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한 거 있지. 엄마가 세상에 태어나서 사람에게 미안한 일이 세 번 있었는데, 두 번은 네 외할머니께 미안한 거였고 나머지 하나는 너한테였어. 너 캐나다에서 네가 어버이 날이라고 카톡으로 보내 준 편지, 생각나?
엄마, 아빠. 어버이날 축하드립니다. 엄마,
엄마가 있어서 내가 있는 건데 가끔 내가 이 세상에 혼자 떨어진 것처럼 굴어서 미안해. 엄마가 제일 좋았던 때가 있었어. 둘째 낳고 날이 어둑어둑해질 때쯤 병원에 혼자 물도 못 마시고 누워 있는데 엄마가 왔어. 그리고 한참을 내 젖몸살 풀어주며 있다가 내일 다시 온다고 하고 가시더니 정말 다음 날 새벽같이 엄마가 왔어. 어디 결혼식 가는 것처럼 옷을 차려 입고 곱게 화장을 하고 말이야. 그리고 그날 엄마는 내게 바쁘다는 말도 안 하고, 빨리 가야 한다는 말도 안 하고, 둘째 낳고 산후 조리원에 있는 올케에게 가봐야 한다는 말도 안 하고, 하루 종일 내 옆에만 있었어. 나와 있을 때 엄마는 늘 할 일을 산더미처럼 쌓아두고 와서, 곧 일어나야 할 사람처럼 보여서 엄마에게 길게 이야기해야 하는 것들에 대해서는 처음부터 얘기를 꺼내지 않았던 것 같아. 그래서 결혼 한 이후로 난 엄마에게 난 별로 문제없이 잘 사는 딸이었던 거지. 그런데 그날은 엄마가 진짜 나만의 엄마 같았어.
내가 엄마 안 가도 되냐고,
병원도 가야 하고 아빠 식사도 챙겨드려야 하지 않냐고 물으니까 엄마가 그랬어.
"걱정 마. 나 아니면 할 사람 없을까 봐? 넌 이제 좀 어때? 배는 안 아파?"
늦은 나이에 딸 낳고 병원에 누워 있는데
친정엄마도 안 오고
시어머니도 안 오고
남편도 나가고 진짜 서러웠는데
엄마가 하루 종일 내 옆에 있으면서 챙겨주니까 참 좋더라.
갑자기 그때 생각나니까 엄마 보고 싶어 지네 ㅋㅋ
엄마, 가까이 있었으면 어버이날 밥이라도 같이 먹었을 텐데 챙겨주지 못해 미안해요.
아빠에게도 미안하다고 전해주고 감사하다고 전해줘요.
엄마, 아빠 사랑해요
-큰딸 올림.-
엄마 이 편지 받고 얼마나 미안했는지 몰라. 엄만 세상에 태어나 제일 미안했던 기억이었는데 네겐 가장 고마웠던 기억이라니ᆢ. 너 은이 날 때 현이가 5일 먼저 태어났잖아. 원래는 네 올케가 너보다 예정일이 두 달 늦었어. 그래서 큰애 낳았을 때 제대로 못해준 산구완, 엄마가 이번엔 제대로 해 주려고 마음먹고 있었어. 원래 산후조리 제대로 못해서 생긴 산후 후유증은 다시 애 낳고 산후조리 제대로 하면 없어지거든. 그런데 예정일이 두 달이나 늦은 네 올케가 너보다 5일 먼저 출산을 했잖아. 두 달이나 빨리 나와 인큐베이터에 있는 현이 때문에 정신이 없어서 네 옆에 계속 붙어 있을 수가 없었어. 오전에 너 아기 낳은 거 보고 집에 갔는데 이 서방이 저녁에 잠시 일이 있어 나갔다 와야 한다고 나에게 너를 부탁하더라고.
그래서 다시 병원에 갔는데,
세상에ᆢ 어두 컴컴한 병실에 불도 못 켜고 입이 바싹 마른 채로 니가 누워 있더라고. 수술하고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한 채로. 1인실이라 누구에게 불 켜달라는 말도 못 하고. 수술한 지 얼마 안 돼 움직이면 아파서 침대 옆에 있는 간호사 호출 버튼도 못 누르고 그렇게 동굴처럼 깜깜한 병실에 갇혀 있더라고. 내 딸이.
속이 뒤집히는 것 같더라. 너무 미안하고 맘이 아파서. 엄마는 그날이 너 키우면서 제일 미안한 날이었어.
내 딸이 딸을 낳았다
-내 인생을 한 단어로 표현한다면?
고마움.
고마움이야
모든 것이 다 고마워.
이제 엄마 나이 70이 넘어 내가 살아온 인생을 뒤돌아보니 힘들 때도 많았지만 참 괜찮은 인생이었던 것 같아.
무엇보다 니들이 잘 커줘서 그게 젤로 고마워.
그리고 미우네 고우네 해도 평생 내 옆에서 내가 해주는 음식 맛있게 먹어주는 니 아빠도 참 고마워. 니 아빠 처음 봤을 때 한마디로 딱 '뜨물' 마신 기분이었는데 그 쌀뜨물이 점점 구수 해지더라고. 이젠 뜨물 없으면 안 돼. '맛'이 안 나서.
자기 인생에 100% 만족하는 사람 없겠지만
엄마는 엄마 인생에 110% 만족해. 내 인생에 더 해진 그 10 %. 그게 바로 너희였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