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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이음 Mar 26. 2021

숨은 어머니들에게

-감사를 전함.

 어쩌다 어머니를 찾게 되어.


‘음악의 어머니’를 찾는 일이 이렇게 전개될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나는 단지 내가 가르치는 학생에게 훌륭한 여성 음악인을 소개해주고 싶은 마음이었고 그것이 내게 질문을 던진 학생에게 조금이나마 덜 부끄러운 선생님이 되는 일이라고 생각했을 뿐이다.    

 

 여성 음악가의 일생을 찾다 보니 자연스럽게 페미니즘에 관한 책을 한두 권씩 쌓아 놓고 읽게 되었다. 여성 음악가들의 인생에 공통으로 나타나는 부분은 그들이 자신의 재능을 펼치기 위해서 얼마나 고군분투해야 했는지와 자신의 창작활동을 지지해주는 사람이 전혀 없는 상황에서 어떻게 정신력으로 버텨나갔는가에 관한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이런 이야기는 ‘인간’이라고 취급받지 못했던 18세기 이전부터 19세기의 페미니즘 운동의 시작 그리고 1950년대 정치 영역에서 투표권과 평등권을 획득하려는 투쟁까지 여성이 자신의 권리를 찾아가는 역사와 맞닿아 있었고 나는 계속 페미니즘에 관한 책들과 여성 음악가의 삶을 연계해보는 일에 집중하게 되었다.     


 주말마다 두꺼운 페미니즘 책을 쌓아 놓고 이해가  되는 부분이 나올 때마다 머리를 쥐어뜯는 나 자신의 모습이 웃겨서 피식하고 웃음을 터트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나는 단지 아이들에게 악기를 가르치는 선생님일 뿐이고, 페미니즘에 관한 책이라면 세상에 불만이 가득했던 고등학교 시절에 읽은 ‘2  한때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베스트셀러 ‘82 김지영 전부인 사람이었다. 페미니즘에 관련된 책은 내가 처음 읽고 질려버렸던 ‘2  마찬가지로 여전히 두껍고 어려웠으며 복잡한 사회문제와 얽혀 현대로 올수록  진화된 사회문제로 발전하고 있었다.      


 페미니즘이 어렵고 복잡한 문제라는 생각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글을 쓰게 된 것은 글을 쓰면서 오랜 기간 잊고 있었던 나의 내면 속 불편함과 마주했기 때문이다. 오랜 기간 잊고 있었지만 나는 분명 남성중심주의적인 사고가 곳곳에 만연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사람이었고 그런 것이 불공평하다고 생각했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나는 내가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것도 아닌데 불공평하다고 생각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그런 불편한 마음들을 무시하고 모른 체했다. 그렇게 모른 체하며 마음 깊숙이 묻어두었던 생각들이 작곡하는 여성 음악가가 있는데 “왜 음악의 어머니가 남성이어야 하느냐?”라는 학생의 단순한 질문이 매개되어 나의 머릿속을 휘졌기 시작했다.       



   

아직도 힘들기만 한 어머니 찾기.          


 페미니즘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꾸준히 책을 찾다 보니 사회학자나 여성학자가 쓴 두껍고 어려운 책만 있는 것이 아니라 어린이들을 위한 만화로 된 책이나 페미니즘에 관심이 있는 일반인들을 위한 얇고 가벼운 책들도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관심을 두게 되니 새로운 정보가 보이기 시작했고 쉬운 것부터 시작하니 책을 읽는 것이 즐거워졌다.      


하지만 모든 자료가 쉽게 찾아지는 것은 아니었다. 내가 관심이 없어서 여성 음악가에 대해 몰랐을 뿐이었다고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실제로 여성 음악가에 대한 자료는 매우 한정적이었다. 여성 음악가에 관한 연구는 여성 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나기 시작한 1950년대 이후에나 시작되었으며 그와 관련된 연구는 거의 여성들만 하는 상황이어서 여성 음악가의 작품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볼 수 있는 장치가 전무했다. 손쉽게 자료를 찾을 수 있는 여성 작곡가의 수는 50여 명뿐이었으며 그나마도 거의 동일한 내용의 글만 찾아볼 수 있는 상황이었다. 남성 작곡가의 경우 단 한곡이라도 음악사에 의미가 있는 곡이라 여겨진 곡이면 수십수백 편의 논문을 찾아볼 수가 있고 그와 관련된 일화도 많은 연구자와 작가에 의해 다양한 이야기로 소개되는 것에 대비되는 상황이다.     


 아이들이 보는 교과서에서는 여전히 여성 음악가에 대한 이야기를 찾아보기 힘들며 교과서에 실린 곡들의 작곡가도 대부분 남성 작곡가이다. 이런 성비의 불균형은 음악 교과에서 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 아이들이 가장 일상적으로 접하는 거의 모든 교과 내용에는 남성의 세상이라고 할 만큼 여성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부분이 거의 미미하다. 이뿐 아니다. 성차별에 관한 사회적 문제가 과거에 비해 많은 부분 개선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으로서 여성폭력에 관한 UN의 통계 내용은 적지 않은 충격을 안겨주었다. UN 통계에 따르면 전 세계 여성의 70% 폭력을 경험한 적이 있고 여성중 5명 중 1명이 강간이나 강간미수 피해자이며 성폭력 피해자 중 80%가 자신을 공격한 사람이 아는 사람이라고 진술했다고 한다. 내가 최면에 걸려있었던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현시대의 여성 권리는 여전히 크게 개선된 것이 없었다.     


 더구나 이번 팬데믹 상황은 여성 혹은 약자들이 아직도 얼마나 많은 폭력적 상황에 노출되어 있는가에 대해 여실히 보여주는 하나의 장이 되어버렸다. 전 세계적인 팬데믹 상황은 폭력에 노출된 여성들에게 최악의 상황을 안겨주었으며 아버지가 딸을 참수하고 남편이 아내를 때려죽이는 페미 니사 이디(feminicide-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남성이 여성을 상대로 저지르는 살인)가 극에 달했다. 눈에 보이는 직접적인 차별과 폭력은 과거사일 뿐이고 현대 사회에서의 성차별은 무의식적인 차별(잘못된 교육이나 환경에 영향으로 습득된)만 개선하면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던 사람으로서 최근 연이어 터지는 폭력적인 상황들은 충격일 수밖에 없었다.  



        

숨은 어머니들에게.          


비통하고도 무서운 현실 앞에서 나는 또 한 번 페미니즘에서 멀어지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분하고 화가 나는 현실이지만 수백 년 동안 이어진 남성 중심적 사고는 나라는 미세한 존재가 인식을 해봤자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다시 페미니즘은 나와는 거리가 먼 남의 나라 이야기라고 생각하던 예전의 나로 돌아가려고 할 찰나 나는 이 글을 쓰게 된 계기가 된 또 하나의 경험을 하게 되었다.     


나에게 수업을 받는 남자아이 하나가 수업 내내 어두운 표정으로 심술을 부리며 수업에 거의 참여를 안 하고 있었다. 수업이 끝나고 다른 아이들은 다 가는데 뭉그적거리며 가방을 천천히 싸던 아이가 갑자기 화를 내며 소리를 질렀다.          



“그 아이가 날 아주 세게 때렸단 말이에요. 억울해요! 그 아이도 힘이 아주 센 아이란 말이에요!”        


  

사연인즉슨 수업 전에 같은 반 여자아이가 특별한 이유도 없이 이 아이를 세게 때려서 화가 난 남자아이가 그 여자아이를 쫓아가 똑같이 때리려 했는데 갑자기 여자 아이들 무리가 달려들며 ‘여자는 힘이 없으니까 남자가 때리면 안 된다.’ 고 소리를 쳤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 남자아이에게 여자건 남자건 폭력적인 행동은 잘못된 것이고 여러 명이 동시에 너를 공격한 것도 잘못된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해줬다. 짧은 찰나였지만 나 스스로도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낯설고 이상했다. 나는 분명 변해있었다.      


 내 이야기를 유심히 듣던 아이는 금세 화가 풀려서 환하게 웃었고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나는 그 순간 페미니즘은 여성만의 문제도 아니고 대단한 학식을 가지거나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는 정치적인 사람이 관여하는 문제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페미니즘 문제는 인간을 계급화하는 모든 불평등한 사회문제와 마찬가지로 우리 삶에 깊게 관여되어있다. 매일 아무렇지도 않게 숨쉬듯 일어나고 있어서 이것이 불평등하다고 인식조차 못하고 있을 정도의 일상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가정일을 사랑하는 부인과 나누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기는 아버지, 여성 위인에 대해 이야기해주는 선생님들, 남녀차별은 잘못된 것이라고 말해주는 이웃 등 우리의 일상에서 언제나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음악의 어머니’를 찾기 위해 이 글을 시작했지만 음악의 어머니를 찾는 과정을 통해 여성의 권리를 위해 함께 투쟁한 많은 사람(여성뿐 아니라 남성도!)들을 만났다. 그리고 그 투쟁의 역사엔 여성운동 역사에 이름을 남긴 여성운동가만 있는 것이 아니라 아내의 재능을 널리 알리기 위해 발 벗고 나서는 남편, 사회의 시선이 두려워 움츠려 있는 여성 동기에게 용기를 준 친구들, 남들이 뭐라고 하던 딸을 위해 정규 교육을 고집한 부모 등이 있었다. 나는 그들의 작은 실천을 보며 용기를 얻었고, 내가 이번 기회를 통해 진정으로 얻은 수확은 ‘음악의 어머니’를 찾은 것이 아니라 음악의 어머니들이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그들의 재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도운 ‘숨은 어머니’ 들을 찾은 일이었다.     


나는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어머니들이 평등을 위해 작은 실천을 행하고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페미니즘 대해 막연한 두려움을 가지고 숨어있는 많은 어머니들에게 말하고 싶다. 그저 지금 할 수 있는 작은 일을 하면 된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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