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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민 May 04. 2023

내 마음대로 살고 싶어.

# 탈출을 꿈꾸지만,,,,

요즘 나의 관심사는 온통 은퇴뿐이다.

날이 갈수록 예민하고 무례한 학부모에 지쳤고 늘 지나치게 활동적이고 다양한 갈등이 일어나는 아이들의 사건사고 해결에 진절머리가 나는 게 가장 큰 이유다.

난 정말 뭔가를 가르치고 싶을 뿐인데 학교에서는 가르치는 일 보다 뭔가를 중재하고 해결하는 일이 더 많아졌다. 난 교사를 꿈꿨는데 현실은 경찰관이자 검사, 판사 였다.  

25살 이후 쉼 없이 달려온 교직생활이 지겨워졌다. 다른 일은 어떨까? 자꾸 다른 일에 관심이 간다.

자격증을 따 볼까? 내가 당장 다른 일을 한다면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구인구직 사이트를 기웃거려 본다.

45살.. 참 애매한 나이다. 뭔가를 다시 시작하기엔 불가능한 건 아니지만 대단한 결심과 의지가 필요했다.

공부를 다시 하기엔 내 의지나 능력이 자신 없다. 몸 쓰는 일을 하기엔 몸도 약하다.

그나마 가능성 높은 건 학원강사인데 노우~ 다시 아이들을 만나는 직업은 하고 싶지 않다.

내가 20대에 다시 직업을 선택하라고 한다면, 승무원을 해 보고 싶다. 물론 매우 힘든 일임을 잘 알고 있지만 여러 나라를 다니며 일을 한다는 것 자체가 너무나 매력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철저한 자기 관리가 멋있어 보인다.

지금 다시 직업을 선택한다면 도서관 사서가 무척 부럽다. 일단 조용한 환경이라는 점이 가장 매력적이다. 학교에 오래 있다 보면 아이들 소음에 너무 지쳐서 집에 가서 음악도 틀지 않는다. 도서관은 일단 조용하다는 점이 젤 마음에 든다. 그리고 책이 늘 가까이 있다는 거.....

사서 자격증을 좀 알아봤으나 역시 쉽지는 않다. 필수와 교양과목을 들어야 하는데 대학교나 평생교육원에서 퇴근 후 수업을 듣는다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사서 나름의 말 못 할 힘든 점이 분명 있지 않겠는가?

아무래도 아직 교직을 탈출하기엔 나는 이런저런 핑계가 참 많다.

사실 힘들다 힘들다 해도 한줄기 빛처럼 가슴이 웅장해지고  그래, 이 맛에 내가 교사인거지~하는 순간이 분명 있다.


작년 1학년 담임을 하고 아이 입시가 끝난 후, 올해는 나에게 작은 휴식을 주고 싶어서 담임을 신청하지 않고 교과를 선택했다. 교과란 초등에서 담임을 맡지 않고 여러 반에 들어가 수업만 하는 교사이다.

아무래도 담임을 맡지 않다 보니 정신적인 여유도 생기고 스트레스는 덜 받는다.

3월 초 막 새 학기가 시작되던 날, 수업이 끝나서 교실에서 쉬고 있는데 작년 담임한 1학년 서연(가명)과 준서(가명)가 빼꼼히 문을 연다.

" 선생님~~~" 하고 서연이가 와락 나에게 안긴다.

 부모님의 이혼으로 아빠와 생활하는  서연이는 표정이 어두웠고 모든 것에 무기력했고 웃지 않는 아이였다. 서연이 엄마는 서연이를 데리고 가고 싶어 아빠와 갈등 중이었고 그 사이에 낀 담임인 나는 여러 가지 일로 곤란한 상황에 놓이기도 했다. 서연이는 늘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지켜보고 마음이 다치지 않게 챙겨줬다.

준서는 엄마가 돌아가신 건지 정확한 이유를 모르지만 아빠와 할머니와 살고 있었고 할머니는 준서를 불쌍하게 여기고 신경을 많이 쓰셨지만 장사일로 바빠 세심한 보살핌이 어려웠고, 아빠는 다소 아이를 거칠게 대했다.

준서는 정말 사고뭉치 그 자체였다.

입학하고 3개월이 지날 때쯤 여기저기서 준서가 저지른 사건을 알리는 전화가 하루에 꼭 한 번씩 왔고 다른 학부모들의 항의전화도 늘 주인공은 준서였다.

친구들과 갈등을 자주 일으켰고 친구물건이나 교사의 물건에도 손을 댔다.

집에 이야기하면 아빠는 교육적 지도보다는 거친 말과 폭력으로 아이를 다스렸고 아이는 아빠를 무서워할 뿐 나아지진 않았다.

학교 끝나고 돌봄 교실로 가서 젤 늦게까지 학교에 남는 아이도 준서였다.

가끔 보면  돌봄 교실 간식시간에 혼자 간식을 가져오지 않는 모습이 짠해서 과자를 한 박스 사다 놓고 준서가 잘하는 행동을 하면 간식으로 보상을 했다.

교사이기전에 엄마마음으로 아이가 짠했다.

아마도 서연이와 준서는 작년에 가장 내 마음에 짠한 아이들로 남았는데 아이들도 2학년이 되고 나니 새담임선생님도 낯설고 1학년때 생각이 많이 났는지 찾아왔나 보다. 나의 짠한 마음을 알았는지...

아이들을 꼭 안아주며

"준서는 선생님 말씀 잘 듣니?"

하고 물으나마나 한 질문을 했다.

"네!!!"하고 자신 있게 대답한다.

"진짜?? 네 선생님하고 친한데 한번 물어봐야겠다. 선생님 말씀 잘 듣고 친구들하고 싸우지 말고 "

나는 뻔한 당부를 잊지 않는다.

초콜릿을 쥐어주며 잘 지내!

조심히 집에 가라고 보내는데 또 오겠다고  하더니

다음날에는 작년 우리 반 아이들을 잔뜩 이끌고 나타났다.

"얘들아! 우리 선생님 여기 계셔!!!"

"선생님 보고 싶었어요!!"

덕분에 가지고 있던 사탕과 젤리를 선물로 나눠주고 우리는 한바탕 1학년 동창회를 열었다.

아이들은 참 이쁘다. 순수하다.

급식실에서 작년 아이들을 만나면 아이돌인기 못지않게 그리도 반가워하고 기뻐하고 아는 척을 한다.

지금 비록 나는 탈출을 꿈꾸지만

가슴이 따뜻해지는 순간들이 있기에, 귀여운 녀석들의 열렬한 지지가 있기에 오늘도 내일도 버텨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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