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배시시 Oct 30. 2022

어떤 아침에는 햇살이 살아 있다

에필로그

요즘에도 자주 중요한 것을 잊고 사는 기분이 든다. 아침에 그러면 커피를 마시고, 밤에 그러면 술을 마신다. 커피는 기억해야  것을   떠오르게  주고, 술은 멈춘 마음을 다시 움직이게 한다. 멋진 하루를 살겠다는 야심  다짐은 이것저것 마시다가 지나간다.


술집에서 같이 홀짝대던 옥토는 두 시간 정도 지나면 소주잔을 빤히 보면서 중얼거렸다. “나는 아메리카노랑 쐬주 같은 사람이 되고 싶어. 안! 보였던 것들이 선명하게 느껴지고! 닫혀 있던! 마음을 화알짝 열어 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 그래서 짙은 향이 나는 대화만 하고 싶허엉.”


옥토의 전달력이 떨어지는 혼잣말은 맨 정신으로 하는 말보다 울림이 있다. 얘한테는 비밀이지만, 그 애가 두 병 정도 마셨을 때 꺼내는 말인 ‘걔, 좀 재수 없어.’ 라는 문장에서 나도 한 번쯤은 ‘걔’가 되고 싶었다. 그건 언젠가 잃을까 두려울 만큼 사랑스러운 옥토가 갖고 싶은 무언가를 가졌다는 뜻이었다. 평균 이상의 연봉이든 오래된 청약 통장이든 글 쓰는 재주든 보정 어플이 필요 없는 미모든 좋아요가 몰리는 유니크함이든 평생 가는 학벌이든. 인정하기 싫지만 옥토는 내가 재수 있어서 좋단다.

만약에 인스타가 없었어도 나한테 갓생이 필요했을까. 빌라의 위층 아저씨나 옆집 아주머니도 알고 있을 고리타분한… 행복을 바란다. 쓰나마나한 글을 쓰면서 꾸나마나한 꿈을 꾸면서 살아도 삶이 충분할까. 아직은 모르겠다.


내가 우리 주변을 채웠던 그리운 멜로디나 추적한 빗소리 따위의 여러 속삭임을 끌어오면, 거기 앉은 당신은 점심밥의 따스함을 데려온다. 행복을 나누는 방법은 감각적인 것들을 끊임없이 의식할 수 있게 서로의 잠든 시간들을 깨워 주는 것. 그래서 지겹도록 서로를 방해해도, 결코 귀찮지 않은 것.


근데 혹시 말이야, 내가 곁에 두는 모든 습관과 버릇 그리고 관계가 삶의 비는 시간을 채우려고 둔 건 아닐까? 진짜 연약한 나를 맞닥뜨릴 자신이 없어서 말이야. 불안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 혼자 있는 시간을 미루는 건 아니야? 아니면 그걸 정말로 사랑하고 다 아끼는 거야?


평생 어정쩡한 고민을 들여다보며 살 것 같다. 아무튼 행복한 이야기를 꺼내는 친구의 자랑은 죽을 때까지 기쁜 마음으로 듣고 싶다. 이제까지 얼레벌레 풀어놓은 글처럼, 관통하는 주제 하나 없는 어설픔 투성이인 삶에서 단 하나는 분명하다.


어떤 아침에는 햇살이 살아 있다.

이전 09화 큰 킬만 선택하면 안전할 줄 알았지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