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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민 May 10. 2023

내 마음대로 살고 싶어.

#은주야, 미안해....

내가 누군가에게 기억된다는 것.

내가 누군가를 잊지 못하고 기억하는 것.

언제부터가 기억되는 것이 마냥 낭만적이고 아름답지만은 않다는 걸 생각한 건 일련의 경험들로 인한 깨달음의 산물이려니.


잊고 싶은데 잊지 못할 아이가 있다.

23년 동안 많은 아이들과 만나고 헤어졌다.

비슷한 얼굴과 비슷한 행동의 아이들

그런 아이들과 1년 인연으로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면서 말썽을 부렸던 이쁨을 지녔던 시간이 흐르면 다 아름다운 기억으로 포장되어 나의 기억 한편을 차지하고 있지만..


은주(가명)는 내게 아프고 아린 아이다.

지금은 서른이 넘은 어른이 되었을

그때 그 아이...


2년 차에 갓 담임을 맡은 신규 교사인 나에게 들어온 반 명단에 은주라는 이름을 발견한 순간 어떡하지? 내가 잘할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섰다.

은주는 전교에서 유명한 골칫덩어리였다.


엄마는 돌아가신 건지 헤어진 건지 모르지만 아빠랑 할아버지, 동생과 살았고 지방으로 일을 다니신 아버지는 가끔 집에 들어오는 처지라 은주를 제대로 돌보지 못했고 연로한 할아버지가 겨우 은주와 동생을 돌보고 계셨는데 제대로 된 양육이 어려운 건 뻔했고 밥이라도 잘 챙겨 먹는지 알 수가 없었다.

은주는 10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가출을 자주 했고 길거리에서 발견되어 경찰서에서 아이를 집으로 인계하는 일이 잦았고 도벽이 심했다.


단순한 도벽이 아니라 다른 학교에 들어가서 봉사 온 부모님들의 가방에 손을 댈 만큼 과감했다.

아마도 집에서 제대로 된 양육이 이루어지지 않고 한창 부모님이 보살펴줄 나이에  마음 붙일 데가 없으니  집이 싫었을 테고  허한 마음은 도벽으로 표출되었을 것이다.

경험에서 보면 애정이 결핍된 아이들은 꼭 도벽을 동반하는 유사점을 보인다.


그런 은주 담임이 된 나는 은주의 허한 마음을 채워주고 바른 길로 인도하여 은주가 마음을 잡고 학교에  착실하게 다니도록 해보자 결심을 단단히 했다.

일종의 사명감이랄까?

내가 부모는 못 되어도 관심을 주고 도와주면 될 거라 믿었다.

밥은 제대로 먹는지 옷은 깨끗이 입는지 살펴보고

케이크이나 빵이 들어오면 동생과 먹으라고 챙겨 보냈다.

어린이날이면 티셔츠와 속옷을 사서 손에 쥐여주도 하고

26살 아가씨였던 내가 은주를 위해 해 줄 수 있는 건 그런 것이었다.

지금 엄마 된 후 은주를 만났다면 조금 더 따뜻한 마음으로 보듬어줬을 텐데

솔직히 그때는 내가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고  은주를 변화시키고자 하는 열정만 가득했던 때이다.


착실히 학교를 잘 다니는가 싶더니

도벽은 쉽사리 고쳐지지 않아 내 화장품파우치를 가져가기도 하고 봉사 온 부모님들의 지갑을 가져가서 혼을 내기도 하고

내 노력이 은주를 변화시키지 않는다는 절망감에 은주의 잘못에  회초리로 엄하게 다스리기도 했다.


은주는 다시 가출을 했고 횟수는 점점 잦아졌고  경찰서에서 전화가 오면 찾아오고 다시 가출을 하는 일상이 반복되었다. 물론 도벽도 대담해지고 액수도 커졌다.

담임인 나는 그저 은주가 마음을 잡길 바랐지만 가정에서의 따뜻한 보육이 이루어지지 않는 한 마음 둘 곳이 없는 은주는  가출을 멈추지 않을 것은 뻔했다. 아빠와 상담을 해 봐도 해결할 방법은 없었다.


어느 날 은주 할아버지가 나를 찾아왔다.


경찰서에서 아이가 너무 가출을 자주 하니 차라리 학교병행 보육시설로 보내는 것이 어떠냐고 제안을 했는데 선생님 생각이 어떤지 묻고 싶으셨던 것이다.

의논할 사람이 나 밖에 없는 건지 아님 은주 담임이니 믿음이 간 건지 모르지만...

26살 내가 어떤 판단을 해야만 했을까?

은주아빠는 지방에서 일을 해야만 했고 연로하신 할아버지는 맘을 잡지 못하고 방황하는 은주를 더 이상 감당하기 힘들어 보였다.


"할아버지,, 은주를 돌보시는 게 많이 힘드시죠?

제 생각엔 아직 누군가의 보살핌이 필요한 은주를 보호해 줄 시설에 보내서 안정되게 학교를 다니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은주는 보육시설이 병행된 학교로 전학을 갔고 몇 달 후 내게 메일이 왔다.

그곳에서 학교를 잘 다니고 있다고

선생님이 보고 싶다고..


나는 선물을 들고 은주를 한번쯤 찾아갔어도 좋으련만  은주를 찾아가지 않았고 빨리 내 기억 속에서 잊고 싶었다.

모르겠다. 은주가  보육시설에 보내진 것이 맘에 걸렸고 은주를 변화시키고자 했던 내 노력이 실패였다는 사실을 외면하고 싶어서였을까?


은주가 그냥 건강하게 바르게만 자랐기를 바랄 뿐이다.


미안해 은주야...

그때의 나도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서툰 선생님이었어.

너를 한번 쯤 찾아갔어야 했는데...

지금의 나라면 너를 꼭 안아주고 머리를 쓰다듬고

조금 더 따뜻하게 너의 이름을 러주었을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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