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제, 아를의 여인 제2 모음곡 중 미뉴에트.
우선, 플루트를 소개함에 있어 약간 격양된 감정이 들어갈 것임을 미리 이야기해야겠다. 팔은 안으로 굽고 자기 자식 안 예쁜 부모 없듯이 반평생 넘게 나와 함께한 악기를 소개함에 있어 객관성을 가지고 공정하게 서술할 리 없다. 장르가 판타지가 되는 일이 없길 바랄 뿐이다.
처음부터 너무 가관이지만... 나는 플루트와 운명적으로 만났다. 국어시간이었는데 선생님이 무슨 이유였는지 갑자기 비제의 아를의 여인을 들려주셨다. 그리고 한 소절을 듣자마자 이 악기를 배워야겠다는 결심이 섰다.
당시에는 이 악기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는 상태였다. 단지 소리가 너무 아름다웠다. 어떤 연주자가 연주한 버전이었는지 선생님에게 물어봐뒀다면 참 좋았을 것을 그 점이 아직도 아쉽다. 플루트라는 악기와 평생 함께 하게 된 계기를 만들어준 연주였는데 연주자를 모른다니. 언제 어느 때 자신의 마음을 앗아가는 소리를 만날지 모르니 여러분은 여러분의 마음을 훔치는 연주자를 꼭 체크 해두길 바란다. 그런 경험은 흔치 않으니 말이다.
어쨌든 플루트를 배워야겠다는 결심이 선 지 한 달도 안되어서 나는 플루트를 얻었다. 조르는 거에 일가견이 있던 시기였고 부모님은 한창 바쁘게 일하시던 때라 사달라는 거 빨리 사주고 떼어 버려야지 하는 심정이셨을 것이다. 플루트를 받자마자 나는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소리만 듣고 사달라고 조른 악기였는데 악기 모양까지 소리만큼이나 예쁜 것이 아닌가. 아름답다. 우아하다.라는 표현보다 플루트는 “예쁘다.”라는 표현이 맞는 모양새다. 입문용 악기는 보통 니켈합금으로 제작되어 은색인데 햇빛 좋은 날엔 빛이 악기에 반사되면서 일렁이는 빛이 생긴다. 그런데 그게 그렇게 예쁠 수가 없다.
아름다운 소리를 가진 예쁜 악기를 손에 얻은 나는 극도의 흥분 상태였고 어머니의 지인이셨던 플루트 선생님은 지나치게 관대했다. 나는 내가 대단한 수준으로 플루트 연주를 하는 아이라고 생각했고 그런 연유로 나는 플루트를 전공하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지나치게 순진무구했다. 하지만 그런 점이 이 악기를 끝까지 놓지 않을 수 있었지 않나 싶다.
취미생 신분이었던 1년을 제외하고는 나는 나의 스승들에게 연주를 잘한다라는 소리를 거의 들어본 적이 없다. 엉망이다. 못한다. 정도는 애교로 넘어가는 수위였다. 도제제도랑 별반 다를 바 없는 분위기의 클래스는 선생님 말씀이 거의 법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나는 청소년기 대부분을 떨거나 울거나 또는 우울해하면서 보냈다. 지금 되돌아봐도 나는 정말 플루트라는 악기를 미친 듯이 좋아했다. 울면서도 이 악기를 연주했으니 말이다.
이 악기는 아직 현재 진행형입니다.
플루트는 관악기 중에서도 목관 악기에 속한다. 아이들을 가르치다 보면 가끔 나무도 아닌데 왜 목관악기냐는 질문을 받곤 하는데 지금의 니켈합금 속 형태의 플루트는 19세기에 테오발트 뵘(Theobald Bohm, 1794-1881)에 의해서 완성되었고 그 이전에는 목재 재질의 악기였다. 나무로 만든 원통에 키를 덧댄 형태가 세월의 흐름에 따라 현재의 형태로 진화한 것이다. 처음 시기의 형태와 현재의 형태와 크게 변함이 없는 현악기와 달리 관악기 군은 세월에 따라 모양이 많이 바뀐 경우가 많다. 플루트를 예로 들더라도 나무에서 금속으로 바뀌고 키도 한두 개에서 여러 개로 바뀌는 등 시대에 따라 많은 변화를 겪은 악기이다. 그래서인지 시대에 따른 쓰임도 다르다. 바로크 시대에 플루트는 주로 독주 악기로서의 역할을 했다면 고전시대에는 오케스트라에서 사용이 더 많았으며 현대에 와서는 다시 독주 악기, 앙상블, 오케스트라 등등 여러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다.
출처> all about the flute
입문용 악기가 처음이자 마지막 악기 구입이 되는 경우면 상관이 없지만 좀 더 좋은 악기를 구입해보고자 하는 사람들이라면 플루트의 복잡한 시스템을 접하고 당황할 수 있다. 보통 우리가 플루트라고 부르는 악기 (플루트 군에는 알토 플루트, 베이스 플루트, 콘트라베이스 플루트, 피콜로가 포함)만 하더라도 키의 모양에 따라 C풋 악기냐, B풋 악기냐, 인라인 악기냐 오프셋 악기냐, 오픈 홀이냐 클로즈 홀이냐... 등등 여러 가지 시스템이 존재한다. 쉽게 말하면 키의 모양이나 배치가 악기마다 다르기 때문에 선택의 폭이 매우 넓다. 여기까지만 보고 머리가 지끈거리는 분에게 미안하지만 이 악기는 아직도 계속 발전되고 있다. 마음을 열고 다른 시각으로 보면 플루트는 연주자 친화적 악기라고 생각할 수 도 있다.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좀 더 예쁜 소리를 낼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좀 더 편하게 연주할 수 있을까.라는 악기 제작자의 고민이 현재 진행형이라는 뜻이다.
늘 새로운 소리
플루트는 목관 악기 중에서 유일하게 리드(목관악기에서 소리를 내기 위해 쓰는 얇은 나무판으로 클라리넷, 오보에, 바순 등이 리드를 쓴다)를 쓰지 않는 악기이다. 나는 이점이 너무 사랑스럽다. 생명을 불어넣는 느낌이랄까. 나는 악기에게 내 호흡을 나눠 줌으로써 플루트가 살아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
본론으로 돌아와서 리드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건 이 악기의 약점이 되기도 하는데 전문가가 아니면 음정이 목관악기 중 제일 불안하고 음색도 사람에 따라 많은 차이를 보인다. 입술이 자유롭기 때문에 입김을 불어넣는 방법이나 입술 모양 등에 따라서 천차만별의 음색을 낼 수 있으며 이것이 플루트의 묘미이기도 하지만 초심자에게는 어려운 부분이기도 할 것이다.
다채로운 음색을 가진 악기임에도 불구하고 대중들에게 인식되는 플루트의 음색에 대한 생각은 한정적이다. 실제로 음악을 들려주고 그림이나 글로 플루트에 대해 표현해보라고 하면 과반수의 학생들은 마치 사전에 이야기라도 한 듯이 새, 플루트, 인형을 그려놓는다. 플루트 특성상 음향이 큰 악기가 아니다 보니 오케스트라 내에서 플루트의 음색이 또렷하게 들리는 부분은 높은 음역대이고 그런 이유로 사람들에게 일정한 이미지가 각인된 게 아닌가 한다. 하지만 플루트의 음색을 비제의 아를의 여인 제2 모음곡 중 “미뉴에트”로 처음 접한 나로서는 플루트 음색에 대해 다른 이야기를 해보고 싶어 진다.
비제의 아를의 여인 제2모음곡은 프랑스 작가 알퐁스 도데의 희곡 아를의 여인을 테마로 하여 비제가 관현악곡을 작곡한 것이 시작이었다. 나는 이 희곡을 4장짜리 단편으로 접했는데 내가 생각했던 내용보다 더 강렬하고도 슬픈 내용이어서 적잖이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
창문이 열리더니, 뜰의 포석 위에 몸이 쿵 떨어지는 소리가 났고, 그게 다였습니다.
가엾은 아들은 혼잣말을 했답니다.
"난 그녀를 너무나 사랑해.... 난 떠날래."
아! 사람의 마음이라는 건 얼마나 가련한지요.
하지만 더 지독한 것은 경멸로도 사랑을 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알퐁스 도데 아를의 여인 중-
이 희곡은 여자 주인공이 이름만 등장하고 실제로 극에 나오지는 않는 형태 없는 존재이다. 얼굴도 없는 여자 주인공을 애절하게 사랑하는 남자들의 이야기만 나오는데 이들의 대화가 어찌나 안타까운지 글을 읽고 있으면 제발 여자 주인공이 이별 인사라도 해줬으면 하는 마음이 든다. 안타깝게도 이 희곡은 당시 사람들에게 크게 인기를 얻지 못했고 비제는 원곡을 연주회용 곡으로 편곡하여 제1 모음곡을 완성했다. 그 후에 비제의 친구인 기로가 비제의 관현악곡에 매료되어 다시 편집 및 편곡한 것이 제2 모음곡이 되었다. 재미있는 것은 아를의 여인 제2 모음곡에서 가장 유명한 선율인 미뉴에트는 비제의 오페라 아름다운 페르트의 아가씨에서 차용해왔다는 것이다. 명세기 아를의 여인 모음곡인데 다른 오페라곡에서 곡을 차용해온 것이 맞는 일인가 싶긴 하지만 이 희곡의 내용을 아는 사람이라면 기로의 탁월한 곡 선택에 찬사를 보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아름다운 하프 선율 위로 가련하고도 아름다운 플루트 선율이 담담히 흘러나온다. 춤곡이라는 미뉴에트 형식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느리고도 슬픈 멜로디에 이게 왜 미뉴에트야?라는 생각이 들다가도 떠나보내야 하는 사람인데 떠나보내지 못하는 아를의 연인 속 남자 주인공의 마음을 너무나도 잘 표현한 것 같아 마음속의 시비가 스르륵 사라진다.
이 곡은 플루트 선율 중 가장 유명한 선율 중의 하나로 초심자부터 시작해서 각 오케스트라 플루트 수석들의 연주를 버전별로 들을 수 있다. 유명한 곡의 장점은 연주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인데 숨이 모자라 한숨을 쉬며 연주를 이어가는 초심자의 음색부터 1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다는 유명 플루트 연주자의 음색까지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폭이 넓다. 재밌는 것은 때로는 한음 한음 정성 들여 연주하는 초심자의 연주가 대가의 연주보다 감동이 될 때가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에게 이 곡은 늘 새롭다.
사람들은 클래식 음악이라는 장르에 대해 어렵고 재미없다는 고정된 인식이 있다. 그것은 클래식 악기에 대한 인식에도 많은 영향을 줘서 클래식 음악을 듣는 사람들도 악기의 음색에 대해 고정된 이미지가 있는 것 같다. 들으면 들을수록 들리고 보면 볼수록 새로운 것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은 당연한 이치지만 바쁜 현대사회에 여유가 없는 현대인으로서는 자세히 듣고 자세히 보는 것이 참 어려운 일이라는 걸 안다. 하지만 여러분은 자기 나름대로의 명곡을 가질 수 있으며 자기 나름대로 최고의 음색을 찾을 수도 있다. 음악을 듣는다는 것은 개인적인 체험이며 그 개인적인 체험은 옳고 그름이 없이 다름만 있기에 개개인에게 가치 있는 일이라고 감히 확신을 가지고 주장해본다.
물론 그 과정이 처음엔 귀찮고 어려울지 모른다. 하지만 공들여 만들어낸 개인적 체험은 여러분의 든든한 정신적 자산이 될 것이다. 그러니 우연히 여러분의 마음을 움직이는 소리를 만나면 그 어떤 편견도 갖지 말고 조용히 귀 기울여 들어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