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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시시 Oct 30. 2022

셔터를 누르는 깨끗한 감동

너는 내 맘을 몰라

세상이 조금만 고요해도 평범한 장면은 감탄이 된다. 대개 나는 사랑하는 사람이 자연스러운 표정으로 그 순간을 만끽하고 있을 때다.


그날은 조카가 낮잠을 자는 모습이었다. 세 살짜리 조카가 오랜만에 온 할머니 집을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볼록한 아기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자 엄마는 ‘어휴, 이마에 땀 좀 봐’라며 옷소매로 조카의 이마를 쓱 닦았다. 반쯤 감기는 눈을 애써 비비던 조카는 발라당 아기 이불에 엎드려 순식간에 잠에 빠져들었다.


교회는 잘 안 갔지만, 속으로 쟤는 평생 불면증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어색한 하나님께 기도했다. 기도가 끝나자마자 이 순간을 잊으면 안 된다는 강한 확신이 들었다. 조카가 잠에서 깰까 봐 살금살금 기어가 얼굴을 마주 보고 누웠다.


곤히 잠든 아기의 머리맡에서 숨이 들어가고 나가는 바람 소리가 들렸다. 셔츠 끄트머리로 폰카메카 렌즈를 쓱- 닦고 엄지 손가락으로 스피커를 막았다. 찰칵. 그날은 해가 질 무렵까지 마음이 간질거렸다. 펜을 들고 종이에 마음을 열어보았다.


아기가 새근새근 잔다. 앞머리가 흐트러졌다. 머리카락 뭉텅이도 볼록한 이마에 엎드려 잔다. 솜털 같은 속눈썹도 눈꺼풀에 기대어 잔다. 마침, 하얀 커튼을 통과한 햇빛이 적당하게 내려온다. 낮잠에 딱인 바람이야. 옆에 누워서 한참을 보고 있으면, 달콤한 아기향이 은은하게 코끝을 간지럽힌다.

조카는 훌쩍 큰다. 오늘도 안녕, 나는 네 이모야.라고 스무 번째 첫인사이자 자기소개를 했다. 안 본 사이 손바닥만큼 키가 또 자란 조카가 혹시 나를 잊었을까 봐 조마조마했다. 무릎이 헐렁한 내복 차림의 조카의 시선이 나에게 닿는다. 그러다 식탁 의자에 앉은 내 무릎 위로 힘껏 몸을 던지며 중얼거린다.


아냐 너는 모이야 모이. 그 중얼거림은 백오십삼일 전에 나눈 대화에 이어지는 대답이었다. 앗싸…. 하고 기쁨이 입 밖으로 작게 터져 나왔다. 아이의 시간은 어른과 다르게 흘러간다. 십 년 뒤에도, 오늘처럼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어제 만난 것처럼 배시시 웃어 줬으면 좋겠다.


사랑하는 이가 잠을 자는 모습을 보면 깨끗한 감동이 밀려온다. 편하게 구부러진 손가락과 힘을 빼고 삐죽 튀어나온 입술, 자세히 들으면 피우-하고 파도 소리처럼 들어가는 들숨과 그보다 좀 더 긴 날숨들.


좋아하는 순간을 영원히 기억하고 싶어서 셔터를 누르면,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는 안심과 약간의 인위적인 절망감을 동시에 느낀다. 그래서 사진을 찍으면 일기를 쓰며 추억 다듬기 작업을 한다. 직감으로 셔터를 누르던 당시 정확히 알지 못했던 마음을 자세히 들여다본다. 그리고  소중한 기억을 또 하나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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