달린 거실이 있는 10평가량의 자취방은 2017년인 당시, 보증금 500에 월세 25만 원이면 살았다. 통학하려면 버스 타고 10분 동안 여정을 떠나야 한다는 단점이 있었지만, 서울에서 자취하는 친구들에 비하면 정말 괜찮은 조건이었다. 더군다나 반지하임에도 지하가 아니라니, 취객의 오줌 냄새를 맡거나 지나가는 아주머니의 한숨소리를 듣지 않아도 되었다. 주변에 괜찮은 식당이 없다는 게 큰 단점이었지만,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세이브존과 다이소가 있다는 점 덕분에 별다른 신경은 쓰지 않았다. 

    

-"아니이, 아무리 그래도 너어무 멀잖아“

 그럼에도 같은 과 동기인 룸메이트는 볼멘소리를 곧잘 내었다. 평소 걷는 걸 좋아하지 않는 동기에게는 통학거리가 문제로 작용했다. 

 

 룸메이트 A와 나는 비슷한 구석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정반대의 성향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활동적이고 새로운 요소를 좋아한다. 또한 자주 만나지는 않지만 사람들과 어울리는 걸 즐기는 편이었다. 반면 A는 점진적이고 안정적인 요소를 좋아했다. 그리고 마음에 맞는 사람들과 적당히 어울리는 걸 좋아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은 둘이 어떻게 친하게 지내냐고 많이들 물어보지만, 나름의 공통점이 있기에 같은 방을 쓰기까지 이르렀음은 분명하다. 둘 다 현재 전공과 학교에 많은 불만이 있으며, 다른 사람의 언행에 ‘그럴 수도 있지’라며 방관적 태도를 보인다는 것. 덕분에, 서로 불만을 털어놓기도 좋았으며 오히려 다르기에 편한 관계가 될 수 있었다. 

    

 그랬던 우리가 열정적으로 힘을 합쳐 다른 누군가를 위해 애썼던 때가 있다. 집 주변에 살던 길고양이를 보살폈던 사건인데, 피시방을 다녀온다던 A가 집 앞 골목에 서식하던 길고양이를, 자신을 잘 따른다는 이유로 데려온 것이다. 안정적인 걸 좋아하는 A가 어째서 그런 급작스런 선택을 했는지 잠시 동안 당황스러웠지만, A의 설명을 들은 후 우리 둘은 앞으로의 계획을 의논하기로 했다. 사실 그 길고양이는 자취 7개월 동안 자주 마주치던 아이였다. 전체적으로 까만 털을 가졌고, 이마에만 하얀 줄무늬를 가지고 있던 아이. 주변 이웃들과 우리가 밥을 잘 주어서인지 길고양이 치고는 거대한 풍채를 지녔다. 하지만 언제 다쳤는지 모를 다리를 이끌고 힘겹게 언덕길을 드나들던 아이. 하지만 그 누구도 치료해주기를 시도하지 않아 상처 부위가 곪아가던 아이였다. 우리는 이 고양이를 똘뭉이라 부르곤 했다.

-“너 고양이 잘 알아? 데려오기로 결정했을 땐 생각이 있었을 거 아니야.”

-“아니... 얘가 통통해서 잘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이긴 하는데에... 맨날 보면 여기 사는 게 힘들어 보이잖어...”

-“그럼 일단 얘 물부터 먹이고 씻기자. 근데 고양이 씻기는 거 엄청 힘들지 않나?”

-“그... 그건 내가 할게.”

그러고는 후다닥 고양이 씻길 준비를 하는데, 폼이 너무 엉성해서 오만가지 걱정이 다 될 정도였다. 그나마 다행인 건 똘뭉이가 별 저항없이 몸을 맡겼다는 점이다. A가 똘뭉이를 씻기는 동안 나는 고양이에게 필요한 물품이며, 주의할 점 그리고 입양 보내는 방법 등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길고양이를 입양하려는 사람은 별로 없겠지만 나와 A가 똘뭉이를 키울만한 경제적 여력이 되지도 않았거니와 둘 다 제 몸 건사하기도 벅찼기 때문이다. 똘뭉이 정도 외모면 서울대 고양이외모학과 정도는 합격할 수 있었기에 입양이 가능할지에 대한 걱정은 접어둘 수 있었다.

-일단! 똘뭉이 다리부터 치료하고, 중성화 수술도 시켜줘야 돼. 물론 그동안 먹일 밥도 사놔야 되고. 그러면 돈이 꽤 든다는데 어떻게 할까?

-중성화 수술이 뭐... 뭔데...?

-있어. 꼭 필요한 거. 우리 돈 없으니까 얘 치료할 돈 모금하고 제일 많이 해준 분한테 입양 보내자.

-그래 그러엄... 그렇게 하자...

우리는 곧바로 성남시 커뮤니티며 학교 커뮤니티까지 관련된 모든 사이트에 똘뭉이 치료를 위한 모금 글을 올렸다. 똘뭉이 사진과 함께 구구절절한 사연까지 덧붙이니 신기하게도 돈이 조금씩 모이기 시작했고, 돈의 사용 출처까지 영수증을 하나하나 찍어 인증하니 더 빠른 속도로 돈이 모였다. 하지만 우리 ‘생각보다’ 많이 들어왔을 뿐, 치료를 위한 금액까지 모이지는 않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성남시와는 관계없는 서울시 성북구의 한 선인이 똘뭉이 소식을 어찌 듣고는 50만 원을 기부해주어 치료를 끝마쳤고, 똘뭉이를 입양해가기까지 하셨다. 은근 정이 많은 A가 다소 슬퍼하긴 했지만, 똘뭉이 입장에서만 보면 좁고 가파른 성남의 한 반지하에서 살기엔 힘들었기 때문에 옳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A의 손에서 입양자분에게 보내질 때 우리에게 짓던 표정 그대로, 편안히 건너가던 똘뭉이를 보며 어찌 보면 똘뭉이에게 중요한 건 누구에게 속해있는가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10평 남짓의 작은방은, 그리고 본연의 색깔 없이 빛이 들어오는 반지하임에 기뻐하는 두 주인과 함께하는 삶은 똘뭉이에게 그다지 기쁜 삶을 선사해주진 않았을 것이다.

     

 아마 나와 A의 삶도 그와 같았었나 보다. 당시 다니던 학교를 졸업하고 경력을 쌓아갈 미래에 대한 불만족만 없었다면, 우리는 반지하임에도 밖이 잘 보이는 10평 남짓의 방에서의 생활을 이어갈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5m 가량 떨어져 다른 건물이 우뚝 서 있어서 아침에는 어두컴컴한 자취방, 그곳에서의 생활은 단 1년 만에 끝났다. 시작은 함께였지만 끝은 따로였다. 2학년 2학기 중간고사가 끝나고 막창 집에서 회포를 풀 때였다. A는 얼굴에 반쯤 어두운 빛이 드리워진 채로, 대학생에게는 사치 음식인 막창을 베어 물며 말했다. 

-우리 아빠 퇴사했대... 말이 좋아 퇴사지 나이 조금 많다고 짤린거지이. 그런데 있잖아... 등록금이랑 생활비 써가면서어 여기 졸업한다고 좋을까? 그런다고 안정적으로 살 수 있게 될거라구 생각해? 너는 호옥시 다른 계획 같은 거 없냐?

많은 고민을 했는지, A는 준비한 듯한 질문을 쏘아댔다. 동기 아버지의 퇴직 소식과 그 친구의 경제 상황에 대한 걱정을 할 새도 없이, 나는 내 상황에 대해 생각했다. 우리 과는 보건 분야에 특화되어 실용적인 공부를 하기에, 취업이 잘 되기로 유명한 곳이었다. 만약 졸업해서 취직을 한다면 병원의 행정 일을 하게 될 터였다. 하지만 가만히 앉아 서류 검토만 하고 3교대로 일하며, 누군갈 돕는다는 도의감 없이 죽음을 직접적으로 바라보게 될 미래는 우리 둘 모두의 가치와는 맞지 않았다. 그렇기에 나와 A는, 학교 내에서 뚜렷한 성과를 냈음에도 별다른 기쁨 없이 기계처럼 살아가는 중이었다. 땅속에서 움츠린 채로 재정적 빛만을 바라보며 싹트기만을 바라보는 형국이었던 것이다.

-계획이라고 하기엔 뭐한데, 일단 이번 학기 끝나면 휴학 신청하고 이것저것 해보려고. 졸업해서 이 짓만 하면서 살 생각하니까 억울하더라. 

-킥킥. 뭐 할지는 생각 안 해봤고?

내 얘기를 들은 A가 쓴웃음을 지으며 되물었다.

-다른 걸 해보려고 하니까 내가 잘하는 것도 없고, 뭘 좋아하는지도 모르겠고 그래서... 찾아보려고, 그런 거.

-똘뭉이는 잘 살고 있겠지?

오랜만에 진지해진 나를 보며, A는 갑자기 떠나간 똘뭉이를 회상하며 소주를 들이마시더니, 계산을 하고 집으로 향했다. 양옆의 건물에 막혀 어두워졌을 자취방으로. 그땐 왜 갑자기 그런 질문을 해놓고 갑자기 자리를 떴는지 당황스러웠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내 말을 듣고 결심을 했으리라 추측된다. 다음날 조만간 얼굴 보러 오겠다며 문자를 남긴 채 자퇴를 했으니 말이다.  

    

 A가 떠난 후, 넓어진 자취방에 누워 천장을 바라봤다. 창문 틀의 철창 사이로 삐져나오는 빛은 작은 사다리처럼 비스듬히 나를 비췄다. 세상에 작고 큰일이 있다지만 A의 자퇴와 나의 휴학은 꽤나 큰 질량을 가지고 있었고 그래서인지 탈출구처럼 보이는 작은 사다리는 나를 짓누르고 있었다. 고민의 시간 후에 나도 기존에 했던 결심대로 휴학을 했다. 여러 일과 공부를 해보면서 꿈을 찾았고, 병원 행정을 공부하던 학교는 전적대가 되었다. 그리고 얼마 전에 들은 소식에 의하면 A는 평일 주말 가릴 거 없이 알바를 하다가 시흥시에 pc방을 하나 차렸다고 했다.     


 피상적으로 보기에 우리 둘은 나름의 성공을 거두었다고 볼 수 있다. 나는 미래의 내 모습이 두려웠기에 다른 길로 들어섰고, A는 현실적 이유에선지 뭐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다른 모습으로 돈을 벌고 있다. 그리고 아마 나는, 집안의 여유가 없었다면 휴학하고 다른 길로 나선 것이 진취적 도전이 아니라 소심한 회피가 됐을 것이다. 삶의 기반이 안정되어 있었기에 결과물을 낼 수 있었다. 칸트가 철학사에 혁명을 가져온 것도 정규직 교수 자리를 맡게 된 이후부터라고 한다. 그만큼 진취와 소심, 도전과 안주의 사이는 멀게 보이지만, 경계는 종이 한 장 차이이다. 빛을 좆을 것인가 땅을 직접 뚫고 나갈 것인가에 대한 논의도 결국 상황의 기반이 없으면 무의미한 논의이다. 지금쯤 반지하인 듯 지상인 옛 자취방엔 누가 살고 있을지 모르지만 아마 그 사람이 들은 말은 2년 전의 우리와 같을 것이다.     


-빛은 잘 들어옵니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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